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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마크] 이준석 "내가 대표 되면 다음날부터 당 지지율 쭉쭉 오른다"

 
“지지율요? 제가 당 대표가 되면 그 다음날부터 당장 오릅니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정동 TV조선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준석(33) 바른미래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웃으며 말했다. 바른미래당 당 대표 선거 토론회에 출연하기 위해 분장실에 앉은 그에게 바른미래당의 낮은 지지율에 대한 해법을 물어본 참이었다. 방송에 비친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 자신감이 넘쳤고 거침없었다. 대답을 마친 그는 옆에서 분장을 받는 정운천 의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장관님 보셨어요? 박주원 최고위원 기자회견요. (이 위원장)” “응. 무슨 생각이지? (정 의원)”
 
이날 오후 박주원 최고위원이 “‘안심(安心)’은 손학규 상임고문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30만 명 당원명부가 유출됐다는 걸 확인했다”고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토론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거냐’는 질문에 이 위원장은 “그것만 이야기해야죠. 확인되면 선거 부정인데…”라며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그는 토론회에서 손학규 상임고문에게 “손학규 캠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면 사퇴하겠나. 책임질 의지가 있나”라고 추궁했다.
바른미래당 이준석 전 노원병 지역위원장이 8월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2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이준석 전 노원병 지역위원장이 8월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2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시간 30분 남짓 진행된 토론회를 마친 뒤 “배가 고프다”는 그와 광화문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권 도전자 중 유일하게 ‘금배지’를 달아본 적 없는 정치 신인이지만 인지도만큼은 중진급이었다. 식당으로 이동하는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커피숍 테라스나 횡단보도에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거나 악수를 청했다. 커피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반응이 흔한 거냐’고 묻자 그는 “정치에 입문해 방송 출연한 지 7년이 되다 보니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다”며 “특히 중장년층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여기저기서 질문이 들어와 객실이 정치토론장으로 변해 곤란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식당은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화 주제의 특성상 그가 주변을 의식해 톤 조절을 하지 않을까 싶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는 당내 비판을 할 때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8월 28일 자신의 지역사무실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답하는 이준석 바른미래당 당 대표 후보

8월 28일 자신의 지역사무실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답하는 이준석 바른미래당 당 대표 후보

 
왜 전당대회에 나서게 됐는가?
새누리당에 있다가 바른정당으로 나온 건 새로운 보수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합당은 제 의견이 반영된 선택은 아니었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중도의 결합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노선과 가치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 전당대회를 통해 뚜렷한 지향점을 정립해보고 싶었다.
 
정치인 이준석의 강점은 뭔가.
인지도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도 일종의 경쟁력이다. 시사 프로그램에 나가면서 적어도 ‘할 말은 한다’ ‘제대로 된 논리로 이야기한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다만 ‘젊은 사람이 아는 척한다’, ‘싸가지 없다’는 오해도 있긴 하다. 모든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순 없지 않나. 한 단계씩 밟아나가는 중이다.
 
상대 후보들이 쟁쟁하다 보니 조직력에서 밀릴 것 같다.
조직? 기껏해야 ‘댓글 부대’ 정도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에 관심 있는 분 중 이준석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저에 대한 판단은 어느 정도 끝났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을 움직여 저를 미화한다고 먹히겠나, 음해한다고 통하겠나. 그 정도로 일반 대중과 당원이 비합리적이지 않다. 조직선거라는 건 정보의 유통경로가 차단된 2000년대 중반까지 통했다고 본다. 지금은 개개인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정보를 수용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한다. 
바른미래당의 차기 당대표를 뽑는 9·2 전당대회 본선 출마자들이 8월 14일 등촌동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첫 TV 토론회에서 선전을 다짐하며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환, 손학규, 권은희, 이준석, 하태경, 정운천 당대표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바른미래당의 차기 당대표를 뽑는 9·2 전당대회 본선 출마자들이 8월 14일 등촌동 SBS 스튜디오에서 열린 첫 TV 토론회에서 선전을 다짐하며 손을 잡고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환, 손학규, 권은희, 이준석, 하태경, 정운천 당대표 후보. [국회사진기자단]

 
당 지지율이 왜 한 자릿수에서 정체되어 있을까.
이 좋은 사람들이 모여 어젠다를 이상하게 잡았다. 미래지향적인 어젠다를 잡아야 했다. 합당한 뒤 ’동서화합‘을 제1 가치로 내세우는데 솔직히 짜증이 났다. 중요치 않은 게 아니라 그건 이미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등장했던 화두다. 젊은 층은 이제 영남이랑 호남이랑 갈등하는 게 아니라 경제적 계급 분화로, 남녀 간의 오해로 갈등한다. 갈등의 전선이 달라졌다. 그런데 관성에 젖어 30년째 같은 메뉴를 내놓는다. 안 팔리는 물건을 계속 내놓고 있는 꼴이다. 바른정당으로 뛰쳐나온 보수를 응원하는 건 20ㆍ30세대다. 냉전 보수보다 더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보다 나은 게 없는 ’동서화합‘으로 표를 달라고 하니 지지층이 바른정당때보다 더 엷어졌다. 패착이다.
 
