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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은 단절보다 승계 … 독일 ‘이어가기·쌓아가기’ 배워야

노무현정부 부총리 안병영 교수의 쓴소리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 설악산이 보이는 강원도 고성에 터를 잡고 10여 년 간 주경야독하는 안병영 명예교수. 그는 ’복지정책을 좌우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닌, 우리사회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의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 설악산이 보이는 강원도 고성에 터를 잡고 10여 년 간 주경야독하는 안병영 명예교수. 그는 ’복지정책을 좌우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닌, 우리사회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의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신규 취업자수가 5000명까지 떨어진 고용 쇼크와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2060년에서 3년 빨라질 것이라는 재정추계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청년층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취업이 어려운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현 기성세대의 노후보장까지 책임져야 하는 미래를 암울하게 본다. 차라리 국민연금을 폐지하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까지 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민연금은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이기 때문에 국민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의 연금 지급 보장을 법에 명문화할 방침임을 밝혔다. 그렇다면 청년층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최근 복지행정 분야 중진 학자 3명과 저서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다산출판사)를 낸 안병영(77)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나 연금개혁을 둘러싼 세대간 갈등 해법을 들었다. 그는 보수 색깔의 YS정부에서 교육부장관(1995~1997년)과 진보 성향의 노무현정부에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2003~2005년)을 각각 역임했다.
 
 
독 슈뢰더, 반대 무릅쓰고 연금 개혁
 
국민연금개혁을 지켜보는 청년층의 불안과 걱정은 근거 없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된 이후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하면 된다지만, 이는 후세대 정부의 재정부담이 급격히 가중된다는 것을 뜻한다. 비관적 시나리오에 의하면 후세대는 소득의 30% 가량을 보험료로 지급해야 한다는 추계도 나와있지 않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지더라도 지금부터 서서히 보험료율을 현실화하는 등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본다. 후세대가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다함께 미리 나누자는 것이다.”
 
보험료 올리자는 건 그야말로 인기 없는 정책인데.
“고뇌에 찬 결단일 수밖에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소속당인 사민당(SPD)과 지지층인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등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였는데 이러다 2005년 총선에서 진다는 걸 알고도 하지 않았나. ‘나라가 당이나 정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연금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은 대중적 저항을 야기했고 사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노동자계급의 광범한 이탈과 사민당내 좌파의 분당을 초래했으며 결국 총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그를 승계한 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대연정 시대에 만개해 독일은 이후 자타가 공인하는 유럽의 종주국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슈뢰더 전 총리처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까지 취해온 정책 방향에 대해 자문자답을 해야 한다. 스스로 항상 옳다는 확신에서 벗어나 성찰적 자세로 스스로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념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정책분석과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입각해 해답을 구함)에 힘을 실어달라는 이야기다.”
 
유럽의 ‘사회투자국가’ 선순환 모델
 
다층소득보장체계

다층소득보장체계

보수 적폐와도 타협하라는 얘기인가.
“보수정권의 적폐는 단절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보수정권에서 계승해야 할 부분도 찾아서 인정하고 승계해야 한다.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생산적인 국정운영은 단절보다 승계와 축적 아닌가. ‘이어가기’ ‘쌓아가기’ 고수인 독일의 국정운영 방식이 좋은 본보기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단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
“이념적 대결 양상이 전개되면 서로가 교조주의의 수렁에 빠져 ‘흑백논리’와 ‘진리독점’을 주장하며, 적과 동지로 편을 나눈다. 이렇게 되면 전문적이고 합리적 토론이나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사회정책분야야말로 이념적 대결의 장에서 벗어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실사구시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영역이다.”
 
실사구시적 접근은 어떤 건가.
“스웨덴 사례를 들고 싶다. 2014년에 집권한 사회민주당 정부는 선거과정에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내세웠으나, 집권후 야당과 합의하여 정책을 수정, 10개의 원전은 상시 가동하기로 하고, 이 10개의 범위 안에서 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신규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와 전력의 안정적 공급 양자를 함께 고려한 결정이었다. 대안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탈원전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쉽지 않은 결정일 거 같다.
“보수와 진보가 윈윈하는 상생(相生)의 정치로 가려면 스스로 관념의 웅덩이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며, 중간지대로 다가서야 한다. 중원에서 길을 찾아 용기 있게 바른 방향을 향해 돌파하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 같은 비인기 정책도 타협이 가능할까.
“비인기 정책일수록 의회정치를 통합 합의와 사회적 합의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웨덴 국가조사위원회(SOU)는 여야 정파를 초월한 전문가위원회인데 여기서 증세처럼 국민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논의하고 방안을 만들어 국민에게 알리고 설득한다. 비인기정책은 여야가 함께 책임을 나누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퇴직연금을 종합해 노후소득을 강화하는 다층적 소득보장이란 목표를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노후소득보장제도는 외견상 다층구조를 이루고 있긴 하다. 1층엔 조세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을 둬 기초보장 기능을 담당하게 하고 있고, 2층엔 국민연금을 둬 저축과 보험기능을 맡기고 있다. 3층엔 임의적용 방식의 사적 연금이 있어 중상층 이상 노후소득을 보장케 한다. 앞으로의 개혁방향은 국민연금이 다층구조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게 하면서 층별 연금제도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기획재정부·복지부·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가 참여해 논의해야 한다.”
 
