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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된 중국집, 3대 냉면집…인천에서 근대사를 맛보다

인천항이 개항(1993년)하면서 외국인 거주지로 발전한 인천 중구 구도심은 오래된 식당을 만날 수 있는 맛 여행지이기도 하다. 개항장에 세워진 공자상에서 인천항을 바라본 모습. 양보라 기자

인천항이 개항(1993년)하면서 외국인 거주지로 발전한 인천 중구 구도심은 오래된 식당을 만날 수 있는 맛 여행지이기도 하다. 개항장에 세워진 공자상에서 인천항을 바라본 모습. 양보라 기자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어도 마음을 주기 어렵다. 새로 문을 연 식당 둘 중 하나는 1년도 채 못 가 문을 닫는 실정이니 말이다(중소기업청, 2018). 그래서 요즘 식도락가는 도시의 후미진 구석을 파고든다. 개발을 비켜 간 동네에서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켜준 맛집을 찾아 나선다. 
 인천 중구 북성동·선린동·해안동 일대는 노포(老鋪)를 찾는 식객의 발길이 특히 잦은 동네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개항장으로 번성한 지역으로 1985년 인천시청이 이전한 뒤 빠르게 쇠락한 구도심이다. 하지만 개항장은 완전히 생기를 잃지 않았다. 근대건축물 사이사이에 부둣가 노동자가 드나들던 백반집, 외국인 선교사가 사랑했던 만둣집 등 오래된 식당이 여전히 손님을 반기고 있다. 근대 유적을 탐방하며 정겨운 맛집을 만나는, 인천 중구 구도심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아침을 응원하는 백반집
명월집은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백반 전문점이다. 석유풍로 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모습이 정겹다. 양보라 기자

명월집은 아침을 먹을 수 있는 백반 전문점이다. 석유풍로 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모습이 정겹다. 양보라 기자

 수인선의 끝, 인천역을 빠져나오면 별세계가 펼쳐진다. 거대한 패루(중국식 전통 대문)가 위용을 드러내고 빨간 간판이 겹겹이 걸린 차이나타운이 이어진다. 개항장에서 가장 북적북적한 동네지만 아침께 차이나타운은 썰렁하다. 두둑이 배를 채우고 여행을 시작하려면 패루 오른편으로 향하자. 일본우선주식회사(1888년)·대한통운 창고(1948년) 등 옛 건물을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인천아트플랫폼 뒷골목에 62년 창업한 식당 ‘명월집’이 있다.
 명월집은 오전 7시 40분 일찌감치 문을 연다. 26년 전 시누이에게 가게를 물려받은 남영신(67) 사장은 "예전에는 인천 부둣가의 노동자가 빈번하게 들락거렸고, 요새는 개항장 주변에 일터를 둔 직장인이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다"고 말했다. 명월집의 메뉴는 단 하나. 백반(7000원)이다. 반찬 예닐곱 가지로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진다. 명월집의 명물은 무한정 떠다 먹을 수 있는 돼지김치찌개다. 행여 식을세라 석유풍로에 찌개를 은은하게 데우고 있다. 남 사장은 가을배추로 직접 담근 김치만 쓴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매큼한 찌개와 반찬으로 나오는 계란말이가 환상 궁합을 자랑한다. 
 
 문화재에서 맛보는 빙수
130년 된 일본식 상가주택을 개조한 카페 '팟알'. [중앙포토]

130년 된 일본식 상가주택을 개조한 카페 '팟알'. [중앙포토]

 19세기 말 개항장은 오늘날의 이태원처럼 외국인이 넘치는 거리였다. 최초 근대 호텔(대불호텔·1888년), 외국인 사교클럽(제물포구락부·1891년) 등 외국인을 유치하는 서구식 건물이 잇따라 터를 잡았다. 최초의 근대 공원인 ‘각국공원’은 1888년 생겼다. 각국공원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지면서 1957년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각국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을 기준으로 왼편이 청나라, 오른편이 일본 조계지(치외 법권 지대)였다. 청 조계지가 지금의 차이나타운이다. 계단을 넘으면 과거 일본 조계지 구역에 진입한다. 여전히 일본식 상가주택이 남아 있어 일본의 소도시를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일본 조계지 중간께 모닝커피를 마실 만한 카페 ‘팟알’이 있다. 정식 개장 시간은 오전 11시인데 오전 9시부터 지역 예술가와 주민들이 드나드니 동네 사랑방인 셈이다. 2012년 개업한 카페가 오랜 점포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1885년 지은 3층 규모의 일본식 목조건물에 들어서 있어 예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팟알의 대표 메뉴 팥빙수. 양보라 기자

팟알의 대표 메뉴 팥빙수. 양보라 기자

 건물은 조선인 노동자를 부렸던 일본 하역회사의 사무실 겸 숙소였다. 광복 후 살림집으로 쓰던 건물을 인천에서 문화 운동을 하는 백영임(55) 사장이 인수했다. 고증을 거쳐 건물을 고친 뒤 카페로 개장하자, 일본의 건축학도까지 찾아오는 명물 가게로 거듭났다. 일본식 목조 건물의 원형이 살아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등록문화재 567호로 지정됐다. 1층은 누구든 드나드는 카페고, 2~3층 다다미방은 5명 이상 단체가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 예약비 1팀 1만원. 
 아메리카노(5500원) 같은 커피도 다루지만 팟알에서 꼭 맛봐야 할 메뉴는 팥빙수(7500원)다. 백 사장은 “개항장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팥 과자점 ‘혼다야’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고 팥빙수를 메뉴에 올렸다”고 말했다. 손으로 갈아 서걱서걱한 얼음에 조린 팥과 콩가루만 얹어 낸다. 옛날 빙수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맛이다. 
 
