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호 논설위원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에서 62년 만에 “못 살겠다”는 외침이 또다시 터져나왔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150여 개 소상공인 단체들이 “우리도 국민 취급해 달라”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이날 하루만큼은 빵집·미용실·PC방·편의점·음식점 문을 닫았다. 그 대신 빗속에서 “자영업자 생존권 위협하는 최저임금 즉각 철회하라”며 “못 살겠다, 최저임금!”이라고 절규했다.
얼마나 힘들면 이렇게 외쳤을까. 560만 소상공인 대부분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주로 배우자와 함께 일하거나 직원을 두더라도 고용원이 5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다. 경제 생태계의 최저층에 있는 사람들이란 얘기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래도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에는 버텼다. 하지만 내년에 10.9%를 또 올리기로 하자 분노가 폭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지만 이들은 그 대상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논의돼 온 ‘임금주도 성장’ 가설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선 ‘소득주도 성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선진국에선 자영업자 비중이 10%에 그치지만 한국에선 자영업자 비중이 25%에 달하는 점을 고려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올리니 임금근로자는 소득이 올라가지만 실직자·자영업자는 취업·영업에 타격을 입게 됐다. 형편 좋은 임금근로자는 덕을 보고 영세 자영업자는 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62년 전에는 선거운동 중 신익희 후보가 뇌일혈로 갑자기 죽는 바람에 자유당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이번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소득주도 성장 집행자들의 독선과 오만 때문에 최저임금 폭주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진보 정부가 보호해야 할 취약계층이 “못 살겠다”고 외치는 이 아이러니, 웃프지 않은가.
김동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