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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물에 국수 말아먹던 가난도 이젠 애틋한 추억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43)
나는 국수를 참 좋아한다. 이전에 엄마는 국수를 삶으면 면 위에 온갖 고명을 올려주었는데 무지개 색색 고명을 얹은 국수 한 그릇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만큼 맛도 있었다. [중앙포토]

나는 국수를 참 좋아한다. 이전에 엄마는 국수를 삶으면 면 위에 온갖 고명을 올려주었는데 무지개 색색 고명을 얹은 국수 한 그릇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만큼 맛도 있었다. [중앙포토]

 
나는 국수를 참 좋아한다. 음식 만들기 싫어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요리이다. 삼시 세끼 국수만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국수 종류도 다양해서 잔치국수, 칼국수, 비빔국수, 냉면, 온면, 짬뽕 등 한 달 내내 메뉴를 바꿔가며 먹어도 될 만큼 종류도 많다. 단점은 살이 저절로 찌는 것이다. 이전에 엄마는 국수를 삶으면 면 위에 온갖 고명을 올려주었는데 무지개 색색 고명을 얹은 국수 한 그릇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만큼 맛도 있었다.
 
국수는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처녀 적엔 그렇게 고명을 얹고 먹음직스러운 국수만 먹다가 시집을 가니 그곳의 국수는 쌀이 다 떨어져 배고픔을 더는 양식이었다. 양식이 없을 때 얼마나 칼국수를 많이 늘려 먹었던지 남편은 국수를 가장 싫어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부엌에 들어가니 국수가 삶겨 있었다. 어머님이 내가 국수를 좋아한다고 손수 삶아 놓으신 거라고 하셨다. 좋아서 다시물을 찾으니 주위에 물은커녕 고명도 아무것도 없었다. 시어머니께 국수를 어떻게 먹냐고 하니 손수 내려오셔서 국수 그릇을 들고 우물에서 떠온 물을 붓더니 조선간장 한 수저를 넣어 주셨다.
 
그날 나는 눈물이 국수 그릇에 뚝뚝 떨어지는 걸 모른 척하며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지금도 가끔 간장 한 수저로 간을 한 그 국수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국수는 갑자기 손님이 쳐들어 와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끼 음식이다. [중앙포토]

국수는 갑자기 손님이 쳐들어 와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끼 음식이다. [중앙포토]

 
국수는 갑자기 손님이 쳐들어 와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끼 음식이라 집에는 늘 국수가 쌓여있다. 내가 낮선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살게 된 이유도 국수 때문이다. 시골 내려가 처음 살게 된 집은 청량산 뒷산 꼭대기에 한 채 있는 빈집이어서 가장 가까운 민가를 가려면 4km를 걸어 내려가야 했다.
 
바꾸어 말하면 공기도 물도 환경도 깨끗한 청정 지역이라 사계절 내내 봄이면 나물하러, 여름가을엔 버섯 채취하러, 약초 캐러, 눈 내린 겨울엔 노루 산토끼 잡으러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라는데 키우던 개들이 짖어대면 정말로 무서웠다.
 
가끔은 사냥 허가를 받아 총을 들고 나타나면 더욱더 그랬다. 그래도 허기진 사람들과 소통한 것이 국수다. 누구든 올라오면 국수를 삶아 대접했다. 산나물 하러 오셨다가 국수를 드시고 내려가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나를 옥산골 선녀라고 불러줬다.
 
어느 일요일도 개가 하도 짖어서 나가보니 봉고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거긴 비포장에 산길이라 일반 승용차는 못 올라오고 사륜 구동 차만 올라올 수 있었다. 때론 트럭도 올라오곤 했는데 그럴 땐 짐칸에 커다란 돌이 가득 실려 있었다. 봉고차가 올라오면 사람이 돌 대신 가득 실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한참 ‘오지를 찾아서’라는 방송이 인기를 끌던 때라 그 회원들이 오지를 찾아 온 것이다.
 
경북 포항시의 한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말리기 위해 면발을 건조대에 널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경북 포항시의 한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말리기 위해 면발을 건조대에 널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집 앞에 와서 내리는 사람을 세어보니 9명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어디서 헤매다 왔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마침 중참 겸 국수를 삶으려고 물을 데워 놓은 때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으라 하고는 국수를 삶아 고명대신 열무김치를 총총 썰어 얹어 대접했다.
 
다시물도 없이 열무김치 국물로 맹물을 더해 만든 국수가 뭔 맛이 있을까마는 그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라며 손을 치켜들어줬다. 배고픔은 어떤 먹거리도 최고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그분들이 내려가서 자랑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은 군의원이 된 어느 분이 면장으로 있을 적에 소문을 듣고 올라와서 산길도 정비해줬다.
 
지금 동네에서도 당연히 국수를 자주 삶는다. 심심한 어르신을 위해 어느 땐 온갖 것을 다 넣어 삶아 내는 장국수, 어느 날엔 잔치국수를 만들어 대접한다. 언젠가 직장 일을 그만 두게 되면 음식 잘하는 여동생과 함께 작은 국수집을 열어 저렴한 가격에 물리지 않고 허전함을 가시게 하는 맛있는 국수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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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