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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나를 키웠다 … 로봇도 사람도 넘어질 때 배운다

[박신홍의 人사이드]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
데니스 홍 교수의 포즈는 현란했다. 얼굴 표정에도 흥과 열정이 가득했다. 그런 그도 시련 앞에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초심을 잃고 있더라고요. 실패 덕분에 성숙해진 거죠.“ [김경빈 기자]

데니스 홍 교수의 포즈는 현란했다. 얼굴 표정에도 흥과 열정이 가득했다. 그런 그도 시련 앞에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초심을 잃고 있더라고요. 실패 덕분에 성숙해진 거죠.“ [김경빈 기자]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만들고, 미국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이고, 워싱턴포스트 1면에서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 ‘로봇계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찬사를 받고, 세계 10대 젊은 천재 과학자로 뽑히고, 로봇 월드컵에서 5년 연속 우승하고, 애써 개발한 로봇 소스를 무료로 공개해 “떼돈 벌 기회를 제 발로 찼다”며 탄식의 대상이 되고. 그를 수식하는 표현은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부족할 정도다. 한국에서도 강연마다 인산인해를 이루며 ‘젊은이들의 롤모델’ 0순위로 떠오른 데니스 홍(47) UCLA 기계항공공학과 교수 얘기다.
 
세계가 주목하고 인정하는 로봇공학자라는 타이틀과 달리 그의 페이스북엔 늘 괴짜 포즈의 사진이 넘쳐난다. 장난기와 흥겨움 넘치는 포스팅으로 “이름을 데니스 흥(興)으로 바꾸라”는 얘기까지 듣곤 한다. 하지만 그의 성공과 화려함 이면엔 숱한 좌절과 시련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발산하는 흥은 수많은 실패에도 꿈을 잃지 않고 긍정의 힘을 믿으며 끊임없이 한발 한발 나아간 결과물임을 그는 고백하고 있다. 일주일간의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한국에 온 그와 2시간 동안 마주 앉았다.
 
 
디즈니가 미키 마우스를 그린 까닭
 
성격이 원래 쾌활한가. 돌아서면 다른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장난꾸러기였단다. 그래서 이름도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에서 따셨대고. 항상 즐거운 모습이 가식 아니냐는 말도 들었지만 이게 내 본모습이다. 사람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감출 수 없지 않나. 진짜가 아닌 가짜 모습을 보여줄 때 사람은 더 실수하기 마련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의는 지키지만 남의 눈은 의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늘 자유롭다.”
 
페이스북을 많이 하는 이유는 뭔가.
“한국의 젊은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한국에서 강연도 하고 TV도 출연하지만 모두 일방향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쌍방향 소통을 원하더라. 그래서 페친들이 댓글을 달면 꼭 좋아요를 누르고 내 생각을 덧붙여 올린다. ‘아, 나와 대화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도록 말이다.”
 
성공가도만 걸었을 듯한 이미지인데.
“전혀. 위인전을 보면 한결같이 성공한 얘기만 쓰여 있지 않나. 사람들도 그런 모습만 보고 싶어한다. 한국 학생들을 만나 보니 나 또한 성공·천재·미래과학 등의 이미지로 비치고 있더라. 하지만 나는 천재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처럼 실패도 수없이 했다. 교수 면접도 숱하게 떨어졌고 교수가 된 뒤엔 연구비 제안서를 매번 퇴짜 맞아 2년간 빈털터리로 지내기도 했다. 새벽에 혼자 연구소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우리 로멜라(RoMeLa) 로봇연구소에서 새로운 걸 시도하면 미친 짓하지 말라며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적잖았다.”
 
가장 힘들었을 때는.
“2014년 버지니아공대에서 UCLA로 옮길 때였다. 굳게 믿었던 멘토 교수에게 배신을 당해 나의 분신 같은 로봇들을 모두 뺏겼다. 내 최고의 걸작품이었던 휴머노이드 로봇을 강탈당한 거다. 나는 여기서 끝나는가 보다, 이제 더 이상 길이 없나 보다 싶었다. 로봇이 없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하지만 로봇도, 사람도 넘어져야 배운다는 말이 맞았다. 이렇게 된 거 아예 새롭게 가자 싶었다. 마침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 다녀온 뒤 사람처럼 걷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한계를 절감하던 터였다. 너무 느리고 비싸고 잘 넘어졌다. 발상을 전환했다.”
 
다리를 앞뒤로 배치한 로봇 ‘나비’. [사진 데니스 홍]

다리를 앞뒤로 배치한 로봇 ‘나비’. [사진 데니스 홍]

이후 그는 로봇의 몸통을 직육면체로 과감히 바꾼 뒤 발레리나와 펜싱 선수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두 다리를 좌우가 아닌 앞뒤로 배치했다. 그러자 수많은 미제들이 순식간에 해결됐다. 그의 명성은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는 월트 디즈니의 사례를 떠올렸다. “디즈니도 오스왈드라는 토끼 캐릭터를 만들고 꿈에 부풀어 있을 때 믿었던 프로듀서에게 어이없이 뺏기며 모든 걸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좌절 대신 메모지와 펜을 꺼내 새로운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미키 마우스였다. 내가 만든 로봇들을 뺏기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을 거다.”
 
