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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김승진 해양모험가, 209일동안 요트로 세계일주… "50대에 모험가 꿈 이뤘죠"

 

우우우웅~ 10m가 넘는 거대한 파도가 배를 밀어올린다. 날카로운 굉음을 길게 울리며 배가 높은 파도 위를 미끄러진다.

평소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다. 파도에 떠밀려 배가 옆으로 돌기 시작하면 마음속으로 외친다. ‘제발 옆으로 틀어지지만 마라!’

선체가 옆으로 돌아가면 파도에 전복되기 싶다.

광~ 콰르르르륵~

배 밑바닥이 파도에 얻어맞는 소리,물살 가르는 소리가 괴기스럽게 들린다.

플라스틱으로 된 선체 하부, 그 바깥은 지옥이다.

소금물로 눅눅해진 침대에 기대어 소리에 집중한다.

왜목항을 떠난 지 107일째. 나는 홀로 어둡고 차가운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바다의 에베레스트 혹은 요트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

지구상에서 가장 험한 바다, 내가 14년을 그려왔던 꿈의 바다, 케이프 혼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바다가 산처럼 일어선다. 세찬 바람이 솟구치는 파도의 끝을 깎아 흩뿌린다. 높은 너울 위에 흰 파도가 바람의 무늬를 그린다. 그 무늬가 무섭고도 아름답다.

떠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이 경이로운 광경을 지구 한 귀퉁이에서 나 홀로 지켜보고 있다.”

 


209일, 5천16시간 무기항, 무원조로 세계일주를 이뤄낸 해양탐험가 김승진(56) 선장의 항해일지의 일부 내용이다. 그가 바다 위에 떠있는 만큼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바다와 지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2014년 10월19일 충남 당진 왜목항에서 세계일주의 스타트를 알렸고 모험 중 상어와 해적에게 쫓기고 2번의 전복, 요트 고장 등 극한 모험 끝에 2015년 5월16일 다시 돌아왔다.

김 선장의 이 같은 용기와 도전 정신은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특히 청년 취업난에 좌절을 겪는 청년들에게,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에 맞서 전진하는 그의 모습은 귀감이 된다.

김 선장의 바다 모험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됐다.

다큐 PD로 일하던 2001년, 일본 출장길에서 운명같이 만난 그 책은 바로 일본인 시라이시 코지로가 쓴 ‘7개의 바다를 건너서’다.

이 책은 1994년 26세의 나이에 세계 최연소 단독 무기항·무원조로 176일만에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한 시라이시의 자서전이다. 이 이야기는 김 선장에게 크게 다가왔다.

김 선장은 그날부터 요트와 항해에 대한 관련 지식을 쌓았고, 현재는 잘나가던 프리랜서 PD에서 직업까지 바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자연의 무서움과 경이로움을 모두 맛본 그에게 바다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몸으로 깨달은 생존의 절박함, 삶의 의미, 도전 정신 등을 들어본다.

 


-바다로 모험을 혼자 떠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바다가 선장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그렇다보니 모험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고향은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청원구) 남이면이라는 산골마을이다보니, 자연에서 뛰어놀며 호기심을 키웠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 바다에 나가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죠. 충북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어떤 색인지도 몰랐습니다. 당시 TV는 흑백이었고 사진으로만 봤던 시설이었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때 수학여행으로 강원도 강릉과 속초를 갔는데 그때 바다를 처음보고 충격을 받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바다 모험은 대학때 시작 됐습니다. 스킨스쿠버를 시작한거죠. 스킨스쿠버 장비를 파는 곳을 지나가는데, 요놈의 호기심이 또 발동을 하더라고요. 눈이 완전히 사로잡혀버렸죠. 바로 산소통, 오리발, 작살 등을 구입해버렸는데 신기하더라고요. 때마침 스킨스쿠버 무료 강습도 진행돼 본격적으로 바다의 매력에 빠져버렸습니다. 바다를 접하고 나서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 스킨스쿠버 할때는 제가 지구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내가 사는 별이 어느별인줄 몰랐던 것 같았는데, 요트를 시작하고 지구를 돌면서 바다와 섬, 대륙에 대해 자세히 알고보니,‘내가 지구인이구나’하고 알게 됐습니다.”

-50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해양모험가라고 깨달으셨는데, 일찍 깨달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었는지요.

