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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국 민요가 조선 소년을 울렸소

an die Musik: 본 윌리엄스의 ‘그린슬리브즈’  
얼마 전 타계한 영국 지휘자 네빌 마리너 경이 본 윌리엄스의 관현악곡들을 연주한 음반

얼마 전 타계한 영국 지휘자 네빌 마리너 경이 본 윌리엄스의 관현악곡들을 연주한 음반

1970년대, ‘테레비’ 있는 집 마당 멍석에 옹기종기 모여서 보던 ‘여로’ 이후 최고의 몰입도로 드라마를 보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이다. 영화 스크린처럼 가로로 긴 화면에 사전제작으로 완성도를 높인 장면들이 속도감 있게 흐른다. 유례없는 폭염 한복판에서 단풍 물든 가을과 얼어붙은 강을 보는 맛도 좋았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100년 전 언어다. 젊은 연인들의 대화가 이렇다. “강이 얼었소. 배는 탈 수가 없소.” “대신 나란히 걸을 수 있겠구려.”  
 
이렇다 보니 애청자들이 방송사 홈페이지에 남기는 소감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 “내 시청률 궁금해서 자다가 깼소. 동무들 즐수다하시구려.” “재회 장면 보고 쳐 울다가 잠깐 쉬는 중이오.”  
 
물론 옛날이라고 사람들의 언어가 모두 그리 고품격은 아니었겠지만, 점점 빠르고 가벼워지는 우리 시대의 말을 되돌아보게 한다. 조만간 친구들 만나면 ‘션샤인투’를 한번 구사해 보려고 한다. “동무들, 무더위에 어찌들 지내셨소?”  
 
남자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는 조선 노비의 자식이다. 아비는 멍석말이 매를 맞아 죽고 어미는 우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아홉 살 소년은 선교사를 만나 조선에서 가장 먼 곳, 미국으로 건너간다. 한 달 만에 태평양을 건넌 그는 오르골(뮤직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초이는 미국 해병대 장교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다.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 그런데 그의 손에 오르골이 들려있다. 음악은 여자주인공 고애신(김태리)과의 사연이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화면을 흐른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16세기 영국 민요 ‘그린슬리브즈’(Greensleeves), ‘푸른 옷소매’다.  
 
이 음악이 내 귀에도 익숙한 것은 영국 작곡가 본 윌리엄스 덕분이다. 그는 헝가리의 코다이처럼 민요의 수집과 연구에 열성적이었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 ‘사랑에 빠진 존(Sir John in Love)’을 만들면서 ‘푸른 옷소매’를 간주곡으로 삽입했고, 다시 독립곡 ‘푸른 옷소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지었다. 본 윌리엄스가 그토록 아끼고, 소년이 들으며 눈물을 흘린 것은 시린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릿한 선율 때문이다. 첫 소절만 들어도 가슴에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드라마를 보고 새삼스런 마음에 음반을 뒤져보니 영국 고음악 연구가 데이비드 먼로우가 리코더로 연주한 음반이 있다. 평소 잘 듣지 않던 음반이었는데 ‘푸른 옷소매’만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500년 전 민요라 작곡자는 미상이다. 그런데 16세기 영국 왕 헨리 8세가 지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헨리는 첫째 왕비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하자 왕비의 시녀 앤 볼린을 유혹한다. 그러나 앤은 대담하게도 왕비와 이혼하고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는 잠자리에 들 수 없다고 버틴다. 몸이 단 왕은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과 결혼하려고 한다. 그러나 교황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왕은 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교황은 왕을 파문에 처하고, 사건은 영국 교회가 로마가톨릭으로부터 독립하는 대변혁으로 치닫는다. 이 헨리8세가 앤을 위해 지은 음악이 ‘푸른 옷소매’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의 결혼은 비극으로 끝난다. 앤은 딸 하나를 낳고 세 번의 유산을 거듭한 끝에 헨리로부터 버림받는다. 결국 감옥에 갇혀 도끼에 목이 잘려 죽는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미국 해병대 장교가 말한다. “조선의 여인들은 꽃으로 살아가던데.” 조선 여인의 대답은 서늘하다. “나도 그렇소. 다만 나는 불꽃으로 살아가려 하오. 조선을 구하는 의병(義兵)으로.” 생각해 보니, ‘미스터 션샤인’도 일본과의 싸움이다. ‘여로’처럼.  
 
글 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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