사회복지정책 담당 부서만의 일로 보기 어려운 거 같다.
“그렇다. 경제부처는 대체적으로 사회부처에 대해 경제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인적자원정책을 담당하는 부총리로서 9개 부처를 조율하는데 쉽지 않았다. 인적자원정책회의가 열려도 장관은 오지 않고 차관을 대신 보내는 일도 잦았다. 부총리가 힘을 가지고 정책 조율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스웨덴인가.
“한국과는 여건이 다르고, 복지국가의 성숙도가 다르기 때문에 스웨덴과 같은 제도를 그대로 이식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스웨덴도 시대변화에 따라 적응하고 있다. 다만 1990년대부터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지향하고 있는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로 방향을 잡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사회투자국가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결속이나 형평성을 동시에 아우르며 조화를 추구하는 정책노선이다. 경제발전정책과 사회정책의 선순환을 바탕으로 한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어긋나서는 둘 다 망한다.”
 
『복지국가와 …』 펴내 40년 만에 ‘글빚’ 갚아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강희일(73) 다산출판사 사장에게 진 글빚을 40년 만에 갚았다. 최근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사진)이란 저서를 내면서 출간하겠다는 약속을 이번에 지킨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 사장은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대학교재 등을 출판하는 법문사에 입사해 저자를 발굴하는 기획영업과장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은 복지분야의 전문 서적을 내기로 구두 계약을 했다.
 
그런데 이후 책을 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안 명예교수는 “책을 쓰다가 한고비 넘겼다 싶으면 대학교에서 교무처장 등 보직을 맡게 되거나 정부에 두 차례 장관으로 들어가면서 책에서 손을 놓게 됐다. 그러다보니 미리 썼던 내용이 학문적 추세에 비춰볼 때 이미 낡은 것이 돼 있어 새로 써야 했다”고 털어놨다. “커다란 바위를 산 꼭대기로 밀어 올려 정상 근처에 이르면 그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 올린 적도 있다. 그래도 좋은 책을 쓰겠다는 글빚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책 제목도 『복지행정』에서 『사회복지정책』으로 바뀌었다가 마침내 ‘복지국가’가 앞에 들어가게 됐다. 책의 분량도 당초 계획보다 두배 이상 불어났고, 저자도 네 명으로 늘었다. 연세대 교수 시절 책 출간 약속 때문에 고심하던 걸 지켜봤던 그의 제자들이 집필에 참여한 것이다. 정무권(연세대)·신동면(경희대)·양재진(연세대) 교수가 공동저자다. 안 명예교수는 연세대에서 정년 퇴직한 뒤에도 이들과 연구모임인 사회정책연구회에서 만나 학문적으로 교류해왔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도 네 명의 저자는 각각의 세부전공에 맞게 절을 나눠 집필한 뒤 각자가 쓴 원고를 함께 읽고 토론해 첨삭하는 작업을 거쳤다.
 
안 명예교수는 “강사장이 지난 40년간 한 번도 책을 내라는 재촉을 하지 않았다. 줄곧 내가 언젠가 책을 끝낼 것을 믿었다”고 했다. 강 사장도 “언젠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기다렸다. 이렇게 책이 빛을 보게 돼 저자들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
 
강홍준 기자 kang.hongjun@joongang.co.kr
안병영 명예교수 교육부 수장을 두 번 역임했다. 이 자리를 두 번 맡은 장관은 그와 박정희 정부 시절 권오병 전 장관 뿐이다. 2004년 부총리 재직 땐 문재인 대통령(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총리),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조율해 수능등급제 같은 대입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경쟁과 형평을 동시에 강조하는 중도개혁적 성향을 보였다. 2006년 연세대에서 정년 퇴임한 후 10년 이상 강원도 고성에서 농사를 짓고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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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