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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투표’ 안 통해 … 이젠 당원이 의원 머리 위서 논다

장외 정치고수 ‘민주당 권리당원’ 만나 보니 
호남에 기반을 둔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은 경선에서 각본 없는 투표드라마를 만들어왔다.
 
민주당 ‘대의원’들이 ‘전략적 선택’을 한 결과다. 바로 이 ‘전략적 선택’의 경향 때문에 “민주당은 대의원 한명 한명이 정치고수”라는 평가도 있다.  
'노풍'을 일으켰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노무현, 정동영, 이인제 후보가 TV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촬영을 위해 악수를 나누고 이후보가 일찍 자리로 돌아서가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중앙포토]

'노풍'을 일으켰던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노무현, 정동영, 이인제 후보가 TV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촬영을 위해 악수를 나누고 이후보가 일찍 자리로 돌아서가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중앙포토]

노무현 후보를 선출한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한 대의원이 쌍안경까지 가져와 후보들의 연설모습을 보고 있다.[중앙포토]

노무현 후보를 선출한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한 대의원이 쌍안경까지 가져와 후보들의 연설모습을 보고 있다.[중앙포토]

 
이번 8.25 민주당 전당대회에도 그런 전략적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 전대에서 대의원은 1만5000여명이었다. 이들의 현장투표가 이번 당 대표 경선에서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했다.  
 
대의원 1만5000여명 중 1만여명(1만135명)은 253개의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선출된 전국 각지의 ‘권리당원’들이었다. 당비를 매달 1000원씩 6개월 이상 납부한 당원들을 말한다.  
 
대의원 또는 권리당원은 정당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실제로 정치를 움직이는 존재다. 지난 25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서울 잠실체조경기장을 찾았다. 투표를 하고 나온 대의원(권리당원)들을 만나 누구를,‘왜’ 찍었는지 물어보는 게 목적이었다.
 
 
전당대회는 '전국 (당)대의원 대회'의 줄임말이다. 그런 점에서 전대의 주인공은 대의원이다. 민주당 8.25 전대에서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후보가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전당대회는 '전국 (당)대의원 대회'의 줄임말이다. 그런 점에서 전대의 주인공은 대의원이다. 민주당 8.25 전대에서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후보가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표 줍쇼! 한표 주이소! 한표 줘유~”  
 
이날 송영길-김진표 후보에 이어 마지막으로 연설에 나선 기호 3번 이해찬 후보가 JTBC 예능프로그램(한끼줍쇼)을 인용하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체육관이 떠나갈 정도의 박수가 나왔다. 지금이야 ‘1위 이해찬-2위 송영길-3위 김진표’로 성적표가 나온 상태지만 레이스는 혼전이었다. 초반에는 이 후보의 우세로 봤으나 레이스 중반 이후 김진표 후보의 ‘경제대표론’이 먹히고 있다든지, 송영길 후보의 ‘세대교체론’이 치고 올라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성 이미지의 이해찬 후보가 “한표 줍쇼~”하고 나온 자체가 상황이 다급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①피부로 느껴진 ‘이해찬’지지=척 봐도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 4명이 대의원증을 패용하고 있어 다가갔다. 23세 최기영씨는 전주 덕진에서 올라온 대학생이었다. 21살 때부터 권리당원으로 활동 중이라 했다. 민주당은 각 지역에서 권리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들 가운데 100명 정도에게 대의원 자격을 주고 있다.
 
최씨는 “송영길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당에 새로운 동력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개념이었다”고 설명했다.
 
최씨 곁에 있던 용인대생 우남규(27)씨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이해찬’을 말했다.“야당 대표들 면면을 봤을 때 이번엔 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나머지 대학생 두 명도 ‘이해찬’이었다. 한 명은 경기도 수원갑에서 온 최성식(24)씨, 한 명은 경기도 광명갑에서 온 성공회대생 송유현(25)씨였다. 경기도 수원이면 김진표 후보의 ‘아성’이라는데, 의외의 답이었다.  
 
-왜 이해찬인가.
 
^최성식=“야당 대표들을 견제할 사람을 우선 골랐다. 떨어지고 있는 당 지지율을 보정하려면 이해찬 후보가 되어야 당이 불안해지지 않을 것 같다. 이 후보는 책임있고, 뚝심있게 정치해왔다. 지금 패러다임에 맞는다.”
 
