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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이해찬과 손·정·김, 국회의 ‘붉은 깃발’ 뽑아야

‘올드 보이’ 4당 대표 애증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이틀 뒤인 8월27일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예방했다.   
▶김병준="(마중 나가서 손을 내밀며) 오랜만입니다."
▶이해찬="한 10년만? 청와대 계실 때 이후로 처음이네."  
 
노무현 정부에서 이 대표는 1년9개월 동안 실세형 국무총리를 지냈다. 이 기간에 김 위원장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약 100번의 당·정·청 회의를 했다. 그렇게 약 1000건의 현안을 해결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과 100번은 만나 문제를 함께 푼 셈이다.  
 
이해찬(66), 김병준(64), 손학규(71), 정동영(65). 이른바 '올드보이'들은 서로 질긴 인연을 갖고 있다. 이들의 긴 애증사를 되돌아봤다.
 
노무현정부 시절 당정청 회의. 오른쪽이 당시 이해찬 총리, 왼쪽이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두 사람 사이로 오른쪽부터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정세균 의원, 이계안 의원. 이 총리는 당시 당정청회의를 100번 정도 개최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노무현정부 시절 당정청 회의. 오른쪽이 당시 이해찬 총리, 왼쪽이 김병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두 사람 사이로 오른쪽부터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정세균 의원, 이계안 의원. 이 총리는 당시 당정청회의를 100번 정도 개최했다고 밝혔다. [중앙포토]

8월27일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을 예방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날 두 사람은 환한 낯이었지만 말속엔 뼈가 있었다. [연합뉴스]

8월27일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을 예방한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날 두 사람은 환한 낯이었지만 말속엔 뼈가 있었다. [연합뉴스]

  
①이해찬-김진표-김병준의 대담 들여다보니  
 
이 대표는 김 위원장을 본 게 얼추 10년 만이라고 기억했지만 두 사람은 8년 전에도 만난 일이 있다.
이명박 정부 3년 차인 2010년 4월8일. 노무현 정부 각료 출신 네 사람이 대담을 했다. 이해찬 당시 재단법인 광장 이사장, 얼마 전까지 이 대표와 경쟁했던 김진표 민주당 의원,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그리고 김병준 국민대 교수였다.
 
대담 주제는 ‘참여정부의 정책방향과 의의’.『광장에서 길을 묻다』에 수록된 대화내용이다.

 
▶이해찬="저출산고령화 정책은 우리가 역점을 두고 만들었던 건데, 이번 정부에서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 지금은 표가 안 날지 몰라도 10년, 20년 후 굉장한 데모그라피(인구통계)의 불균형을 가져와 심각한 사태를 일으킨다."  
 
▶김진표="참여정부 때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위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건복지부장관 밑으로 갔다. 격하된 거다. 장관이 관심이 없으니까 회의가 소집도 안 되고…(중략)"
 
▶이종석="이 대통령은 (정책을) 혼자 결정하고 제왕적으로 지시를 한다."
 
▶김병준="노 대통령께서는 ‘회의 없는 결정은 없다. 나한테 결단을 요구하지 마라. 아무 때나 문건 가지고 와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고 요구하지 마라'고 말씀하셨다. 회의에서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의견만 말하면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을 참석시켜 이야기를 다시 들었다. 지금(이명박 정부)은 아닌 것 같다."  
 
김 위원장은 “옛날 건설회사는 수주할 때 비밀스럽게 돈 써내고 떡값 주고 해야 되니까 담당자와 사장만 극비리에 일을 처리하는 구조였는데, 그런 구조에 익숙한 대통령이라 안보문제도 외교안보수석이랑만 (비밀스레) 소통한다"고 주장했다. 
"공군작전사령부 레이더까지 들어와 있는 안보상황실 벙커(청와대 벙커)를 우리가 만들어놓았는데, 경제정책을 홍보하는 포퓰리즘적으로 쓰인다”, "서민경제가 완전히 죽을 지경인데 정부는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교육을 이념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색칠하려다 보니 아주 단선적이고 단기적인 정책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말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그런데 사정이 달라졌다. 8월27일 여야대표로 만나 나눈 대화다.  
 
