재벌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논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4년 관련법 시행 이후 일감몰아주기 더 늘어

규제 약발이 먹히지 않는 건 규제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팔아 지분율을 낮추면 규제 대상에서 쉽게 빠질 수 있다. 실제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던 광고회사 이노션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시행 직전에 총수 일가 지분율이 29.99%로 떨어지면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현대글로비스·KCC건설·코리아오토글라스·HDC아이콘트롤스 등도 규제 시행 직전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대상에서 제외됐다. 총수 일가의 지분은 없지만 그룹 계열사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자회사가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도 문제였다. 이런 자회사 중 그룹 계열사의 지분율이 100%에 달하는 곳이 전체의 63%에 이른다.
상장사와 비상장사로 나눠 규제를 적용한 점도 허점으로 꼽힌다. 사외이사 제도 등으로 상장사의 내부 견제장치가 비상장사보다는 견고하다고 본 건데, 공정위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이 가결되지 않은 이사회 안건 비율은 0.39%에 그친다.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정위 측은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한해 상장·비상장사를 차등화해 제도를 설계한 결과 일부 지분 매각, 자회사로의 변경 등 각종 규제 회피 사례가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공정위가 8월 24일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화한다. 또 이들 기업의 자회사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과징금 상한도 지금의 두 배로 상향된다.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규제 대상 기업은 지금(231곳)의 두 배 이상 수준인 607곳으로 늘어난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29.99%인 이노션과 현대글로비스는 물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 지분율이 20.82%인 삼성생명 등도 규제 대상이 된다. 10대 그룹 중에서는 GS그룹이 지금보다 15곳 늘어나 총 30곳으로 가장 많다. 신세계그룹은 기존 광주신세계 1곳에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신세계와 이마트,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추가되고, 이들이 거느린 지분 50%를 초과한 자회사 15곳까지 포함돼 총 19곳으로 늘어난다. 삼성그룹은 현재 규제 대상이 삼성물산 1곳 뿐이지만 삼성생명이 추가되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이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 자회사 10곳이 포함돼 모두 12곳이 규제를 받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서림개발·서울피엠씨·현대머티리얼·현대커머셜 등 현재의 4곳에 이노션과 현대글로비스 등 5곳이 추가돼 모두 9곳이 규제 대상이 된다. 두산그룹은 규제 대상이 2개에서 8개로 늘고, LG그룹은 LG와 지흥 등 2곳에서 6개로 늘어난다.
재계는 사업별 특성이나 효율성, 전문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규제만 강화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그룹은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일반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특성을 무시하고 일관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필요한 건설사업 부문의 특수목적법인(SPC) 등이 규제 대상에 대거 포함된다. 또 제품 애프터서비스(AS), 설비시설 유지·보수 등의 업무에서 사업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이 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취지와는 무관한 스포츠단 계열사 거래 역시 포함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자회사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일감몰아주기로 몰아가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모호한 기준부터 바로 잡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