“2001년쯤 너무 요트를 타보고 싶은데 감히 구입은 못하니까. 처음 빌려서 타봤는데, 그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이 안될 만큼 행복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모험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후 항해술과 요트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뒤, 드디어 2010년 크로아티아에서 중고로 요트를 구매해 끌고 오며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늦게 깨달았다고 아쉽거나 후회가 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사람은 다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때가 요트를 할 때였던 것이죠. 2013년 10월에는 친구와 함께 태평양 횡단을 떠났는데, 태평양 항해를 하면서, 저의 목표이자 꿈이었던 논스톱 세계일주를 위해 무기항에 도전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태평양 횡단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죠. 당시 배와 자금 등 모든게 조건이 좋지는 않았는데 주위에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떠날때가 그렇게 된 것이죠. 2014년 10월19일 당진항을 출발해 다음해 5월16일 당진항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단독 무기항·무원조 세계일주에 성공한 것이며, 아시아에서는 6번째로 일본, 중국, 인도에 이어 우리나라가 4번째 국가가 됐습니다. 전세계로는 100명이 안된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감정은 영광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15년을 기다린 2014년 53세가 그 때였습니다. 순리대로 때가되면 하게 되더라고요. 늦게 시작을 했다고 아쉬운 것은 없습니다.”

 

-잘 나가는 프리랜서 PD에서 해양모험가로 떠나시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KBS ‘도전 지구탐험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후지TV ‘머나먼 여정’, NHK ‘지구로의 호기심’등을 만들었습니다. 요트 세계일주에 성공하면서는 MBC 다큐스페셜 ‘지구를 사랑한 남자’,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에 출연도 했습니다. 제20회 바다의 날 대통령 표창도 받고, 세계일주를 바탕으로 ‘인생은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그동안의 일들을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PD를 하면서 오래 준비를 했습니다. 프리랜서다보니 일이 없으면 바다에 나가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요트를 구입하고 태평양을 횡단하면서는 변화가 일어났고 해양모험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사실 무기항·무원조로 성공을 할 수 있을지 부담도 컸습니다.”

-모험을 한 항로와 에피소드 등이 궁금하고, 많이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적도를 지날때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기상의 변화가 심했기 때문인데요. 돌풍이 불때도 있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무풍이었습니다. 그 망망대해에 혼자 가만히만 있어야 했으니까요. 바람이 조금 불면 돗을 올렸다, 멈추면 또 내렸다를 반복하니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더라고요. 2014년 12월13일 무풍때 잔잔한 수면위로 돌고래떼가 점프를 하며 요트를 둘러싸더라고요. 처음 목격하는 장관이라, 촬영을 위해 셀카봉을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열심히 돌고래들과 장난을 치고 있는데, 상어가 나타난 것입니다. 배로 도망치는데 상어가 빨리 쫓아오더라고요. 몸집을 크게 보이기 위해 팔다리도 쫙 펴보이고 셀카봉으로 위협을 하면서 간신히 요트로 도망쳐 왔을때는 한동안 데크에 앉아 생환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밤하늘의 별들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환상적인 별밤이었습니다. 또 2015년 4월10일 오후 10시 바람이 멈춰 잠을 청하려하는데 경보음이 울리더라고요. 소형 선박으로 보이는 물체가 포착됐는데, 해적이더라고요. 얼른 육상지원팀에 전화해 상황을 알리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해적으로 인해 항해가 무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엔진에 시동을 걸어 무기항·무원조·무동력 세계일주 중 무동력 기록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극도의 긴장 속에 뜬눈으로 날을 지새고 처음 한 것은 라면을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프더라고요. 여러 일들이 벌어져서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남극해에서 유빙을 만났던 것도 큰 감동이었습니다.”

-모험을 하면서 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셨을텐데, 현재를 살고 있는 학생들이나 청년, 취업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남들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늘 힘듭니다. 경쟁률이 높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시선으로 본다면 경쟁을 안해도 되는 분야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조선시대때는 일본 해적의 습격 등이 잇따라,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때문에 지금까지도 바다라는 곳은 우리에게 생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바다에서 그 길을 찾았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까지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취업준비생들은 공무원이나 대기업만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교육 수준도 높기 때문에 3D업종이나 중소기업이라도 도전정신을 가지고 입사를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만의 노력과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직업의 종류는 늘어나고 있고 새로운 산업군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때문에 성장도 빠릅니다. 저도 세계일주 이후, 해양모험가로 사업을 시작했고 고용 창출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에는 교육부터, 물리학, 생물학, 해양생물, 수산업 등 무궁무진 합니다. 한쪽만 보는 것보다 시야를 넓히고 도전 정신만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대회 출전은 문화활동의 하나입니다. 저는 국민들이 바다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요트 체험과 강연 등을 실시해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있는데요.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들이 바다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과 우리나라가 해양문화 강대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또 신 대항의 시대라는 사업을 2016년부터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6년 12월15일부터 2017년9월1일까지 유럽 크로아티아부터 우리나라까지 34명을 요트로 함께 태워왔는데 8개월 반 걸렸습니다. 오는 동안 14개국 정도를 거치는데요. 새로운 경험때문인지 인기가 높아 사업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무기항·무원조 세계일주 완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2편과 극 영화 1편으로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한 편이 오는 11월 정도에 완성이 될 것인데, 개봉시기를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제대회에 출전해 대한민국이 해양문화가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위 기사는 중부일보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부일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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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