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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 따지면 하수…고수는 2개 이상 조건 내놓고 밀당

기자
류재언 사진 류재언
[더,오래] 류재언의 실전협상스쿨(24)
'흥정'을 할 때 대개 가격이라는 한 가지 기준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한다. 그러나 가격이라는 한 가지 요인에만 초점을 맞춰 거래를 했을 경우, 필연적으로 한 쪽이 얻으면 다른 한 쪽은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사진 pixabay]

'흥정'을 할 때 대개 가격이라는 한 가지 기준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한다. 그러나 가격이라는 한 가지 요인에만 초점을 맞춰 거래를 했을 경우, 필연적으로 한 쪽이 얻으면 다른 한 쪽은 잃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한다. [사진 pixabay]

 
흔히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흥정을 한다’고 표현하지 ‘협상을 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흥정과 협상, 비슷한 듯 다른 두 개념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흥정’을 찾아보면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가격 등을 의논하는 것’이라고 정의돼 있다. 우리가 흥정할 때 대개 가격이라는 한 가지 기준을 놓고 밀고 당기기를 한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격이라는 한 가지 요인으로만 거래하면 필연적으로 한쪽이 얻으면 다른 한쪽은 잃을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귀결된다.
 
가격할인에 초점 맞춘 거래는 제로섬 게임
하지만 협상은 다르다. 적어도 둘 이상의 거래 조건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같은 유형의 거래를 하더라도 누구는 흥정 수준이고, 누구는 협상 수준이다.
 
첨단의료장비를 개발해 의료기관에 판매하는 기업의 세일즈 담당자 A에게 의료기관의 구매팀장 C가 할인을 요구한다.
 
C: 다른 기업 장비는 3억 원 후반대도 있던데, 4억3000만 원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네요. 이 가격으로는 결재받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3000만 원 정도 할인해 깔끔하게 4억 원으로 계약을 진행해주세요.
 
A: 회사 내부적으로 가격할인 정책이 있기 때문에 3000만 원까지는 힘들 것 같습니다. 1500만 원 정도 할인해드릴게요.
 
신입 세일즈 담당자 A는 가격 할인에 초점을 맞추어 흥정을 함으로써 상당한 할인을 해 주고도 양쪽 다 만족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되는 거래를 하고 말았다. [사진 pixabay]

신입 세일즈 담당자 A는 가격 할인에 초점을 맞추어 흥정을 함으로써 상당한 할인을 해 주고도 양쪽 다 만족할 수 없는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되는 거래를 하고 말았다. [사진 pixabay]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2500만 원을 할인해 4억500만 원에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생각보다 많이 할인해준 A나 생각보다 적게 할인을 받은 C, 양쪽 모두에게 썩 만족스럽지는 못한 거래였다. 상황을 바꾸어 이번에는 같은 기업의 노련한 세일즈 담당자 B에게 의료기관의 구매팀장 C가 할인을 요구한다.
 
C: 다른 기업 장비는 3억 원 후반대도 있던데 4억3000만 원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네요. 이 가격으로는 병원장님한테 결재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3000만 원 정도 할인해 깔끔하게 4억 원으로 계약 진행해주세요.
 
B: 기존에 다른 기업 장비도 사용해봤죠. 어땠나요. 만족스러웠나요.
 
C: 그럼요, 다른 장비도 사용해봤죠. 나쁘지는 않았어요. 다만 유지보수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더라고요. 매달 거의 500만 원 가까운 유지보수비용이 들어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최근 1년 동안은 사설 수리업체를 사용했었는데, 서비스가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B: 맞습니다. 많은 의료기관이 의료장비를 구입한 후 발생하는 유지보수비용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제가 장비 가격 할인 대신 유지보수서비스 부분에서 상당한 혜택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 저희 장비를 구매하면서 유지보수서비스 계약을 3년 이상 체결하면, 유지보수비용을 월 400만 원까지 조정해주고, 첫 3개월은 무료로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기존에 월 500만 원 정도를 부담했으니 첫 3개월 무료 혜택(1500만 원)에 3년간 매달 100만 원씩 비용절감 혜택(3600만 원)을 받으면, 약 5100만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A는 가격 할인에 초점을 맞춘 세일즈를 함으로써 제로섬 게임으로 귀결되는 거래를 하고 말았다. 이 경우 상당한 할인을 해주고도 거래를 통한 만족도는 양쪽 다 그다지 높지 못했다.
 
가격할인 대신 유지보수서비스 제공으로 윈윈 게임
반면 동일한 상황에서 노련한 세일즈 담당자인 B는 직접적인 가격 할인 대신 의료기관에서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유지보수서비스 비용을 일부 조정해주는 혜택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의료기관은 처음 요구한 3000만 원 할인보다 훨씬 더 큰 비용절감 효과(5100만 원 상당)를 누릴 수 있었다.
 
또한 B 입장에서는 최근 의료장비 유지보수서비스를 사설 업체로부터 받는 의료기관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3년간 유지보수서비스 계약을 확보함으로써 1억4400만 원의 추가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세일즈 담당자 A와 B의 거래 조건을 정리한 표. 흥정과 협상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제작 유솔]

세일즈 담당자 A와 B의 거래 조건을 정리한 표. 흥정과 협상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제작 유솔]

 
동일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흥정 수준의 거래를 하고, 또 누군가는 협상 수준의 거래를 한다. 흥정 수준의 제로섬 게임에서 벗어나 거래의 가치를 키워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거래로 이끄는 것, 이것이 바로 고수들의 협상 방식이다.
 
글로벌협상연구소장 류재언 변호사 yoolbonla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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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