^송유현=“문 대통령을 지켜줄 사람은 ‘강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지지율 하락국면에서는 ‘어젠더 세팅’을 잘해야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후보가 더 이상 출마를 안 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사심 없이 하겠구나’라는 기대감을 줬다. 대권주자가 대표가 되면 공천과정에서 사익을 개입시킬 가능성이 있다. 송 후보는 세대교체를 말하지만 그 자신조차 나이(55세)가 있고, 논리가 ‘40대 기수론’에서 더 나아가지도 못했다.”  
 
-김 후보의 근거지가 수원이고, 문재인 대통령 측근 전해철 의원까지 지지선언을 했는데.
 
^최성식=“우리당이 지역주의 타파를 말하고 있는데, 같은 경기도라고 지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전 의원의 지지선언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  
 
^송유현=“김진표 후보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공격하면서 당을 갈라치기 했다. 그건 국민이 투표한 것에 반하는 행위다.”  
 
20대 대학생들에게 세대교체론이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 데다 경기도 수원 출신 대학생에게서 이해찬 지지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현장 분위기는 이 후보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대의원 20명 중 절반 정도가 ‘이해찬’을 말했다. 익명을 원한 경기도 이천 출신의 한 대의원은 “한국노총은 모두 이 후보를 찍기로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대학생 외에 노동부문에도 대의원 몫을 할애(15% 이내)하고 있다.  
국무총리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이해찬 당시 총리. 두 사람은 대정부질문에서 고성을 주고받으며 기싸움을 벌였다. [중앙포토]

국무총리시절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이해찬 당시 총리. 두 사람은 대정부질문에서 고성을 주고받으며 기싸움을 벌였다. [중앙포토]

국회 정치·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이해찬 총리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있다.

국회 정치·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이해찬 총리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있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20년 집권론’을 든 대의원은 한명도 없었다. 너무 먼 얘기보다 오히려 '이해찬 자체'를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 후보는 국무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한나라당) 투사였던 홍준표 의원과 수차례 언성을 높여가며 ‘강 대 강’의 충돌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홍 의원이 기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민주당에서 이 후보 별명은 ‘영혼 탈곡기’다. 상대방을 탈탈 턴다고 해서다.  
 
②송영길, 세대교체론도 한 흐름= 의원들이 누구를 지지하든 대의원들은 '마이 웨이'였다. 체육관 주변에서 만난 광주북구 대의원 정준(48)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한다. 2002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15년째 권리당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 역시 대통령 측근 전해철 의원의 김진표 후보 지지선언을 비판했다.
 
“대통령 측근들이 특정후보 지지선언을 하는 건 ‘문심’(文心)으로 비치도록 하려는 것일 텐데 참으로 수준 떨어지는 정치다. 문 대통령이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도 없고, 지지해서도 안 되는 걸 당원들이 다 아는데 그런 게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세대교체론'을 앞세운 송영길 후보는 이번 전대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김진표 후보를 제친 것은 이변에 속한다. [중앙포토]

'세대교체론'을 앞세운 송영길 후보는 이번 전대에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김진표 후보를 제친 것은 이변에 속한다. [중앙포토]

정씨는 ‘송영길’을 선택했다. 송 후보가 호남출신인 게 작용한 게 아니냐고 물어봤다. 그는 “그런 지역색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전략적 선택+알파’를 하는 게 호남정치"라며 "사고가 역동적이고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드라매틱한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가 주장하는 ‘전략적 선택+알파’는 다른 당이 ‘올드보이’를 뽑을 때 “새로운 리더십, 새로운 세력을 부상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래야 민주당이 롱런할 수 있다”고 했다.  
 
익명을 원한 경기도 의왕과천의 60대 여성 대의원 생각도 비슷했다. “30대에 평민당에 들어와 모든 걸 다 겪었고, 내 인생에는 정치에 대한 추억밖에 없다”는 30년 권리당원이었다. 그는 “지역위원장(신창현 의원)은 이해찬 후보를 지지하지만 나는 송영길”이라고 말했다.“상대당이 올드보이를 (대표로) 내는 지금 우리당은 젊어져야 한다. 그래야 2020년 총선 때 정계개편을 포함해 여러 여건이 변화해도 민주당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2002년부터 15년 동안 권리당원 활동을 했다는 대의원 송기수(65)씨는 “송영길 후보가 되어야 줄줄이 젊은 피를 수혈할 수 있다”고 했다. 변화를 요구하는 이런 흐름이 또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었기에 송영길 후보가 김진표 후보를 앞설수 있었을 것이다..  
김진표 후보는 전대에서 3위에 그쳤다. 이해찬 후보와 겹치는 지지층을 김 후보가 흡수하는데 실패한 결과로 보인다. [중앙포토]

