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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퍼스펙티브] 국회 분원을 만들 건가, 갑질을 계속할 건가

국회 세종 분원
“선거 때 재미를 좀 봤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은 투박하다. 그렇지만, 메시지가 분명하다. 먹물을 먹지 않은 사람 귀에도 쏙쏙 들어온다. 이 말도 그런 식이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는 말이다. 솔직한 표현이다. 그렇다고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선거에 이용할 생각만 한 건 아닐 것이다. 그의 생각은 오래된 것이다.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고민한 결과다.
 
그러나 이제 그의 진심은 바래고, 껍데기만 남았다. 그가 사라진 이후 이 공약은 선거공학적으로만 이용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후보들이 모두 세종시 관련 공약을 했다. 6·13 지방선거 때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세종의사당’(국회 분원) 설치를 공약했다.
 
민주당 대표 선거 때는 대전 TV 토론회에서 후보 세 명이 모두 국회 세종 분원 설치를 약속했다. 특히 이해찬 후보는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사무총장과 만나 원취지대로 조속히 (국회 분원 설치가) 추진될 수 있도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가 지역구인 이 후보가 집권당 대표가 됐다. 그만큼 실현 가능성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같은 약속을 되풀이하는 것은 진전이 없기 때문이다.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 이 대표가 사무총장에게 요청하겠다는 것도 올해 예산에 반영된 조사용역비 2억원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사무처 담당자는 “의원들이 합의해 어디에 써야 할지 지정해주지 않아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 길 잃은 세종 국회 분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저는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면서 개헌을 꺼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도 언급했다. “욕심이야 이전하고 싶지만, 시간을 두고 검토할 것 같고, 앞장서서 드라이브 걸기도 그렇다. 다만 행정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 국회 분원을 설치하면 국민이 환영할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올 3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행정수도 문제도 집어넣었다. 3조2항에 ‘대한민국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했다. 행정수도, 경제수도 등을 법률로 따로 정할 수 있게 위임한 것이다. 당장 논란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검토하더라도 국회의 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다.
 
지난해 4월 17일 대전 거리유세 때 문재인 후보는 “경제수도 서울이 있고, 해양수도 부산이 있고, 문화수도 광주가 있고, 과학수도 대전이 있고, 행정수도 세종도 있으면 우리 대한민국이 더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었다. 각 지역마다 선물을 하나씩 던져줄 수 있고, 행정수도 이전에 합의를 이끌어내는 묘수일 수도 있다. 그 내용을 개헌안에 담은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개헌을 하면 국회 분원이 의미가 없다는 이유로 묻혔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지지부진이다.
 
# 잠자는 용역 조사 예산
 
문 대통령이 5당 원내대표들에게 분원 이야기를 꺼낸 뒤 지난해 8월부터 한국행정연구원이 타당성 연구를 맡았다. 국회사무처와 행복도시건설청, 세종시가 발주한 용역이다. 지난해 11월 그 중간 결과를 보고했다. 그런데 그 전체 보고서는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들은 “제대로 된 조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보도를 위해 발표한 보고 내용은 정치·사회·행정·경제적으로 타당하고, 법적 문제도 없다는 것이다. 국회 분원을 설치하면 이전에 드는 비용보다 6~7배의 균형발전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부 세종청사 공무원들이 국회에 출장하면서 드는 비용이 부처별로 연간 5000만원에서 5억원인데 이것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이해찬 의원은 국회 분원을 바로 추진하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올해 국회 예산을 짜면서 전혀 반영이 안 된 것을 이 의원이 요구해 2억원을 넣었다. 설계 예산으로 20억원을 요구했으나 그것마저 10분의 1로 깎인 것이다. 설계 용역은 미루고, 우선 국회 분원의 규모와 조직, 인원 등에 대한 방안을 수립하는 용역을 맡기자는 타협이었다.
 
