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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북한에 공식적 시장 436개 있다는 것의 의미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속 빅터 차와 리사 콜린스 연구원은 CSIS 산하 한반도 전문 포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에 주목할 만한 보고서를 실었다. 인공위성 사진 추적과 탈북자,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북한 전역에 당국의 인가를 받은 공식적인 시장만 436개가 있고 이들이 내는 세금과 임대 비용이 5680만 달러(한화 약 633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북한 주민 상당수가 당국의 공식 시장이나 암시장을 통해 식량과 생필품을 구하는 거로 관측된다. 북한에는 도별로 평균 50여 개의 공식적인 시장이 분포해 있다. 보고서는 이들이 북한 사회에서 완전히 제도화된 모양새를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보고서를 작성한 CSIS 동료들은 이것이 북한의 미래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섣불리 예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제 3자 입장에서 자유롭게 여러 가능성을 점쳐보려 한다. 북한에서 시장의 힘이 갖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가장 긍정적인 해석은 시장의 힘을 북한에 개혁·개방을 가져올 씨앗으로 보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도 덩샤오핑의 시장경제 도입과 제한적인 사유재산권 인정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씨앗이 싹을 틔워 중국은 대외무역과 투자를 개방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다. 북한 역시 2002년에 자체적으로 개혁을 도입하면서 시장을 허용했다. 당시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외부 지원이 끊기고 내부적으로는 1990년대 대규모 기아 사태로 국가 배급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개혁이 이뤄진 측면이 있으나 중국도 공산당의 대약진운동(마오쩌둥의 경제공업화정책)과 문화대혁명 실패가 개혁의 주된 원인이었다. 2009년 북한은 화폐개혁과 강력한 시장 단속으로 시장의 힘과 사회 분열을 차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CSIS의 탈북자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북한 주민의 불만만 키웠을 뿐 시장의 성장을 막지 못했다. 현재 김정은 정권은 사회적 기능과 주민 생존을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처럼 북한도 시장 개방을 피할 수 없다면 국제사회가 먼저 경제적 포용을 진행함으로써 개방 속도를 가속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포커스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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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보다 비관적인 해석은 시장의 제도화가 북한 체제의 내부 단속과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에 의존한 식량 배급은 사회주의와 주체사상에 따른 집단주의가 실패한 것이지 독재정권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독일 히틀러도, 이라크 사담 후세인도 시장을 활성화한 바 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오늘날 북한의 뒤를 잇는 독재 국가로 지목한 수단과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다. 독재 국가는 시장이 정치적 통제력을 약화하지 못하게 비밀경찰과 같은 강제 수단을 동원해 사전 차단한다. 특히 북한은 헌법에 핵무기 보유국임을 명시한 시기에 맞춰 시장을 허용했다.  
 
더 비관적으로 보자면, 북한에서 시장의 제도화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과 인권 탄압을 지속하겠다는 신호이다. 이 시나리오라면 고립과 제재가 가장 합리적 대응 방안이다.
 
세 번째 해석은 북한 사회와 북한 정권이 분리되는 초기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CSIS 보고서가 인용한 앤드루 여 교수의 탈북민 인터뷰에 따르면, 시장이 활성화되고 휴대전화를 비롯해 소통 수단이 다양해지면서 “정권과는 별개로 단체”를 구성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 면에서 북한 체제에 맞서는 게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생존 욕구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라면 김정은 정권은 북한에서 형성되는 신생 시민 사회를 받아 주기 어렵다. 오히려 더 강력한 단속으로 영향력을 차단하려 할 것이다. 핵무기는 정권의 생존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아래에서 시작된 변화로 정권은 통제력을 잃게 된다.
 
이런 방향의 해석이 맞는다면 제재와 선택적 교류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대응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시장 자체가 아니라 북한 내 시장을 통해 형성되는 정보 유통과 사회 조직 생성이다. 그런데 사회적 연결망 형성의 진행 속도가 핵무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속도에 비해 현저히 느리다. 따라서 시장이 우리를 북핵 위협에서 지켜줄 거라 여겨서는 안 된다. 핵·미사일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고 그에 따른 상황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시장경제가 가져올 효과를 기대하며 꿈에 부풀어서는 안 된다. 결국 CSIS 보고서는 왜 우리가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끄는 방안을 강구하고 지지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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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