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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시를 배우지 않으면 왜 중국의 리더가 될 수 없나

한시와 중국 리더의 함수 관계
공자(孔子)가 아들 리(鯉)에게 말했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 무슨 ‘말’을 할 수 없다는 건가. 리더의 말이다. 시를 모르면 리더의 말을 갖출 수 없다는 뜻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바, 이를 위해선 시가 갖는 강력한 감성적 언어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역대 중국의 리더를 꿈꾸는 모든 이들은 시를 배우고 시를 짓는 일에 힘썼다. 중국 지도자의 생각을 읽으려면 한시(漢詩) 이해가 필수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밝은 해는 서산에 기울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간다. 천 리 끝까지 바라보고자/ 다시 한 층 더 오른다(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당나라 때 왕지환(王之渙)이 쓴 시 ‘관작루에 올라(登鸛雀樓)’다. 시인이 관작루를 찾은 건 당대 최고의 성세인 개원(開元) 시절 어느 저물녘. 강을 마주하고 달리는 중조산(中條山)에 해가 저물고, 하늘 끝에서 온 황하는 저녁 햇살을 가득 품에 안고 동쪽 바다를 향해 힘차게 흐른다.
 
그 장엄함에 흠뻑 취하다 보니 벌써 해가 저문다. 일행은 관작루를 내려갈 채비인데 시인은 한 층 더 오를 태세다. “여태껏 본 저 장관이면 충분하지 않나. 날도 저물었으니 지금 또 올라가도 무얼 볼 수 있겠나. 이제 그만 내려가세.” 하지만 시인은 고개를 젓는다. 해는 졌어도 동쪽에 달이 떠올라 달빛 천 리의 비경이, 별빛이 수놓은 넓은 관중(關中) 평야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앞 봉우리에 가려 다 저문 줄 알았던 석양이 아직 한 발이나 남아서 장엄한 일몰의 풍경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자신이 이룬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낯선 세계로 나가려는 진취적인 사람들에게 바쳐진 깃발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외교 행보에 나설 때 이 시를 즐겨 인용한다는 사실은 많은 걸 시사한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공자가 시 학습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래 중국의 리더를 꿈꾸는 모든 이들은 시 배우기에 힘썼다. 특히 배우고자 했던 시는 성당(盛唐) 시기에 지어진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이 담긴 시였다. 강력한 통치력에 입각한 정치적인 안정,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에 따른 경제적 풍요, 비단길을 통한 세계 문화의 융합 등 호조건에 힘입어 성당 시기의 시는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다. 후인들은 이를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성당 기상’으로 불렀다. 성당 기상은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시성(詩聖) 두보(杜甫)를 낳았다.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나라 노나라에 걸쳐 끝없이 푸르구나/ 조물주는 수려한 봉우리를 모아놓았고/ 산의 남북은 밝고 어두움이 다르도다/ 씻겨진 가슴엔 높은 구름이 일고/ 힘껏 바라보는 눈에는 새들이 들어온다/ 반드시 저 산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뭇 산들을 굽어보리라’.
 
두보가 젊은 시절 쓴 ‘태산을 바라보며(望嶽)’다. 태산의 광활함과 수려함을 찬미하면서 패기 넘치는 기상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마지막 두 구절 ‘반드시 산꼭대기에 올라 작은 산들을 굽어보겠다(會當凌絕頂 一覽眾山小)’는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오악독존(五嶽獨尊)의 태산처럼 세상에서 우뚝한 존재가 되기를 꿈꿨던 젊은이들을 이끈 또 하나의 깃발이었다.
 
한데 이 패기 넘치는 시가 깊은 좌절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독만권서(讀萬卷書)’의 공부를 끝낸 두보는 ‘행만리로(行萬里路)’의 여행길에 올라 5년 동안 명산대천을 두루 등림(登臨)해 호연한 기상을 가슴에 가득 안고 마침내 낙양에서 치러지는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귀향한다.
 
“붓만 대면 신들린 듯(下筆如有神)”하다며 자신감이 넘쳤으나 결과는 낙방. 큰 충격을 받고 다시 여행길에 나선 두보는 마침내 동악 태산에 올라 이 시를 지었다. 실패에 따른 열등감을 태산에 불어오는 바람으로 씻어버리고 결기 어린 눈빛으로 태산 정상을 향해 호기롭게 외친다. “언젠가 저 절정에 올라 작은 산봉우리들을 다 굽어보리라!” 결국 두보는 시의 왕국에서 시성이라는 지존의 존재가 됐다.
 
서예 박물관으로 불리는 태산의 많은 암벽엔 두보의 이 마지막 구절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어서, 지금도 태산을 오르는 많은 젊은이가 큰 소리로 읽고 외치고 있으니 1300년 전 젊은 두보의 음성이 아직도 태산 구석구석을 감돌아 메아리치고 있는 셈이다. 이 구절은 2003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면서 인용해 큰 주목을 받았다.
 
‘금잔의 청주는 만금이요/ 옥반의 진미는 만전이라/ 잔을 멈추고 젓가락을 던지고는/ 검을 빼어 들고 사방을 바라보나니/ 가슴이 막막하다/ 황하를 건너자 했더니/ 얼음이 강을 막고/ 태항산을 오르려 했더니/ 눈이 산에 가득하네/ 푸른 시내 낚시는 한가로운데/ 해 뜨는 곳으로 가는 배의 꿈이여!/ 인생길의 어려움이여, 어려움이여!/ 수많은 갈래길에서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큰바람이 물결을 깨치는 날이 반드시 오리니/ 구름 같은 돛을 곧장 펴고 드넓은 창해를 넘어가리라’.
 
인생길의 어려움을 적은 이백의 ‘행로난(行路難)’이다. 25세부터 시작된 이백의 구사(求仕)의 길은 지난하기 그지없어서 17년이 지난 42세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소득도 없는 상황이었다. 얼음이 얼어 건너지 못하는 황하, 눈이 쌓여 오르지 못하는 태항산은 좌절로 점철된 구사의 길을 비유한 것이다.
 
반계(磻溪)의 시냇가에서 10년 세월을 기다린 끝에 80세 나이에 주나라 성군 문왕에게 발탁돼 꿈을 이룬 강태공은 이백의 거창한 꿈과 어려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꿈과 현실, 희망과 절망, 신념과 포기 사이의 갈림길에서 헤매던 이백은 마음을 다잡고서 자신에게 거듭 좌절만 안겨준 세상을 향해 선포한다.
 
“큰바람이 물결을 깨치며 불어오는 날이 반드시 오리니, 구름같이 높은 돛을 곧장 걸고 망망한 바다를 건너가리라(長風破浪會有時 直挂雲帆濟滄海)”. 그동안의 실패의 경험도, 그동안의 좌절의 시간도 내 배의 돛의 크기를 키우는 재료가 될 것이니 아쉬워할 것 없다.
 
이백의 ‘행로난’ 마지막 구절은 거듭된 실패 속에서 좌절과 체념에 빠진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2006년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방미했을 때 유학 중인 중국 젊은이들을 바로 이 시구로 격려했다. 수천 년 세월을 품은 한시는 오늘의 중국에서도 여전히 리더의 말로 그 힘찬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성곤
서울대에서 두보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전의 영역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을 적극 진행 중이다. EBS 세계테마기행 ‘중국한시기행’에 출연해 유머를 곁들인 깊이 있는 해설로 호평을 받고 있다. 저서로 『리더의 옥편』 등이 있다. 

  
김성곤 한국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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