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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에 건 그림, 미술은 꼭 무거워야만 하나

노상호 작가는 우리가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방식을 창작에 반영하며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

노상호 작가는 우리가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방식을 창작에 반영하며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

이 작가, 좀 당돌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전 전시장에 드로잉 작품을 옷걸이에 달랑달랑 걸어놨다. 마치 손수건이나 티셔츠를 한 장씩 비닐 패키지에 넣은 것처럼 드로잉을 줄줄이 걸어놓은 풍경이다. 관람객은  A4용지 크기의 그의 드로잉 작품을 보려면 옷걸이를 일일이 들춰봐야 한다. 그렇게 걸린 작품이 400여 점(전시작은 총 1500점)에 달한다. ‘옷가게’처럼 연출한 이 전시장은 서울 율곡로에 자리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옛 공간소극장). 요즘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젊은 작가 노상호(32)의 개인전 ‘더 그레이트 챕북 II’가 열리는 곳이다.
 
왜 작품을 옷처럼 걸어놓았을까?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내 드로잉을 옷과 같은 평범한 소비재처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저렴하고 편한 티셔츠나 디지털 시대에 매일 눈으로 소화하는 숱한 이미지나 그것들을 소비하는 방식에선 별로 다를 게 없다”는 설명이다.
 
노상호 작가. [사진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

노상호 작가. [사진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

보여주는 방식만 특이한 게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미지를 모으고 창작하는 방식이다. 인스타그램이나 구글 등 온라인에 올라온 이미지를 매일 그러모으는 그는 매일 일기를 쓰는 작업처럼 하루에 3~4장씩 A4 종이에 채색 드로잉을 한다. 이렇게 모은 이미지를 재료로 대형 캔버스에 옮겨 그리고, 한 데 그려진 이미지를 다시 조각조각 쪼개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낱개의 드로잉 조각부터, 대형 걸개그림, 그것을 다시 작게 나누고 프레임에 담은 작품을 다 모아놨다. ‘디지털 이미지 헤쳐 모여’ 놀이의 결과물이다. 4인조 록밴드 ‘혁오’ 데뷔 때부터 앨범 커버 작업을 해온 그는 이 역시 이미지 조각을 꼴라주하듯이 붙이는 방식으로 해왔다.
 
작가는 “요즘 누구나 다 경험하듯이 내게 이미지가 들어오고, 나를 통해 다시 이미지가 나간다. ‘나’라는 필터, 혹은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지가 생산되고 유통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이미지를 스치고 고르고 검색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과정 안에 ‘아주 얇게’ 내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생산자이자 공유자, 소비자로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옷걸이에 걸린 드로잉 작품들. [사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옷걸이에 걸린 드로잉 작품들. [사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전시 제목이 ‘더 그레이트 챕북’인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챕북’은 쉽게 만들어 빠르게 유통시키는 얇고 저렴한 대량생산 출판물을 뜻한다. 많은 양의 이미지를 ‘더 팔랑거리게, 더 얇고 가볍게, 더 쉽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그가 작업한 자신의 이미지를 조각 내 판매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나아가 서울 연남동에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아트와 굿즈 편집숍 ‘다다 픽 쇼룸’ 운영에도 나선 이유다. ‘작품’과 ‘상품’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렇게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시대를 특별히 예찬하지도, 비관하거나 조롱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디지털 가상세계에 우리의 감각과 정신을 절반 정도 담그고 사는 게 지금 우리 모습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전시는 2월 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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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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