김병준="(이 대표가) 정책적 혜안이 있으시고 결단력이 있으시니 (정책에) '여러 변화'가 있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표현은 정중했으나 한국당이 반대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의 수정을 은근히 압박한 발언이다. 이 대표도 응수했다.
 
이해찬="예전에 청와대 계실 때 저희가 당정청 회의를 많이 했잖나. 그런 마음으로 하시면…."
김병준="그때는 당·정·청 회의지만, (이제는) 대표를 맡고 있으니까 여야 간 대화를 잘해야….기본적인 경제정책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달라서, 그런 점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정·청 회의’의 추억에 호응하지 않고 ‘여야대화’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최고수준의 협치'를 내걸었다. 협치를 위해 ‘5당 대표회담’도 제안한 상태다. 느슨한 협치가 아니라 최고수준의 협치가 가능하려면 한국당의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전망이 밝지 않다.
 
'최고수준의 협치'가 벽에 부딪히면 사안별로 '개혁입법벨트'를 추진할 수도 있다. '민주당(129석)+민평당(14석)+정의당(5석)+무소속+바른미래당 비례대표 3인(박주현·이상돈·장정숙) 플러스 알파'가 입법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려면 이해찬·손학규·정동영 대표(이하 경칭생략)간의 호흡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경쟁과 협력을 반복해온 세사람이다.
 
이해찬-정동영-손학규 세사람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를 놓고 경쟁했다. 승자는 정동영. 사진은 정동영 후보가 그해 10월15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다. 정 후보가 패자의 손을 끌어당기고 있다. [중앙포토]

이해찬-정동영-손학규 세사람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후보를 놓고 경쟁했다. 승자는 정동영. 사진은 정동영 후보가 그해 10월15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다. 정 후보가 패자의 손을 끌어당기고 있다. [중앙포토]

  
②대권-당권 1승1패한 손학규-정동영
 
세 사람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로 경쟁했다. 1위 정동영, 2위 손학규, 3위 이해찬이었다.  
 
하지만 정동영은 그해 12월 대선에서 패하고, 손학규가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표가 되어 당을 추스르기로 했다. 이때 이해찬은 탈당했다.“한나라당 출신이 당 대표를 맡느냐”면서다. 그는 총선도 불출마하고, 정치권을 떠났다. 어찌 보면 난파선에서 먼저 뛰어내린 셈이었다.
 
손학규가 지휘한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손학규는 "반성하겠다"며 강원도 춘천 동내면으로 들어갔다. 정동영은 민주당을 탈당했다. 2009년 보궐선거(전주덕진) 출마를 원했는데 공천을 주지 않자 당을 떠나버렸다. 2008~2009년은 민주당의 흑역사였다.
 
민주당이 회생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였다. 송영길·이광재·안희정·김두관 등 범야권 후보의 승리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손학규는 25개월 만에 하산했고, 집 나간 정동영도 돌아왔다. 이해찬만 돌아오지 않았다.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 그해 8월15일 강원도 춘천에서 25개월간의 칩거를 마감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손 대표가 기자들과 먹을 닭백숙을 꺼내고 있다. [중앙포토]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이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 그해 8월15일 강원도 춘천에서 25개월간의 칩거를 마감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손 대표가 기자들과 먹을 닭백숙을 꺼내고 있다. [중앙포토]

 
손학규대표가 춘천 칩거 생활을 마감하며 기자간담회를 갖는 자리에 예고 없이 이광재 강원지사가 찾아와 막걸리로 러브샷을 했다. 당시 이 지사는 예상을 깨고 강원도에서 당선돼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중앙포토 ]

손학규대표가 춘천 칩거 생활을 마감하며 기자간담회를 갖는 자리에 예고 없이 이광재 강원지사가 찾아와 막걸리로 러브샷을 했다. 당시 이 지사는 예상을 깨고 강원도에서 당선돼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중앙포토 ]

그해 10월 민주당은 새 대표를 뽑았다. 손학규·정동영·정세균·박주선 의원 등이 레이스를 벌여 손학규가 1위를 했다. 2위는 정동영. 대선후보 경선의 설욕전이었다.
 