김진표 후보는 전대에서 3위에 그쳤다. 이해찬 후보와 겹치는 지지층을 김 후보가 흡수하는데 실패한 결과로 보인다. [중앙포토]

 
③한 목소리로 “문제는 경제다”=물론 김진표 후보 지지자도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평택의 60대 대의원은 “다른 당이 최저임금과 일자리 문제로 약점을 잡아 우리당을 공격해오고 있는데, 김진표 후보가 돼야 경제 갖고 떠들어대는 것을 잠재울 수 있다”고 했다.
 
가게를 ‘알바생’에게 맡겨놓고 경남 창원에서 올라왔다는 이영순(47ㆍ여)씨는 “이제 진보니 보수니 해묵은 논쟁을 하면서 갈등할 시기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 당ㆍ정ㆍ청을 갈등없이 이끌어갈 사람은 김진표”라고 말했다. 마산 합포구에서 올라온 김가은(47ㆍ여)씨도 “김진표 후보 공약이 제일 낫다”고 거들었다. 이들 옆에 있던 경기도 의정부의 50대 여성 대의원 또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김 후보를 중용했고, 문 대통령도 인수위 격인 국정자문위원장을 맡겼다. 세 분의 선택을 믿는다”고 했다.
 
세 여성대의원은 회원수가 3300여명인 ‘더권당’(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 모임)멤버였다. 지역이 달라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다 전당대회에서 처음 얼굴을 봤다고 한다. 더권당 말고 회원 2000명의 정준모(정치개혁 준비된 권리당원 모임)란 모임도 있다. 권리당원이 온라인을 무대로 조직화하면서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김 후보는 경제를 선택 기준으로 생각하는 표를 충분히 흡수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한 50대 대의원은 “김진표의 경제는 재벌 중심 경제”라고 주장했다.
 
대전 유성에서 올라온 송경화(56ㆍ여) 대의원은 고심끝에 이 후보를 택한 경우다. 그는 ‘전국 골프존사업자협동조합’ 이사장이다. (주)골프존은 스크린골프 시장의 독점적 기업이 된 뒤 무료로 하던 ‘골프코스 이용료’를 유료로 전환하게 하고, 그 비용을 점주들에게 선납하게 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에 4900여 스크린골프장 점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5년째 (주)골프존과 싸우고 있다. 송 이사장은 “평범한 주부가 죽지 못해 도로로 나와서 투쟁하고 있을 만큼 너무 절박하다"며 “세 분 모두에 각각 애정이 있던터라 많이 망설였지만 제도개선을 하려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해찬 후보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가 전한 민생현장 상황은 실로 다급해 보였다.
 
“나는 원래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주)골프존에 코스이용료 등을 매달 200만~300만원씩 뜯기듯 보내야 하는 상황에선 지급 여력이 없다. 한때 종업원을 세 명까지 쓰다가 지금은 한명도 못 쓰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매장을 지킨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소상공인, 영세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일자리 안정자금은 하늘의 별따기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필요한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선 신용불량으로 소득노출을 꺼리는 저소득층 등이나 친인척을 대부분 쓰는데 이들은 안정자금 수급대상이 아니다.유통기업의 골목상권 침탈과 수탈행위, 가맹점 대리점의 과잉수수료, 임대료 같은 본질적 문제를 개선한 후 최저임금을 인상했더라면 충격이 완화됐을텐데 안타깝다. 혈세를 풀어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상공인들이 생존할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680만 소상공인이 종업원을 한 명씩만 더 고용해도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날까.”
 
대학생에서부터 송 이사장까지 민주당 대의원 또는 권리당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의원들이 당원들에 ‘투표 오더(order)’를 내리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 측근이 지지선언을 한 후보가 3위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젠 권리당원들이 의원들 머리 꼭대기에 서 있는 시대다. 스스로 돈을 내고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당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온라인에서 조직화까지 시도하고 있다.
 
그런 민주당 권리당원들에게선 위기의식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은 한결같이 ‘이제는 경제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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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