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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만화는 과장인데 골프는 그게 안 돼”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한 허영만 화백. 허 화백은 서양의 20세기 초 멋쟁이 골퍼처럼 플랫캡에 니코보코스를 입는다. [사진 허영만]

경남 남해 사우스케이프 골프장에서 포즈를 취한 허영만 화백. 허 화백은 서양의 20세기 초 멋쟁이 골퍼처럼 플랫캡에 니코보코스를 입는다. [사진 허영만]

만화가 허영만(71) 화백은 한국 최고의 한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에 칼럼을 쓸 정도의 와인 전문가이자, 해발 5000m가 넘는 산을 7개나 정복한 산악인이다. 만화 『식객』에서 보듯 설명이 필요 없는 식도락가이며 음반 3000여장을 모아온 클래식 음악, 오디오 오타쿠다. 요트를 타고 독도를 포함해 한반도 주변의 바다를 휘저었다.
 
골프 실력도 출중하다. 최고 기록은 2언더파이며 몇 년 전까지 70대 타수를 기록했다. 그는 한번 빠지면 집안 기둥뿌리 뽑힌다는 취미를 여러 개 갖고 있다. 좋아하고, 열심히 한다고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그는 다 수준급에 올랐다. 최근 그를 만나 골프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많은 취미 중 가장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자 허영만은 “공술(공짜 술)”이라고 농을 쳤다.
 
가장 좋아하는 취미에 대한 답을 안 했지만 골프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온종일 네모난 만화 한 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깨가 오그라들고 생각도 좁아진다. 푸른 하늘을 불 수  있는 골프 코스에 나가면 그 조그만 상자 속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허영만은 40대 때부터 새벽부터 낮까지 만화를 그리고 오후엔 골프를 하러 나가곤 했다.
 
“히트작 제조기? 대다수가 미스 샷인 골프처럼 내 만화도 실패작 투성이다. 만화 작품을 200개 넘게 만들었는데 히트작은 손에 꼽힐 뿐이다.” 허영만의 많은 '미스 샷' 중에는 골프 만화도 있다. 
허영만이 1987년 그린 골프 만화 『19번 홀』.

허영만이 1987년 그린 골프 만화 『19번 홀』.

1987년 『19번 홀』이라는 골프 만화를 연재한 적이 있다. 뚱뚱한 주인공이 체형 때문에 스윙이 좋지 않았다. 대신 퍼트를 갈고 닦아 퍼트 달인이 됐다. 공이 그린에만 올라가면 1퍼트로 끝낸다는 내용이다. 인기가 없어 중간에 얼버무리고 ‘조기 종영’을 했다. 
 
이후에 또 다른 골프 만화를 잡지에 연재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골프를 잘 몰라 파, 보기 등을 설명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스토리 전개가 안 됐다. 그는 “골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만화를 보지 않는 시절이었다. 시대에 맞지도 않았다”고 했다.
 
간곡한 원고 청탁을 내치지 못해 또 다시 스포츠 신문에 골프 만화를 그렸다. 5회까지 한 번도 샷 장면이 나오지 않고 골퍼의 생각만 그렸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의 진수를 보여주는 전위적인 만화였지만 역시 호응이 적어 중간에 접었다. 앞으로도 골프 만화를 그릴 생각이 없다.
 
그는 “만화는 약간 과장되게 그려야 한다. 독자들에게 액션을 줘야 한다. 그러나 미세한 골프는 과장된 동작을 보여주면 안 된다. 내가 잘 모르면 뻥을 칠 수 있지만, 골프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문하생에게도 세세하게 다 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니다”고 했다.
 
허영만 뿐만 아니라 다른 만화가들도 골프를 좋아하는 이가 많다. 이현세(62)는 미셸 위와 신지애를 모델로 『버디』라는 만화를 그렸다. ‘독고탁’의 이상무(2016년 작고)는 50대 중반 들어서는 사실상 골프 전문 화백이 됐다. 골프 만화와 레슨뿐만 아니라 룰이나, 에티켓에 관한 만화도 그렸다.
비 와서 라운드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한 작품.

비 와서 라운드 못하는 아쉬움을 표현한 작품.

허영만은 “이현세씨와는 노는 물이 달라 딱 한 번 함께 골프를 쳤다”고 했다. 핸디캡 4인 이상무와는 라이벌이었다. 이상무 화백의 홈구장은 땅이 평평한 로열 골프장, 허영만 화백의 홈 코스는 굴곡이 많은 뉴서울 골프장이었다. 로열에서 플레이하면 이 화백이, 뉴서울에서 치면 허 화백이 대부분 이겼다. 겨울에도 공을 쳤는데 이상무 화백은 코스 주변의 바위틈에 양주를 숨겨 놓고 홀짝홀짝 마시기도 했단다.
 
가장 좋은 골프 친구는 『삼국지』를 그린 고우영(2005년 작고)이었다. 허영만은 “10여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금요일이면 고우영 선배와 동반 라운드를 했다. 골프를 아주 좋아해 여름에 하루 36홀을 돈 일도 있다. 우드를 기가 막히게 잘 쳤다. 고 선배가 나이가 들면서 전장이 짧은 옐로 티잉그라운드에서 치겠다고 했는데 내가 허락을 안 해줬다. 나이 들어 거리가 줄어드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고 화백은 나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으신데도 나를 한 번도 하대하지 않은 자상한 선배였다. 저 세상에 가서 만나면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허 화백의 눈시울이 잠깐 붉어졌다.  
허영만 화백이 지갑 속에 넣어 다니는 스윙 비밀 메모. [성호준 기자]

허영만 화백이 지갑 속에 넣어 다니는 스윙 비밀 메모. [성호준 기자]

 
그는 지갑에 골프 스윙 방법을 적은 쪽지를 가지고 다닌다. ‘삼각형 유지. 스냅 주면 안 된다’ 등 그의 스윙 비밀이 담겨있다. 그는 “쪽지를 공개해도 된다. 내 골프 라이벌들도 다들 지갑에 쪽지 하나씩 넣어 다닌다. 내용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라고 했다.
 
허영만은 라운드를 할 때 플랫캡에 무릎까지 오는 흰 스타킹, 니코보코스를 입는다. 그는 “후줄근하게 입으면 마누라가 뭐라고 그런다. 여성들은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산다. 남자들도 어느 정도는 눈요깃거리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골퍼는 박성현과 이정민이다. “폼이 다이나믹하다”고 했다.  
 
허영만은 “2~3년 전부터 거리가 줄어든 탓에 골프가 시들해졌다” 고 털어놨다. 그러나 최근 거리가 많이 나는 신제품 클럽을 쓰면서 다시 활력을 찾았다. 그는 “매일 팔굽혀펴기와 스쿼트운동을 하면서 거리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도 내 만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허영만의 드라이브샷. [허영만 제공]

허영만의 드라이브샷. [허영만 제공]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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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