두 사람은 스타일부터 정반대다. 흔히 정치를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한다. 정동영은 감각이 빠르고 판단이 신속하다. 열린우리당 의장(대표) 시절 트레이드 마크가 ‘몽골기병론’이었다. 그러나 타이밍이 반 박자 빨라 곤경에 빠진 적도 있다.  
 
손학규는 인내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강원도 춘천에서 25개월, 전남 강진군 만덕산에서 2년 3개월 칩거하며 때를 기다린 적도 있다. 대신 타이밍이 반 박자 느려 실기(失機)할 때도 있다.
문재인 대표시절인 2015년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하)을 두번째 탈당한 정동영 대표. 정 대표는 탈당후 4·29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3위를 하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관악악을 지역 성당을 돌다 문재인 대표와 마주쳤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표시절인 2015년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하)을 두번째 탈당한 정동영 대표. 정 대표는 탈당후 4·29 관악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3위를 하며 위기를 맞았다. 당시 관악악을 지역 성당을 돌다 문재인 대표와 마주쳤다. [중앙포토]

 
2014년 보궐선거에서 패한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 만덕산 토굴로 들어간 손학규 대표. 부인 이윤영 여사와 토굴 아래에 있는 백련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2014년 보궐선거에서 패한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 만덕산 토굴로 들어간 손학규 대표. 부인 이윤영 여사와 토굴 아래에 있는 백련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③손학규, 『저녁있는 삶』출판기념회 풍경
 
2010년 대표가 된 손학규는 이듬해인 2011년 4월, 성남분당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주가를 올렸다. 한나라당에선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부르던, 민주당의 험지였다. 기세를 올린 손학규는 2012년 대선을 겨냥해 범야권통합(빅 텐트론) 움직임에 동승했다. 이 무렵 이해찬이 돌아왔다.  
손학규 대표가 2011년 4.27 분당을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중앙포토]

손학규 대표가 2011년 4.27 분당을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있다.[중앙포토]

 
2012년 7월5일. 손학규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저녁있는 삶』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축사를 한 사람이 이해찬이었다. 그는 이렇게 축사를 했다.
“제가 한때는 손학규 대표님을 미워했다. 같이 (7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한나라당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당에 출마하고, 오로지 정권교체를 위해 당신을 버리는 모습을 보고, 이제부터는 존경한다고 말씀드리겠다.”
 
손학규를 비난하고 떠난 지 4년 만의 관계 반전이었다.  
 
이날 손 대표의 출판기념회에는 지금의 이낙연 국무총리도 참석했다. 축사를 한 사람 중에는 당시 고려대 교수였던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있었다.  
 
그는 축사에서“(손 대표는) 참 좋은 분”이라며 “가지고 계신 좋은 콘텐트가 (사람들)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도록 강한 리더십을 보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손학규는 지금 장하성 실장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④다당제가 가능케 한 '올드보이'의 귀환
 
2012년 대선까지 한 지붕 아래 있던 이해찬-손학규-정동영 세 사람은 2016년 총선을 전후해 다시 한번 '마이웨이'에 나섰다.
 

이해찬 대표가 2016년 민주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시 "공천탈락의 근거와 명분이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해찬 대표가 2016년 민주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당시 "공천탈락의 근거와 명분이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해찬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공천탈락→탈당→무소속 출마로 당선→복당→대표 등극의 숨 가쁜 여정을 거쳤다.
 
정동영은 2015년 민주당을 다시 탈당했다가 2016년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손학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민주당을 탈당해 2017년 국민의당에 둥지를 틀었다.
 
그랬다가 다시 갈라섰다. 올 초 '안철수+유승민'의 바른미래당 창당에 정동영은 반대하고 손학규는 찬성하면서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합집산 끝에 세 사람은 여야 당수로 다시 만나게 됐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입당해 2016년 국회등원에 성공한 정동영 대표. 의원총회에서 두 사람이 악수를 나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바른미래당 창당에 반대해 안철수와 결별했다. 김호영기자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입당해 2016년 국회등원에 성공한 정동영 대표. 의원총회에서 두 사람이 악수를 나고 있다. 하지만 정 대표는 바른미래당 창당에 반대해 안철수와 결별했다. 김호영기자

