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강수 논설위원
“이번 인사 발표를 보고 우리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헌법재판관 다양성의 기준이 ‘남녀노소’냐는 얘기를 나눴어요.”
이어진 배경 설명.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헌재 재판관으로 지명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 출신 이석태 변호사는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장을 지냈지만 전관 경력이 없다. 재판을 주재한 적이 없다. 나이가 65세라 재판관 임기 6년을 다 못 채우고 정년을 맞는다. 이은애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여성’ 몫이다. 만 49세의 김기영 부장판사는 그럼 젊은 판사 몫 아닌가. 사실 지방 법원 판사의 재판관 임명은 처음이다. 그가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멤버로, 대법원장의 복심이 아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지인은 “기존 헌재 구성이 ‘서오남(서울대 출신·50대·남성)’ 위주라서 답답함을 느껴왔던 터라 새 바람을 기대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헌법 재판 능력이나 법조계의 신망보다는 내 편, 여성, 소장판사 등 다양성이라는 외양을 더 중시한 것 같아 실망스럽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내부 문건 중에는 상고법원 도입의 걸림돌이라고 봤던 헌재 기능을 약화하려고 지금까지 법원장이나 고법 부장판사를 재판관에 추천했던 데서 급이 낮은 지법 부장판사를 추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내용도 있다”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건 내용이 이번에 현실화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헌재 내부 분위기가 이러니 사법부 ‘코드’ 인사를 걱정하는 외부의 목소리가 더 큰 것은 당연지사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809/03/3539463c-b44f-46e5-80db-968e95f4e024.jpg)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현실이 이렇다 보니 “민변 등 세 단체 인사로 대법원과 헌재가 대거 채워지고 있는 건 입법·사법·행정부의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우나 보수, 좌나 진보 어느 쪽으로든 사법 권력의 편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까지 나쁘다 할 순 없다. 나쁜 건 지나침이다. 걱정되는 건 현 정부의 사법 권력 교체에 주저흔(躊躇痕)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현 정부에선 대법관 5명, 헌재 재판관 4명이 새로 임명된다.
검찰의 인사·예산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A변호사의 기억이다. “김대중·김영삼·노무현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때도 검찰 인사에는 일종의 철칙이 있었다. 수사 능력도 중요하지만 지역 안배를 잘해야 한다. 지역 안배에 실패하면 잡소리가 많이 나고 후유증이 크다. 그래서 검찰국에서 준비하는 1안은 검사장급 인사건, 서울중앙지검 요직 인사건 1번 영남, 2번 호남, 3번 기타 지역 순으로 인사판에 말을 골고루 배정하는 거였다. 기타 지역에는 서울·경기·충청·강원 등이 들어간다.”
이 철칙에 금이 간 것은 박근혜 정부 때다. 우병우가 민정수석을 하면서 자신과의 친분관계가 인사 기준이 됐다. 현 정부는 더 파격적이었다. 검찰총장을 먼저 임명하고 검찰 인사를 실시하던 불문율을 깨고 한직을 떠돌았던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했다. 이후 우병우 라인을 제대로 솎아냈다.
행정학 교과서에는 ‘인사는 공정성이 생명’이라고 나온다. 인사 기준이 명확해야 승복한다는 의미다. 내 편이냐 네 편이냐가 최우선 기준이 되면 불만이 쌓인다. 줄서기가 횡행한다. 원래 우리법연구회는 노무현 정부 때 세력이 가장 컸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일부 소속 판사들의 튀는 판결과 정치적 발언 등으로 사실상 와해됐다. 그러다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법원 내 최대 세력으로 재부상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게 보복의 악순환이 돼서는 미래가 없다. 이전 정부 때 좌천됐던 인사들의 복권도 마찬가지다. 현대판 신데렐라 같은 얘기지만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핍박을 받지만 언젠가는 ‘쨍하고 해뜰날’ 맞을 또 다른 신데렐라가 자라고 있음을 안다면.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