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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악인가] 반복을 구원하는 상상력

김호정 아트팀 기자

김호정 아트팀 기자

옛날부터 ‘노란 딱지’가 붙은 음반은 좀 달랐다. 스무살도 안 된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의 앳된 옆모습, 그 연주를 보고 있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유럽 사람답게 스웨터를 어깨에 두르고 있었다. 1982년 멘델스존·브루흐 협주곡 음반의 표지 사진이다. 피아노 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으로 통하던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쇼팽 연습곡(72년) 음반은 닳도록 들어도 신기했다. 놀라운 음반들은 한 켠에 노란 딱지를 달고 있었다.
 
네모나고 노란 로고로 상징되는 음반사가 도이치 그라모폰(DG)이다. 올해 120주년을 맞아 3일 서울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이 회사의 힘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서 왔다. 카라얀, 피셔 디스카우, 그 전에는 카루소, 크라이슬러, R.슈트라우스 등 음악계가 아니라 음악사(史)의 주요 인물이 DG와 작업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이 회사와 인터내셔널 계약을 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DG의 사장인 클레멘스 트라우트만에게 물었다.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데 기준이 있는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트라우트만은 즉시 “상상력”이라고 답했다. “악기를 다루는 기술이 물론 기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늘 연주되는 작품들에 새로운 생각을 추가해야 한다. 특히 모든 음악을 스마트폰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에는 상상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의 말에는 숨은 키워드가 있다. 반복이다. 클래식 음악은 무한히 되풀이하는 세계에 존재한다. 클래식의 초석을 놓은 바흐가 1685년생이니 길게 보면 300~400년 전에 만든 정해진 작품을 수십만, 수백만 명의 음악가가 연주한다. 모차르트·베토벤 시대까지만 해도 작곡가가 연주도 했지만 현대의 연주자들은 대부분 연주만 한다. 예술가로서 자유를 얻기도 전에 자칫하면 무한히 반복되는 굴레에 갇히는 운명이다. 반복만 해도 버거운데 기술의 발전은 복제라는 새로운 숙제까지 음악가들에게 얹었다.
 
DG 사장의 답변을 들으며 음악 하나가 떠올랐다. 괴짜 작곡가로 치면 제일 앞을 차지할 에릭 사티(1866~1925)는 ‘짜증(Vexations)’이라는 곡에서 짧은 악구를 840번 연주하라고 지시했다. 짜증 날 정도로 불합리한 반복을 마주한 연주자와 청중이 탈출한 방법도 오직 상상력뿐이다. 다 같이 날마다 반복하는 와중에 잘 상상하는 사람들이 발탁돼 새로운 위치에 선다. 또 인간의 상상력을 정확히 이해한 집단은 변화무쌍했던 한 세기 동안 일류로 버틸 수도 있다는 예를 DG가 보여주고 있다.
 
김호정 아트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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