 
손학규 대표는 바른미래당 창당에 찬성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안철수 서울시장후보를 지원했다. 손 대표가 꽃다발을 안 후보에게 전달하고 있다. 왼쪽은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중앙포토]

손학규 대표는 바른미래당 창당에 찬성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안철수 서울시장후보를 지원했다. 손 대표가 꽃다발을 안 후보에게 전달하고 있다. 왼쪽은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중앙포토]

이른바 '올드보이의 귀환'을 가능하게 한 건 '다당제' 구도다. 양당체제였다면 정동영이나 손학규가 민주당에서 기회를 잡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민의당 분당사태가 길을 열어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오랜 경쟁관계였던 손학규-정동영은 현재 다당제에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 다당제를 유지하려면 선거구제를 바꿔 정당득표율만큼 의석을 얻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해서 여권을 압박할 명분도 있다.    
 
그래서 정동영은 취임 후 '기·승·전 선거구제 개편’을 말하고 있다. 손학규의 취임 일성은 "여의도 입구를 지키고 있는 큰 곰 두 마리와 싸우겠다"였다. '큰 곰 두 마리'란 민주당과 한국당, 즉 양당제를 말한다. 다당제를 위해 그는 "'제왕적 대통령'과 '승자독식 양당제'라는 두 개의 괴물을 물리치겠다"고도 했다.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반면 여권은 선거구제 개편이 절박하진 않다. '일자리 예산안+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의 민생법안+규제혁신법안'의 패키지 통과가 급선무다. 다만 이해찬은 4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면서 성의 표시는 했다. 하지만 선거구제 개편 문제에 입장이 분명치 않은 한국당 변수가 있다. 어쨌든 서로 패는 드러나 있으니 어떻게 절충하느냐가 관건이다.  
 
  
⑤최고의 협치 가능할까
 
3일 오후 방송의날 기념식에 모인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4당대표. 문 대통령은 조만간 4당대표에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왼쪽은 민주당 노웅래 의원, 문 대통령 왼쪽은 박정훈 방송협회장, 오른쪽은,이효성 방통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중앙일보 김상선 기자

3일 오후 방송의날 기념식에 모인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4당대표. 문 대통령은 조만간 4당대표에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왼쪽은 민주당 노웅래 의원, 문 대통령 왼쪽은 박정훈 방송협회장, 오른쪽은,이효성 방통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중앙일보 김상선 기자

방송의날 축하연에서 김병준 위원장, 손학규 대표에게 건배를 권하는 문 대통령./청와대사진기자단 = 중앙일보 김상선 기자

방송의날 축하연에서 김병준 위원장, 손학규 대표에게 건배를 권하는 문 대통령./청와대사진기자단 = 중앙일보 김상선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이광재(53) 여시재원장(전 강원지사)은 네 사람과 모두 정치를 해봤다. 이해찬은 1980년대 후반 노무현 의원 보좌관 시절부터 알았고, 김병준과는 노무현 후보의 사실상 대선캠프였던 자치경영연구원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김병준은 자치경영연구원장을 맡았다. 강원도에 칩거중이던 손학규와는 기자들 앞에서 막걸리 러브샷을 한 적도 있다. 정동영과는 열린우리당 의장-의원으로 활동한 연이 있다.    
 
이 원장은 "네 분은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넘어 다음의 디지털 경제시대로 넘어갈 징검다리를 놓을 역량이 있는 분들”이라며 “독일 아데나워 총리는 73세의 고령에 총리가 되어 연정의 전통을 수립해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시대와의 결별은 연정이나 협치가 안되면 불가능하다. 네분이 인생 전 역정의 전 경험을 투입해 대타협을 이뤄내 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얼마 전 문 대통령은 은산분리 완화를 언급하며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인용했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기 위해 사람이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도록 했다는 불필요한 규제의 대명사다.
 
한번 법안이 들어가기만 하면 소식이 없는 대한민국 국회에는 곳곳에 '붉은 깃발'이 있다. 국회 자체가 거대한 ‘붉은 깃발’인지 모른다. 올드보이들의 정치력으로 국회의 '붉은 깃발'을 뽑아버릴 수 있을까. '올드보이'도 '새정치'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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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