8월 27일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토론회에서 질문지에 이준석 후보가 쓴 답안

8월 27일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당 대표 후보토론회에서 질문지에 이준석 후보가 쓴 답안

 

이튿날 오전 10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지역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다시 만났다. 사무실은 그가 유년시절부터 살아온 아파트 단지의 상가 건물에 있다. 외부 차량을 단속하는 차단기도 없고, 지하주차장도 없는 아파트였다. 하버드대 출신이라는 '고스펙'을 갖춘 그가 이 동네에선 선망의 대상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낮은 자세로 '포복'해야 하는 '노배지 지역위원장'으로 정치를 왜 하려는 건지 궁금해졌다. 
 
정치로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화려한 스펙에 하나를 더 얹고 싶은 건가.
학창시절 때만 해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공돌이였다. 그러다가 병역특례로 회사에 다니면서 교육 활동을 하던 중 내가 가진 영향력을 더 크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고, 그게 정치까지 이어지게 했다. 요즘 어린 시절에 다녔던 길을 걷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상계동 산자락에 태어나 살던 어린애가 학원도 없는 동네에서 공부해 과학고에 갔고, 국비 유학생으로 하버드대에 갔다. 그 후 봉사단체도 하고, 사업도 하고, 정치도 하고, 방송도 한다. 그런데 과연 내가 여기 살면서 자식을 낳아 키운다면 나와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확신이 없다. 그만큼 경제적 계급 분화가 극심해졌다. 다음 세대에게도 '공정 경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다.
 
공정 경쟁이 사라졌다는 것을 언제 체감하나.
상계동은 신분 욕구가 강한 동네였다. 이곳 주민들은 서울의 변두리인 여기에서 살았지만, 학구열만큼은 높았다. 그런데 요즘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과거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공부 잘하기보다 구김살 없이 크는 게 좋다'고 말한다. 신분 변동 가능성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대신 구김살 없이 컸으면 좋겠다는 게 뭐가 문제인가.
내가 박근혜 정부 때 가장 많이 싸운 게 교육정책이다. 황우여 당시 교육부총리는 아이들의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정책을 하겠다고 했다. 생각해보자. 요즘 중학생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데 정치가 나서서 연예인 만들어주는 게 교육 정책이냐. 정치인이 나약해졌다. 공정 경쟁이 무너져 신분 상승의 욕구가 무너지면 그것을 다시 살리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거기에 순응해서 ’구김살 없게‘ 키우는 것만 돕는다면 훗날 얼마나 재앙적 결과를 가져올지 정말 모르는 것인가.
 
정치권에서 30ㆍ40 정치인을 보기 어렵다.
젊은 층을 영입하는 체계가 실종됐다. 새누리당에서 경험한 바로는 청년위원회를 가보면, 마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자유당 청년조직이랑 다를 게 없다. 정책 입안은 거의 하지 않고 행사나 선거 때 인력 동원하는 수준이다. 머릿수 채워 ‘으쌰으쌰’ 응원부대에 불과하다. 돈 많은 건설사 회장 아들이 와서 술 사는 자리에 가는 게 고작 정치라면 너무 서글프지 않나. 
 
어떻게 해야 할까.
프랑스를 보자. 마크롱 대통령이 당선되고서 몇백명의 청년 국회의원을 만들었지 않나. 결국 좋은 리더들을 어떻게 발췌해서 연결하느냐가 관건이다. 머리가 좋거나 전문성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신념이 분명한 인물이 당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전당대회에는 이른바 ‘안심(安心)’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 후보는 ‘유심(劉心)’ 지원이 없었나?  
‘박근혜 키즈’로 유명해졌지만 2016년 총선 때도 홍보물을 비롯해 어디서든 박 전 대통령을 팔아본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와 정부기관에서 자리 제안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누군가에게 기댄다면 미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입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지만, 누가 김영삼과 노무현을 연결짓나. 1990년 3당 합당 때 용기 있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어려운 길을 걸었기에 정치인 ‘노무현’이 있었다. 유승민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제가 인간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지만, 정치적 노선이 좋아서 함께 하는 것이다. ‘유승민’을 팔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안철수 전 대표가 동네 주민이다. 최근 본 적은 있나.
안 전 대표가 국내에 머무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당대회 마치면 독일에 간다고 하는데 왜 시간을 끌까.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 패배 후 2주 만에 영국으로 갔다. 갈 마음이 있다면 진작 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지 않고 전당대회까지 기다린다는 건 다른 생각이 있다는 뜻 아닐까.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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