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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내가 살던 바로 그곳에서도..."

지난 1일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 예년보다 많은 7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1일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 예년보다 많은 700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윤설영 특파원

“일본 정부가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학살에 주체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을 인정할 것, 유족에게 사죄할 것과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를 실시할 것 그리고 자료의 영구적인 공개와 보존을 요구한다”
 
습도를 가득 머금은 열기가 늦더위를 실감케 했던 지난 1일. 도쿄 요코아미쵸(横網町) 공원에서 ‘간토(関東)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렸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국가책임을 묻는 모임(이하 ‘책임을 묻는 모임’)’을 대표해 가토리 아키코(62)씨가 추도사를 읽어내려 갔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모임'을 대표해 추도사를 읽은 가토리 아키코(62)씨. 윤설영 특파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국가의 책임을 묻는 모임'을 대표해 추도사를 읽은 가토리 아키코(62)씨. 윤설영 특파원

 
울타리 너머로는 우익단체에서 내건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자’, ‘조선인 수천명 학살은 날조’라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다행히 지난해처럼 고성능 스피커를 사용하는 등의 노골적인 방해행위는 없었다.
 
경찰은 우익단체의 집회장소로 이르는 길을 모두 차단했다. 지난해보다 배치인원도 크게 늘렸다. 가토리씨는 “작년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는 아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책임을 묻는 모임’은 2010년 9월 발족됐다. 각지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과 연구자들이 힘을 모아, 매년 정부에 질의서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일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1일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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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책임을 묻는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은 2007년 유럽에서의 경험이 계기가 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한 프랑스인으로부터 갑자기 “너 같은 중국인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다”며 폭언을 들었다. 당시엔 너무 놀라 그저 “나는 중국인이 아니다”라고만 반응했다. 
 
그는 "당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언사를 하지 말라'고 맞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중국인 한사람을 죽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자경단을 자처한 시민들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린 뒤 조선인을 학살했다. 조선인 시체를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칼을 쥐어준 뒤 “조선인이 아니라면 찔러봐라”고 요구했다. 
 
더미 속엔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도 있었다. “찌르지 못하면 조선인이니 죽이겠다”는 협박에 많은 사람들이 칼을 쥐었다. 이 이야기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기록으로 남아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 장소에서 약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익단체의 방해집회가 열렸다. 플래카드에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자", "수천명 조선인 학살은 날조다"라고 적혀있다. 윤설영 특파원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 장소에서 약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익단체의 방해집회가 열렸다. 플래카드에 "일본인의 명예를 지키자", "수천명 조선인 학살은 날조다"라고 적혀있다. 윤설영 특파원

 
가토리씨는 “당시에 살아남기 위해 시체 더미를 찌른 사람들과 내가 다르지 않더라. 내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가해자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1923년 세타가야(世田谷)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이름의 현장학습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다음날인 9월 2일 밤, 세타가야구 오오하시(大橋)라는 다리 앞에서 자경단에 의해 최소 1명이 죽고 3명이 부상당한 사건을 통해 ‘조선인 학살 사건’을 되짚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참석자들로부터 “도쿄 한복판,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일어났던 비극의 역사를 알게 됐다”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나 불과 2달여전 서일본지역 집중 호우 때도 유언비어가 돌았다. 가토리씨는 “‘조선인 학살 사건’은 95년전 일이지만 지금과도 연결돼있다. 약자에 대한 차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1일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1일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집회에서 한 참석자가 관련 자료를 보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화가이기도 한 가토리씨는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판화도 여럿 제작했다. 그는 불리한 역사를 지우려는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그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자학사관’이라고 비난하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하고 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게 존엄이고 지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간토대지진 발생일인 1일을 '방재의 날'로 정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훈련복을 입고 헬기를 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고이케 지사도 이날 인근 도쿄도위령협회 주최 대법회에 보낸 추도문에서 방재대책을 강조하는데 그쳤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1923년 9월 1일 도쿄, 가나가와 등 간토지방에서 규모 7.9의 대형 지진이 발생한 뒤 당시 군과 경찰 등에 의해 ‘조선인이 방화,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다. 약 6000명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학살 당했다고 알려졌다. 일본 내각부는 보고서를 통해 “간토대지진 사망ㆍ행방불명자 10만5천명 가운데 1%~수%가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략) 대상이 됐던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우익들이 반발하자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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