 신부님은 만두를 좋아해
먹자골목이 조성된 신포국제시장. 양보라 기자

먹자골목이 조성된 신포국제시장. 양보라 기자

 이제 주전부리의 천국 신포국제시장으로 향할 차례다. 개항장과 바투 붙은 신포시장은 인천 개항기 역사와도 관계가 깊다. 20세기 초 개항장에 중국인 거주자가 늘자 인천에서 중국 채소 농사를 짓는 사람도 생겼다. 중국 농부의 푸성귀 장이 신포시장의 전신이다.
 찐빵·튀김우동 등을 파는 신포시장 먹자골목은 평일에도 북적인다. 외지인은 닭강정 집에 줄을 서지만, 인천 토박이는 만둣집 ‘산동만두공갈빵’에 몰린다. 40여 년 업력을 자랑하는 가게는 화덕에 구운 공갈빵(1500원)과 손으로 빚은 고기만두(1팩 4000원)를 낸다. 공갈빵은 바삭바삭한 과자 같고, 만두는 피가 부드러워서 꿀떡꿀떡 삼키게 된다.
산동만두공갈빵에서는 손으로 빚어 만든 즉석에서 찐 중국식 만두를 판다. 양보라 기자

산동만두공갈빵에서는 손으로 빚어 만든 즉석에서 찐 중국식 만두를 판다. 양보라 기자

 산동만두공갈빵의 단골로 한국 가톨릭 초대 인천교구장 나길모(91) 교구장도 있었다. 미국 태생의 신부는 61년 인천 답동성당에 부임한 뒤 성당 맞은편 신포시장에서 만두를 맛봤다. 자신을 ‘만두 중독자’로 칭했던 나 교구장은 2002년 은퇴 후 고향 미국 보스턴으로 돌아갔는데, 답동성당 신자들이 종종 만두를 선물로 보내고 있단다.  
 인천 중구의 세월이 녹아든 메뉴로 평양냉면도 빠질 수 없다. 인천의 향토사학자들은 겨울 음식이었던 냉면이 여름 음식으로 바뀐 곳이 인천이라고 주장한다. 인천항 주변에 얼음 공장이 많아 다른 지역보다 얼음을 얻기 쉬운 환경이었다는 설명이다. 1955년 발간된 인천 역사서 『인천석금』에도 ‘냉면은 평양이 원조라고 하지만, 인천 것을 못 따랐다’는 구절이 있다.
얼음 공장이 들어선 인천에서 평양냉면은 여름 음식으로 꽃 폈다. 경인면옥은 인천 평양냉면의 맥을 잇고 있는 냉면집이다. 양보라 기자

얼음 공장이 들어선 인천에서 평양냉면은 여름 음식으로 꽃 폈다. 경인면옥은 인천 평양냉면의 맥을 잇고 있는 냉면집이다. 양보라 기자

 인천 평양냉면의 명맥을 잇는 식당이 1946년 개업한 ‘경인면옥’이다. 신포시장 코 옆에 붙어 있다. 평안도 신의주에서 건너온 함용복씨가 창업했고 2013년부터 손자 함종욱(50)씨가 운영한다. 함 사장은 “2대 사장이었던 아버지(함원봉·76)보다 몇십 년 단골이 더 무서운 스승이었다”며 웃었다. 전 직원이 매일 냉면을 먹으며 맛을 점검한다. 간장으로 간을 맞춰 국물이 보리차처럼 누런 냉면은 고기 향을 짙게 풍긴다. 9000원.
 
 짬뽕은 원래 하얬다
신성루에서는 국물이 하얀 백짬뽕을 맛볼 수 있다. 양보라 기자

신성루에서는 국물이 하얀 백짬뽕을 맛볼 수 있다. 양보라 기자

 인천 구도심 여행에서 중국요리를 빼면 섭섭하다. 구수한 냄새를 따라 차이나타운에 들어서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온 거리를 중화요리 전문점이 메우고 있어서다. 하지만 신생가게가 우후죽순 생긴 차이나타운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외려 개항장 변두리에 전통 있는 중국집이 포진해 있다.
 중구 신생동의 ‘신성루’도 그중 하나다. 1947년 개업한 식당의 주방은 현재 화교 2세 장덕영(60) 사장이 책임진다. 중국 산둥(山東)성 출신인 아버지 자춘걸(2008년 작고) 창업주에게서 요리를 배웠다. 2층짜리 살림집을 개조한 식당에 들어서면 식탁마다 짬뽕이 올라와 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70년이 넘은 신성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식당 건물. 앞뒤로 붙어있던 건물 벽을 터서 식당을 확장한 터라 구조가 독특하다. 양보라 기자

70년이 넘은 신성루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식당 건물. 앞뒤로 붙어있던 건물 벽을 터서 식당을 확장한 터라 구조가 독특하다. 양보라 기자

 류옥경(49) 인천 중구 맛투어 가이드는 “빨간색을 주문하면 외지인, 하얀색 주문하면 현지인”이라면서 신성루는 국물이 뽀얀 백짬뽕(7500원)을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국집이라고 소개했다. 백짬뽕 국물은 맵지 않고 시원하다. 장 사장은 “고추씨로 해물의 잡내를 잡는 게 비법”이라고 귀띔했다. 면을 반죽할 때 소갈비 삶은 육수를 쓰는 것도 차별점이다. 중국식 계란말이 자춘걸(2만3000원), 다진 새우를 빵 사이에 끼워 튀긴 멘보샤(3만원)도 반응이 뜨거운 메뉴다. 장 사장의 큰아들이 7년째 주방에서 수련하고 있어 70여 년 역사를 간직한 신성루의 맛은 죽 유지될 참이다.
 
 인천=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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