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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16)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가정폭력예방교육을 진행했다. 강의 시작 10분 전, 강사는 미리 와서 준비하고 있는데 정작 이 강의를 들을 학부모는 달랑 두 사람만 왔다.
 
이 강의를 의뢰한 선생님만 마음이 급해져 각 반 담임에게 전화를 돌리면서 왜 부모님이 안 오는지 채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사에게 미안한 마음에 “몇 번 가정통신문에 공지해 온다고 한 학부모가 50명이 넘었는데 왜 안 오시는 걸까…” 하며 아주 난감한 표정이었다. 끝내 학교에 모인 학부모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담당 선생님은 교사들을 불러 모았고, 교사들로 채워서 강의를 진행했다.
 
과도한 관심으로 아이들이 학습에 지치게 하는 것 또한 아동학대라 말하며 학생들이 힘들어했던 사례를 이야기 하자 학부모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우상조 기자

과도한 관심으로 아이들이 학습에 지치게 하는 것 또한 아동학대라 말하며 학생들이 힘들어했던 사례를 이야기 하자 학부모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우상조 기자

 
나는 학부모들께 “무관심도 문제지만 과도한 관심으로 아이들이 학습에 지치게 하는 것 또한 아동에 대한 학대입니다”라는 말을 하며 내가 만났던 학생들의 힘들어했던 사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의 말은 그곳의 학부모들께는 전혀 공감되지 않았고, 설득력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듣고 싶지 않은 불편함만 주는 강의였다.
 
그렇게 강의가 끝나갈 즈음, 그때야 학부모 한두 분씩이 강당에 더 들어왔고, 내 강의가 끝났을 때는 어느새 강당이 가득 찼다. 어찌 된 일일까? 강의 후 담당 선생님이 다음 강의에 대해 소개하는데, 유명 입시학원 선생님이 초등학교 부모를 대상으로 학습 전략과 관련한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이분들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성적을 받는 자녀로 키울 수 있는가였다.
 
몇 년 전 광고의 카피 중 이런 말이 있었다. ‘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하네’. 그 당시 나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고, 학부모는 자녀를 학생으로만 자라게 한다’고 나름 해석했다. ‘그래. 나는 학부모가 아닌 부모가 돼야지’라며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내 자녀가 학년이 높아지고, 집 앞 놀이터에 나갔을 때 놀 친구가 아무도 없어지자 나의 초조함은 조금씩 커져만 갔다.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지? 나중에 아이에게 원망을 듣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대한민국의 어떤 부모도 학부모와 부모 사이에서 편안하게 한쪽만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주변 친구들이 모두 보내는 학원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아주 쿨하게 ‘그래.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니 어떤 것이든 네가 원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라! 나는 네가 무엇을 하더라도 너를 지지해 줄게!’라고 말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어째서 많은 부모가 학부모의 역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일까?
 
서울 대치동 학원가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 경 학생들이 집으로 귀가하고 있다. 어째서 많은 부모가 학부모의 역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일까? [중앙포토]

서울 대치동 학원가 수업이 끝나는 밤 10시 경 학생들이 집으로 귀가하고 있다. 어째서 많은 부모가 학부모의 역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일까? [중앙포토]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은 서열화돼 있다. 그 안의 교육은 기·승·전이 ‘대학입시’다. 고등학교는 일반고, 자율형 사립고, 특목고 등으로 서열화됐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대입전략설명회에 중3 부모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모여 대입 전략에 대해 경청하는 모습을 보았다. 2022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에 따라 현재 중3인 학생들은 어떤 고등학교에 가느냐에 따라 명문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을 선점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서도 학생들이 느끼는 서열화는 확실하다. 등수에 따라 상위 몇 등까지는 도서관에서 자율학습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나머지 학생은 교실에서 공부해야 한다. 다음 시험에 방심해 성적이 떨어지면 도서관에서의 공부 자격은 박탈된다.
 
또 한 초등학교는 점수에 따라 급식 순서를 정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옆에 같이 공부하는 친구는 친구가 아닌 경쟁자다.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명확하다. ‘서○○, 그 밑으로 ○○, ○○…’. 입에 담고 싶지 않지만 이는 공공연한 단어가 돼버렸다.
 
한 커뮤니티에서 대학생 두 명의 글을 보았다. 
“저는 우리 학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안타깝지만 저는 다른 학생들처럼 우리 학교를 오고 싶어 온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에 남아 야간자습을 하는 것도 친구들과 엮인다며 학교 끝날 때 맞춰 엄마가 항상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집에 가자마자 다시 독서실로 가서 공부합니다. 엄마는 3년 동안 제 독서실 옆자리에 앉으셔서 새벽 2시까지 저와 함께 있으셨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제가 잠들면 아빠는 제 가방을 뒤져 내가 오늘 얼마나 공부했는지 확인하셨습니다. 저는 파놉티콘에 갇혀버린 죄수 같았습니다. 저는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엄마‧아빠가 원하는 것을 해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의 목소리는 이렇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열심히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어렵게 들어간 대학은 학문의 전당인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곳이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으니 등록금은 대출을 받아 냈고, 아르바이트해서 겨우 용돈을 마련했어요. 당연히 학점 관리는 소홀해지고 성적도 좋지 않았습니다. 아홉 가지 스펙이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학벌, 학점, 토익, 인턴,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 공모전 입상, 성형.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으니 내 미래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2019 수시 입시 전략설명회'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대입을 위해 수시 입시 전략 관련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2019 수시 입시 전략설명회'에서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대입을 위해 수시 입시 전략 관련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1]

 
한 친구의 부모님은 혼신의 노력을 해서 자녀를 최고의 대학이라 칭하는 곳에 입학시켰으나 자녀는 전혀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또 한 친구는 평범한 환경에서 대학에 와서 성실하게 살았다. 그러나 취업하기조차 힘든 이 사회에서 인권의 실현은 모두에게 먼 곳이 이야기로 들린다.
 
아주 평범한 내가 열심히 살았을 때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노력했을 때 노력이 정당하게 되돌아오는 사회, 명문대학이 아니어도 서류에서 제외당하지 않는 사회, 명문대가 아니어도 이력서를 낼 때 스스로가 위축되지 않는 사회…. 이런 세상이라면 아마 한국의 부모들은 학부모가 아닌 진짜 부모로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은 더 행복해질 것이다.
 
빈부 격차, 노동시장…. 지금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난제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내 일이 아니니 뒷짐 지고 있으면서 더 좋은 세상을 꿈꿀 수는 없다. 여러 문제를 풀어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지지하고, 연대할 때 이 사회의 공기는 조금씩 변할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난제의 해결점이 안 보일 때는 서로의 입장을 조금 내려놓고 ‘사람 존중’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본다면 의외로 합의점을 찾는 데 쉽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의 학교가 경쟁이 아닌 행복을 배우는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대한민국의 부모가 학부모가 아니고 기꺼이 부모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길 진정으로 바란다. 이것이 욕심이 아니길 빈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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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