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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기촉법’의 절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내 이름은 기촉법(기업구조조정촉진법), 흔히 워크아웃으로 불린다. 꽃다운 열여덟, 날 때부터 팔자가 기구했다. 오늘은 작심하고 신세타령 한번 해보련다. 나를 이 땅에 불러낸 건 구조조정 선생이다. 외환위기란 괴물이 한반도를 덮쳤던 1998년 멀쩡한 곳, 곧 죽을 곳 가리지 않고 기업들이 쓰러져갈 때 기업을 닦고 조이고 기름쳐 바로 세울 마땅한 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 선생은 임시방편으로 나를 고용했다. 비슷한 일을 하던 법정관리며 화의가 있었지만 애초 융통성 없는 친구들이라 물불을 안 가려 선생을 힘들게 했다. 법정관리는 기업을 무조건 칼질하기 일쑤였고 화의는 은행·빚쟁이·경영진만 끼고돌았다. 그 통에 애꿎은 노동자만 골탕을 먹었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고용 대란이 벌어졌다. 아무리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는다는 구조조정 선생이었지만, 차마 그 꼴을 보지 못했다. 선생이 저 멀리 바다 건너 런던에서 놀던 나를 굳이 이 땅으로 불러낸 까닭이다.
 
내 시작은 초라했다. 임기는 5년, 비정규직이었다. 권한도 책임도 모호했다. 하지만 일은 똑소리 나게 했다. 애초 6대 이하 작은 그룹만 맡기로 했으나 대우그룹까지 떠안았다. 모두가 실패할 거라고 했지만, 보란 듯이 대우를 회생시켰다. 내가 법정관리나 화의 같은 정규직을 제치고 구조조정 선생의 오른팔로 불리게 된 것도 그래서다. 한때 정규직의 꿈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공은 공, 법은 법이었다. 2006년 나는 폐기됐다. 1년10개월 뒤 다시 살아났지만 두 차례 더 폐기됐고, 지금도 폐기 상태다. 정부와 구조조정 선생은 온 힘을 다해 나를 부활시키려 한다. 망하기 전에 기업을 되살리는 예방력, 빚쟁이들을 조율하는 중재력, 피를 덜 흘리고 수술하는 칼솜씨까지 나를 당해낼 자가 없기 때문이다.
 
선생의 다급함도 이해할 만하다. 지금이 어느 땐가. 외환위기보다 힘들다는 고용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기업 열 곳 중 세 곳(30.9%)이 영업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다. 중소기업 열에 넷(44.1%)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다. 산업단지마다 불이 꺼지고 있다. 매물로 나온 기업도 역대 최대다. 곧 자동차 부품업체, 조선과 건설의 한계 기업도 쏟아져 나올 판이다. 놔두면 거리는 노숙자, 실업자로 넘쳐날 것이다. 시간이 없다. 법정관리에만 맡길 수도 없다. 그는 중환자, 칼질 전문이다. 무조건 째고 본다. 나는 다르다. 예방적 치료를 중시한다. 사람도 덜 자른다. 구조조정 때 나는 17.3%의 노동자만 감축하지만 법정관리는 39.2%, 두 배 넘게 퇴출시킨다.
 
그런데 한심하다. 국회가 지난주 내 부활을 막았다. 그것도 한 명의 시민단체 출신 야당 의원이 한 짓이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나의 회생을 결정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막혔다. 주범인 채이배 의원은 경제개혁연대 출신이다. 그들은 “관치 조장”이라며 나를 반대한다. 하지만 다 핑계다. 그들이 주장하는 “채권자 형평 원칙”도 허울 좋은 도그마일 뿐이다. 하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작심하고 밀어붙인다는 인터넷은행, 원격진료까지 막아선 자들이다. 정부·여당도 이들에게 휘둘려 꼼짝 못 하는 판이니 어쩌겠나. 혁신성장은커녕 고용 대란이나 안 터지면 감지덕지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대통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여당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념은 잠시 내려놓고 현실을 보라. 급한 불은 끄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의 부활을 서둘러 달라. 필요하면 대통령이 맨투맨 설득이라도 하라. 이게 어디 나만 좋자고 하는 소리인가. 다 나라를 위한 일이다. 참 그런데 내친김에 아예 나를 영구 정규직으로 승격시켜주는 건 어떤가.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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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