그의 실패론은 계속됐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혁신은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걸을 때 나오는 법이다. 떨어질까 무서워 안전한 곳으로만 가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연구소에서도 학생들에게 로봇을 일부러 고장 내게 한다. 고장이 나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행복한 거고 실패하면 배운 거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뽑아내는 것. ‘긍정은 언제나 길을 찾는다(Optimism always finds a way)’가 내 신조인 이유다. 실패에서 배우면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호기심이 없으면 상상력도 없다
 
데니스 홍 교수가 인터뷰 도중 아들과 함께 쓸 동화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데니스 홍 교수가 인터뷰 도중 아들과 함께 쓸 동화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로멜라는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로봇연구소다. 연구원도 학부와 대학원생을 합해 40명이 넘는다. 미국 대학 내 최대 규모다. 연구소장인 데니스 홍은 늘 청바지에 반팔티 차림이다. 함께 비디오게임을 하고 있으면 누가 소장이고 연구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란다. 로멜라의 성공 요인이 궁금했다.
 
“주변에서 수평적 리더십 얘길 많이 하더라. 실제로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또한 밤에도 찾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곳으로 꾸몄다. 옆에 있는 디즈니랜드보다 더 즐겁다고들 한다(웃음). 한쪽 벽엔 상패를 가득 채워 놓았다. 그러곤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빈 액자를 걸어놨다. 바로 당신이 주인공이라며. 동기 부여 차원이었는데 효과가 컸다. 무엇보다 리더는 치어리더가 돼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내가 치어리더가 되면 연구소가 창의적인 에너지로 마구 흔들리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권위가 없으면 영이 안 선다? 결과가 증명하지 않나. 우리 연구소의 가장 큰 결과물은 로봇도, 기술도, 특허도 아니라 바로 졸업생들이다.”
 
그 많은 상상력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머리가 아닌 가슴? 바퀴를 다시 발명하는 것이란 말이 있다. 쓸데없는 일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란 뜻이다. 끊임없이 다르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연구원들에게도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는 일절 내지 않는다. 어린이의 눈이 반짝거리는 건 호기심 때문이다. 보이는 게 다 신기한 거다. 나이가 들면서 반짝임이 사라지는 건 설레임을 잃어서다. 호기심이 없으면 상상력도 없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던데.
“네 가지 꿈이 있었는데 요리사, 마술사, 놀이동산 디자이너, 그리고 로봇공학자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두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였다. 천성이 그런가 보다 싶었다(웃음). 무엇보다 시각장애인이 내가 만든 차를 직접 운전하고(자율 운행 시스템이 아닌!) 무사히 내렸을 때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아,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이들을 이렇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이걸 인생의 목표로 삼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재난 구조나 약자들을 위한 로봇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로봇이 사람을 지배할 때가 오진 않을까.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조만간 사람처럼 생각하고 감정도 풍부한 로봇이 나올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던데, 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AI 전문가인 앤드루 응 교수도 ‘AI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할 거란 걱정은 아직 발도 붙이지 못한 화성의 인구 과잉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나. AI는 매우 유용한 도구다. 도구를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말 타던 시대에 갑자기 자동차가 말보다 빨리 달린다고 무서워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떻게 잘 이용할지만 생각하면 된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인데.
“이 질문 숱하게 받았는데, 사실 4차 산업혁명이 뭔지 잘 모른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안 쓰는 말인데 오히려 최근 한국에서 워낙 많이 쓰니까 뭐가 있는 건가 하고 관심을 갖는 정도다. 4차 산업혁명은 하나의 키워드이자 프레임 성격이 짙은 반면 외국에선 AI처럼 구체적인 게 화두다.”
 
 
아들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
 
데니스 홍. [김경빈 기자]

데니스 홍. [김경빈 기자]

데니스 홍에게 아빠란. 아들이란.
“아홉 살 된 아들 이산은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자는 시간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려고 늘 노력한다. 아들과 노는 게 제일 재밌다.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논다(웃음). 아빠는…. 누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건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아는 사람으로 키우는 거다. 그러면 그 자녀가 커서 세상을 바꾸게 될 거다.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
 
이산이 네 살 때 아빠에게 물었다. “냉장고 문을 닫으면 안의 불이 꺼지나요.” “밖은 왜 매일 어두워져요.” 아빠는 스마트폰을 냉장고 안에 넣고 문을 닫은 뒤의 모습을 촬영했다. 또 지구본에 스마트폰을 테이프로 붙인 뒤 빙글빙글 돌리며 동영상을 찍어 아들에게 보여줬다. 아들이 말했다. “아하, 그렇군요.” 이 동영상은 당시 한국의 초등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는 “그게 우리 부자에겐 놀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밤에 이산이랑 침대에 누워 즉석에서 동화를 짓곤 하는데 그중 하나를 조만간 동화책으로 낼 예정”이라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다른 전문가들과 달리 나는 그동안 온갖 로봇을 다 만들었다. 일반인들이 보면 같은 로봇이겠지만 전문가들은 한 우물만 파도 힘든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대부분 대박이 나서 큰 비난은 면했지만(웃음). 그래서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으면 나도 몰라요가 답이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게 지금 세상에 필요한 거다 싶으면 거기에 올인하고 있을 거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조화시키는 게 중요하다 싶다. 그래야 열정과 결과가 함께할 수 있다. 아니다 싶으면 현명하게 포기한 뒤 다른 길을 찾고. 나도 매일 수많은 걸 포기하며 산다. 그게 가치 있는 일이면 더욱 좋다. 또 하나. 비록 미래가 불안해도 꿈을 놓지 말기 바란다. 꿈의 가장 큰 적은 실패와 좌절이 아니라 포기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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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