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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꼼수 막을 승부수 vs 물정 모른 무리수

기준 바꿔 대상 231곳에서 607곳으로 확대...10대 그룹 중 GS그룹이 가장 많아
 

재벌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논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8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예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재벌그룹의 총수가 자녀를 앞세워 본업과 관련 없는 회사를 만든 후 일감을 몰아주고, 그렇게 덩치를 키워 총수 일가의 이익을 늘리거나 경영권을 승계하는 지렛대로 활용한다. 마치 경영 기법처럼 보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 같은 행위를 시장 잠식에 따른 독립 기업의 성장과 전문화를 방해하는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로 꼽는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익 추구가 아니라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라고 주장하지만, 총수 일가가 그룹 지배력을 편법적으로 확대하거나 경영권을 승계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예가 많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 같은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정부도 입법 과정을 거쳐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같은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내부거래)’ 규제다. 현행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의 2는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는 총수 일가가 일정 이상의 지분(상장사 30%, 비상장사 20%)을 보유한 회사에 대한 부당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
 
2014년 관련법 시행 이후 일감몰아주기 더 늘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다른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 대해 감시를 받는 것은 물론, 부당 내부거래가 적발되면 총수 일가가 검찰에 고발되거나, 수십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공정위는 일감몰아주기 규제 도입 후 한진·하이트진로·효성 등에 대해 총수 일가를 검찰 고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런데 일감몰아주기는 2014년 이후 오히려 더 증가했다. 규제를 도입할 때 8조원가량이던 내부거래 금액은 지난해 14조원으로 껑충 뛴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5월 기준 규제 대상 기업 203곳과 규제 대상이 아닌 대기업 계열사 241곳의 내부거래 규모 등을 조사한 결과다. 이 결과에 따르면 규제 대상 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은 2014년 11.4%에서 지난해 14.1%로 상승했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20% 이상이지만 30%가 안돼 규제 대상이 아닌 기업의 내부거래 비중은 같은 기간 5.3%에서 7.1%로, 내부거래 금액은 5조8000억원에서 6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규제 대상 기업이든 아니든 모두 내부거래가 증가한 것이다.
 
규제 약발이 먹히지 않는 건 규제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팔아 지분율을 낮추면 규제 대상에서 쉽게 빠질 수 있다. 실제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갖고 있던 광고회사 이노션은 일감몰아주기 규제 시행 직전에 총수 일가 지분율이 29.99%로 떨어지면서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매각한 것이다. 현대글로비스·KCC건설·코리아오토글라스·HDC아이콘트롤스 등도 규제 시행 직전 총수 일가가 지분을 매각하면서 대상에서 제외됐다. 총수 일가의 지분은 없지만 그룹 계열사를 통해 간접 지배하는 자회사가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도 문제였다. 이런 자회사 중 그룹 계열사의 지분율이 100%에 달하는 곳이 전체의 63%에 이른다.
 
상장사와 비상장사로 나눠 규제를 적용한 점도 허점으로 꼽힌다. 사외이사 제도 등으로 상장사의 내부 견제장치가 비상장사보다는 견고하다고 본 건데, 공정위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반대 등으로 원안이 가결되지 않은 이사회 안건 비율은 0.39%에 그친다. 사외이사는 ‘거수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정위 측은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한해 상장·비상장사를 차등화해 제도를 설계한 결과 일부 지분 매각, 자회사로의 변경 등 각종 규제 회피 사례가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공정위가 8월 24일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통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화한다. 또 이들 기업의 자회사도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과징금 상한도 지금의 두 배로 상향된다.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규제 대상 기업은 지금(231곳)의 두 배 이상 수준인 607곳으로 늘어난다. 총수 일가 지분율이 29.99%인 이노션과 현대글로비스는 물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일가 지분율이 20.82%인 삼성생명 등도 규제 대상이 된다. 10대 그룹 중에서는 GS그룹이 지금보다 15곳 늘어나 총 30곳으로 가장 많다. 신세계그룹은 기존 광주신세계 1곳에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인 신세계와 이마트,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추가되고, 이들이 거느린 지분 50%를 초과한 자회사 15곳까지 포함돼 총 19곳으로 늘어난다. 삼성그룹은 현재 규제 대상이 삼성물산 1곳 뿐이지만 삼성생명이 추가되고,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이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 자회사 10곳이 포함돼 모두 12곳이 규제를 받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서림개발·서울피엠씨·현대머티리얼·현대커머셜 등 현재의 4곳에 이노션과 현대글로비스 등 5곳이 추가돼 모두 9곳이 규제 대상이 된다. 두산그룹은 규제 대상이 2개에서 8개로 늘고, LG그룹은 LG와 지흥 등 2곳에서 6개로 늘어난다.
 
재계는 사업별 특성이나 효율성, 전문성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규제만 강화했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그룹은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생산하는 수직계열화 구조가 일반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내부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며 “이런 특성을 무시하고 일관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필요한 건설사업 부문의 특수목적법인(SPC) 등이 규제 대상에 대거 포함된다. 또 제품 애프터서비스(AS), 설비시설 유지·보수 등의 업무에서 사업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이 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취지와는 무관한 스포츠단 계열사 거래 역시 포함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자회사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일감몰아주기로 몰아가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모호한 기준부터 바로 잡아야
모호한 일감몰아주기 판단 기준부터 정립해야 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공정위가 법원에서 패한 예도 있다. 지난해 9월 서울고법은 공정위의 한진그룹 일감몰아주기 제재와 관련해 총수 일가가 회사에 몰아준 일감 규모가 적어 해당 업종 시장 경쟁을 제한할 정도는 아니라며 공정위 패소 판결했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일감몰아주기 판단 여부는 정상가격(시중유통가격)에 비해 부당하게 지원했느냐가 쟁점인데 서비스 업종은 상품 특성상 정상가격 산정 자체가 쉽지 않다”며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이런 모호한 부분에 대한 기준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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