그런데 이 예산마저 아직도 잠자고 있다. 이해찬 대표가 국회 사무총장에게 요청하겠다는 것은 이 예산을 집행해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국회 의원이나 국회 사무처나 모두 사실상 ‘태업’(怠業)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 과장, 길 국장’이라는 행정 비효율을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 선거 때는 꺼내놓지만, 막상 자신들이 세종시로 옮겨가는 것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국회 사무처가 검토보고서에서 세종 분원 설치 법안에 대해 ‘스마트 워크 센터’ 등을 이유로 비용대비 효과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 국회법 개정안 심의도 안 해
 
세종시로 국회 분원을 옮기는 안은 2012년 박수현 전 의원이 처음 법안으로 제출됐다. 문재인 대통령, 이해찬 대표,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46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국회는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분원(分院)을 설치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 규칙에 위임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심의하지 않고 그냥 묻어놓았다. 그러다 2016년 4월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함께 폐기됐다.
 
2016년 6월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이해찬 의원이 다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8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박수현 전 의원의 법안과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설치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을 ‘분원을 둔다’는 강제규정으로 바꾼 것이다.
 
이해찬 대표는 ‘세종 분원’의 방향도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예결위와 10개 상임위 회의 시설을 갖춘 분원 건물과 의원 사무공간(100실)을 신축한다는 것이다. 또 각 위원장실, 속기·경호·국회방송을 비롯한 회의 지원 인력과 방송시설·장비 등을 설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 경우 107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 대표는 “국회는 처음 설계할 때 자리를 마련해놓은 곳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 부지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 길 위의 공무원들
 
국회 분원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찬 대표는 이렇게 정리했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이 설치되면 각 부처 공무원은 여의도 국회로 올 필요가 없고, 대신 국회의원이 국회 분원으로 가면 된다. 그렇게 되면 전 부처 국장급 이상 공무원의 행정적 낭비, 시간적 낭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장·차관은 서울에 있다. 적어도 절반은 서울에 머문다. 그러니 세종시에 있는 부처는 대부분 서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에 국·과장이 불려 다니니 감독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한 전직 장관은 최근 정부 보고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어떻게 정부 공식 문서가 이런 수준밖에 안 되는지 걱정했다고 한다. 그는 “간부들이 부하 직원과 직접 대면 토론을 하고,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전상의 손실로 측정할 수 없는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이다.
 
# 약속을 잊어버렸나?
 
개헌이 되기 전 국회 분원이라도 만들자는 제안이 그래서 나왔다. 선거 때면 거의 모든 후보가 여기에 동조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충북 기자간담회에서 “행정자치부를 세종시로 이전시키고, 국회 분원을 설치해 장기적으로 완전한 행정수도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월에는 더 구체적으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해 국회의원들이 내려와서 상임위원회를 열고, 국정감사를 하도록 만들겠다. 대통령도 가능하면 부처 업무보고를 세종시로 내려와서 하겠다”고 약속했다. 비슷한 공약을 수없이 반복했다.
 
다른 후보들도 거의 비슷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지난해 4월 국회 헌법개정특위에 “국회를 국무총리 산하기관과 함께 세종시로 이전하겠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기자간담회에서 “국회 분원을 설치하겠다”고 말했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국회는 국토의 중심인 세종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 왜 미적거리나?
 
지난달 본사가 설문조사할 때 조사원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조사를 왜 하느냐?”였다. “이미 대통령 선거 때 모든 후보가 국회 분원 설치를 다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이제 실행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2016년 6월에 제출한 국회법 개정안이 올 2월에야 소위에 넘어갔다. 그런데도 “지금 당장 결론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냥 묻어놓았다.
 
지금 구조에서는 행정 공무원들이 고생이다.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락가락한다. 결제를 카톡으로 하건, 대면 보고나 토론 없는 업무를 보건 다 행정 공무원들의 몫이다. 분원을 만들면 국회의원들이 세종시로 찾아가야 한다. 의원 보좌진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이 바빠진다. 일부는 세종시에 상주해야 한다. ‘갑’인 국회가 ‘을’인 공무원을 위해 분원을 만드는 꼴이다. 국민에게 행정 비효율을 말하는 건 선거 때나 하는 것인가. 올해 정기국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 처리와 예산 배정에서 본색이 드러나게 돼 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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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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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