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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수상작

장원 
마디를 읽다  
-김수형
 
엑스레이에 찍혀 나온 불 꺼진 시간들
어머니 손가락이 시누대를 닮았다
뭔가를 움켜쥐려던
시간들도 찍혀 나왔다
 
찬물에 손 담그고 쌀 씻던 아침마다
물속에서 휘어지던 뼈마디를 보았지
울음도 씻어 안치던
어린 날의 어머니
 
어머니 손마디에 두 손을 내밀면
나이테에 실타래를 감았다 푸는 바람
불 켜진 판독전광판에
먼 전생의 내가 있네  
 
◆김수형
김수형

김수형

1969년 전남 목포 출생. 전남 도립도서관 상주작가. 현대문학 박사과정. 『현대시조 창작강의』, 신춘문예 당선작, 중앙시조백일장 입상 작품 필사하며 시조 공부.

 
 
 
 
 

차상  
섬  
-황병숙 
 
수북한 폐지더미 방지 턱 넘어간다
시야를 가려버린 위태한 섬 횡단할 때
주춤한 도로의 차들
경적소리 요란하다
 
어쩌다 이름마저 잃어버린 섬 하나
손수레 돛대삼아 맨몸으로 떠다니는
가풀막 노인의 고도(孤島)로
소낙비 들이친다
 
지나던 손길들이 밀고 당긴 섬 수레
비 그친 길 위에 곰실곰실 너울대며
또 다시 굴러가는 섬
햇살처럼 환하다  
 

차하  
어떤 택배
-정화경
 
비금도* 바닷물이 한 박스나 배달됐다
사각의 틈새로 행여 신상이 드러날까
테이프 입을 봉하고 모르는 척 앉아있다
 
밤새 몰래 뭍에 오른 야청빛 창창바다
어느 집 저녁 식탁을 물들이고 싶은 걸까
밀봉한 봉인을 뜯자 왈칵 쏟는 푸른 화두!
 
서덜밭 엎드려서 온몸으로 써내려 간
어머니 생애처럼 땅 붙안고 앉은 시금치
흙 묻은 잎사귀 하나 시퍼런 눈을 뜬다  
 
이달의 심사평
시조는 천 년 묵은 산삼이다. 사랑을 주성분으로 하는 사람을 위한 명약이다. 사랑의 미학을 진하게 달이기 위해서는 모닥불을 피워 쉬엄쉬엄 오래 기다려야 한다. 많은 응모작 가운데 김수형의 ‘마디를 읽다’를 장원으로 올리는데 이의가 없었다. 시누대의 마디를 보고 어머니의 휘어진 손가락을 떠올리는 비유가 참신하다. 손가락을 통한 오늘의 현상에 나의 존재를 읽어내는 가열한 시편이다. “울음도 씻어 안치던 어린 날의 어머니”와 같은 형상화는 오래 조탁한 내공의 흔적이 역력하다. 탄탄한 세 수의 얼개 속에 원심력과 구심력이 서로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서술적 요소들은 조금 더 오랜 숙성을 필요로 한다.
 
차상에 오른 황병숙의 ‘섬’은 한 노인의 손수레에 실린 파지더미를 섬에 비유하고 있지만 결코 외로운 섬이 아니다. “잃어버린 섬 하나”는 노인의 전생이지만 “손수레”의 “맨몸”은 현실을 비관하지 않는 건강한 관찰력이 쓸모없는 삶을 쓸모 있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설익은 표현들이 음보에 기대고 있다. 시조 창작의 맹점이다.
 
정화경의 ‘어떤 택배’를 차하로 택했다. 일관성 있는 구성은 원만했으나 중첩되는 표현법과 “화두”와 같은 사변적 관념어를 걷어냈으면 한다. 내 얘기가 아닌 남의 말을 하는 습관도 흠결 중의 하나다. 사유의 심화를 통한 확장이 정한의 씨를 여물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심마니가 되고 싶다. 꼭 지금이 아니라 오래 된 산삼을 캘 수만 있다면 외롭게 기다릴 수 있다. 조우리·임주동·이기선에게서 다음 기회에 크게 한 번 “심봤다”를 외치고 싶다.  
 
심사위원: 박권숙·최영효(대표집필 최영효) 

 
초대시조
현관
-이광
문 밖엔  
늘 헤쳐 온 파도가 넘실댄다  
 
바다도 뭍도 아닌  
여기는 작은 선창  
 
그물질  
지친 몸 부릴  
배를 댄다  
 
집이다   
 
◆이광
이광

이광

1956년 부산 출생.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시장 사람들』 『바람이 사람 같다』. 부산시조작품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하나의 핵심적인 사물만으로 전체의 의미를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한 개의 이미지가 글을 지배하게 되는데, 그 이미지는 상징으로 작용하면서 전체서사의 개념어, 즉 상징적 이미지가 된다.
 
시조 ‘현관’에서, 제목은 전체 의미를 통어하는 지배소이자 상징이다. ‘현관’은 집 밖의 거친 풍랑의 현장으로 나서는 “작은 선창”과도 같은 곳이며, 돌아와서는 배를 댈 곳이다. 역으로 “바깥”은 “파도가 넘실”대고, 그물질로 지친 몸이 되어가는 곳으로 극적인 대비가 이루어진다. 현관은 집의 요소 중에서도 도착했을 때의 안온감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므로 현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아직 집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이윽고 “배를 댄다// 집이다”고 했을 때, 이미 심리적으로 집안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집과 바통 터치를 하는 곳이 현관인데, 그 터치의 순간에 바깥이 무화되면서 휴식의 몽상에 잠기게 된다. ‘현관’은 단시조의 절제된 형식 내에서 핵심적 이미지를 통해 삶의 극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시인이 가진 사상과 정서는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보다는 그 상관물(대상)이 가진 ‘이미지, 사건, 상징’ 등을 통해 구현된다. 이때 시인이 찾아낸 사물의 표정은 상관물로서의 정신적 외피(外皮)라 할 것이니, 시를 읽을 때는 그 표정을 통하여 내부에 깃든 정신과 마음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시조 창작에서 하나의 새로운 상징을 발견하거나 표현하려는 노력은 시조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염창권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04513) 또는 e메일(won.minji@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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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