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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의 시시각각] 사이다 정치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는 작가 이문구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다. 책에서 그는 호흡이 긴 요설체의 충청도 사투리로 김영삼(YS) 대통령과 미국 부시 대통령을 엮었다. ‘부시야 이락을 부셔 버려서 부시구, 슨거에 나섰다가 크링턴 헌티 부서져서 부신디, 왜 하필 YS를 부시 헌티다 빗댄다냐’라면서도. 실제로 YS는 부시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임 중 총선에선 이겼다. 그런데도 부시 부자와 엮이는 건 행로가 닮아서다.
 
YS는 실언이 많기로 유명했다. 아들 부시 역시 비슷한 증상으로 유머집까지 나왔다. 캐릭터가 그랬지만 보수당으로 집권한 두 정상은 무엇보다 색깔이 비슷했다. 일단 전 정권 뒤집기에 올인한 외양이 그렇다. 취임 열흘 만에 쉰 개 이상의 별을 뗀 하나회 해체 인사를 단행한 뒤 ‘깜짝 놀랐제’라며 기뻐한 YS다. 아들 부시는 당선 후 곧장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하던 것만 아니면 뭐든 괜찮다)로 달렸다.
 
그래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YS는 군사독재 적폐를 끊어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떠안았다. 부시는 9·11 공격에 맞서 테러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모두 도덕성과 안보를 내세워 집권 내내 싸웠다. 하지만 경제 성적표는 시원치 않았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YS는 ‘재임 5년간 최대 업적이 남북 간 소득 격차를 현격히 줄인 것’이란 말을 들으며 퇴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앞에 선 부시는 ‘경제 망친 무능 지도자’로 낙인찍혔다. 배경엔 불관용의 대청소 정치와 지지율만 신경쓴 외고집이 있다.
 
지금은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이다. 틈만 나면 통합·탕평·소통을 강조하는 두 정상이다. 하지만 상대를 공격하고 분노를 일으켜 표를 모으는 ‘AB 정치’엔 차이가 없다. 트럼프는 ABO(Anything But Obama)다. 문 대통령에겐 전 정권과 전전 정권이다. 흠만 잡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지지층에게 끊임없이 사이다를 들이부어 높은 인기와 결속을 유지하는 점이 닮았다. 도덕적 우월감을 앞세운 20년 전 정치다.
 
문제는 경제가 그때처럼 신음이 커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심각한 건 트럼프와 달리 문 정부는 ‘반기업 친노조’의 이념에만 집착해 경제 법칙과도, 기업과도 싸운다는 점이다. 10대 그룹 중 검경이나 국세청·공정위 같은 사정기관의 수사를 받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한다. ‘정의로운 경제’란 정치적 가치가 먹히려면 내 적폐부터 먼저 잘라내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정권의 재계 길들이기 적폐엔 변화가 없다. 그러면서 끝없이 전 정권 탓이다.
 
걸프전 승리로 역사상 최고치(90%)를 기록했던 아버지 부시 지지율은 경제 악화로 1년여 만에 30%대로 급락했다. ‘1만 달러 소득’에 집착해 ‘달러 풀기’ 고집을 꺾지 않은 YS 정부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경제를 살리려면 최소한 경제만이라도 정치에서 풀어줘야 한다. 더구나 환자에게 약이 아니라 설탕물만 쏟아붓는다고 욕하면서 경제 해결사를 자임한 분들이 꾸린 정부다. 지지층만 앞세우는 사이다 국정에 핵심 경제라인을 손대지 않는 개각으로 억지를 부리면 경제가 살아날 까닭이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옥탑방에서 읽었다는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의 저자 리처드 플로리다는 기술(Technology), 인재(Talent)와 함께 관용(Tolerance)을 성장에 필요한 3T로 꼽았다. 뭐든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래서 다양한 생각과 지식, 정보가 막힘 없이 유통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사막의 침묵에만 귀 기울일 게 아니다. 전 정권의 무능과 적폐를 남김없이 걷어낸 ‘전능한’ 정권인데 왜 아우성이 터져나오는지 귀담아 들어야 한다. 아니라면 정말로 YS와 부시가 간 길을 걷게 될지 모를 일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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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