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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린 시간은 …

책 속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해럴드 슈와이저 지음
정혜성 옮김, 돌베개
 
현대인에게 익숙한 시간은 과학의 시간, 자본의 시간 그리고 일상의 시간이다. 이 셋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근대의 과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계측되는 절대적인 시간을 소개했다. 이렇게 표준화된 시간은 자본의 시간이 된다. 하나의 단위로 계산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화폐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격언은 이제는 진부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당연해서 자주 언급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시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생활계획표에 따라 산다.
 
이런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기다림이란 ‘잘못된 시간’이다. 그것은 착오, 오류, 낭비, 일탈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기다림’의 시간은 그런 시간이 아니다. 기다림이 선사하는 특별함을 위해서는 다른 시간을 체험해야 한다. 그 시간은 이를테면 음악을 듣는 시간과도 같다. 음악에 빠져 있을 때, 시간은 시곗바늘의 이동 거리로 경험되지 않는다. 그 시간은 다른 시간과 구별되는, 전체가 한 덩어리인 통짜의 시간이다. 베르그송은 이런 시간을 ‘지속’이라고 불렀다. 설탕 한 조각이 물에 녹을 때,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은 우리의 조바심과는 상관없이 물질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관념적인 시간이 아니라 경험되는 시간인데, 기다림은 이 특별한 경험에 기초해 있다.
 
스위스 화가 페르디낭 호들러(1853~1918)가 그린 발렌틴 고데-다렐 초상화 연작 중 한 작품. 호들러의 연인이었던 고데 다렐은 난소암으로 죽었다. 호들러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야말로 연인의 죽음을 유예할 수 있다는 듯 연인이 죽기 직전 다급하게 많은 작품을 그렸다. [사진 돌베개]

스위스 화가 페르디낭 호들러(1853~1918)가 그린 발렌틴 고데-다렐 초상화 연작 중 한 작품. 호들러의 연인이었던 고데 다렐은 난소암으로 죽었다. 호들러는 그림 그리는 시간이야말로 연인의 죽음을 유예할 수 있다는 듯 연인이 죽기 직전 다급하게 많은 작품을 그렸다. [사진 돌베개]

‘기다린다’는 본래 타동사다. 기다리는 대상이 도착하면 기다림은 끝난다. 대상이 기다림의 목적이 되면 기다림은 카운트다운이 된다. 전역 일을 기다리는 병장의 시간이 이럴 것이다. 이런 기다림은 대상이 도래함과 더불어 부정, 취소, 삭제되어 버린다. 기다림에서 목적어를 지워보자. 예컨대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이 기다리는 것은 ‘고도’가 아니다. 그들은 기다림을 ‘통과’하는 게 아니라 기다림 안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기다리다’는 타동사가 아니라 재귀동사인 셈이다. 기다림이 기다리는 것은 ‘부재’이며(둘은 고도를 기다리는 그 형식 속에서 실제로는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다), 따라서 ‘기다림’ 그 자체다.
 
기다림에는 여러 이점이 있다. 기다리는 이는 그 초조한 심정 속에서 무의미한 눈길을 사방에 던지는데, 이 눈길 덕분에 일상적인 시선으로는 결코 볼 수 없었을 수많은 사물들을 발견한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눈을 피해 낮에 짰던 옷감을 밤에 풀어버리는데, 이 밤의 시간이야말로 기다림을 무한히 연장하는 시간, 분별하지 않고 분간하지 않고 시비하지 않는 무의식의 시간이다.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시간도 기다리는 시간이다. 작품에 머물러 삶 그 자체를 음미하는 이 시간은 기능적이고 일상적인 시간, 자본에 통합된 시간이 결코 허용하지 않았을 시간이기도 하다. 죽어가는 연인의 순간순간을 그린 한 화가의 그림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시간도 기다림의 시간이다. 그녀는 죽음을 비켜 갈 수도 유예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화가는 죽음을 기다린 것이 아니다. 화가가 강박적인 손길로 그려낸 그 시시각각의 모습은 죽음 앞에서 영원히 유예된 기다림 그 자체의 순간이다. 화가가 그녀를 화폭에 담는 그동안에는 죽음이 그녀를 접수할 수 없을 테니까.
 
철학자 데리다는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를 말한 적이 있다. 메시아가 오지 않으면 세상에 구원이 임하지 않으나 메시아가 도래하면 종말이 같이 온다. 도래하지 않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 이것은 종말 없는 구원의 역사다. 우리도 기다려보자. 기다림의 대상이 없는 바로 그 기다림을.
 
권혁웅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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