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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대학이 받은 ‘구조개혁’ 성적표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한국의 2년제와 4년제 대학 300여 곳이 지난 24일 받은 성적통지표는 대학 박물관에 꼭 유물로 남겨 두었으면 한다. 성적표는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가(假)결과’다. 발부처는 교육부. 교육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자율개선대학 207개▶역량강화대학 66개▶재정지원제한대학 20개 명단도 언론을 통해 내놨다. 소위 대학구조개혁 성적표라고 한다. 역량강화는 정원감축 조치 대상자이고, 재정지원제한은 정부 지원금·학생 학자금 제한 대상자다.
 
성적표의 유물 가치는 3가지로 봐 충분하다. 우선 희귀성이다. 정부가 대학을 이렇게 평가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등급을 매기거나 줄을 세워 재정 지원할 곳을 선별하는 나라는 우리만 유일하다. 둘째는 역사성이다. 성적표 양식이 좀 달라졌을 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어 지금 정부에도 정권과 관계없이 이어진 전통이다. 셋째는 참신성이다. 성적표는 맞긴 한데 점수는 없어서다. 이것에 의해 일부 대학은 정원은 줄이고,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도 안 되는 불이익을 주는데도 점수는 어딜 봐도 없다. 공문으로 온 성적표 내용을 보면 자율개선대학은 ‘자율 감축(정원 감축 권고 미실시)’, 역량개선대학은 ‘2018학년도 입학정원 대비 10% 감축’ 등으로 돼 있다. 대학들은 만점은 100점 만점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몇 점 받았는지 모른다. 2014년 1주기 평가 땐 점수라도 알려줬건만 이번엔 아직 점수가 교육부에게서 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자율개선에 들어간 대학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당연한 결과라면서 좋아한다. 역량 강화나 재정지원제한에 들어간 대학은 이게 웬 날벼락이냐며 난리가 났다. 예를 들어 입학정원 3000명 대학이 정원 10%를 줄여야 한다면 3년에 걸쳐 300명을 삭감해야 한다. 등록금 수입만 21억여원이 허공에 날아간다. 대학 구성원들은 총장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학생들은 앞으로 이 학교 계속 다녀야 하는지 고민한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학생수는 갈수록 줄고 있는데 대학이 너무 많아서 경쟁력 없는 대학은 빨리 문 닫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에도 수긍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300개가 넘는 전문대와 일반대의 설립 누가 해줬나. 누구나 일정 기준만 되면 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설립준칙주의는 교육부가 만들었다. 이제 와서 점수도 없는 성적표를 대학에 보낸 것이다.
 
이번 평가는 근래 보기 힘든 전형적인 깜깜이 평가라는 점에서 교육부는 평가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수원대·목원대·평택대 등은 지난 6월 통지된 ‘1단계 진단 가결과’에서 자율개선대학이었다가 이번에 역량 강화로 추락했다. 총장 등 보직자의 부정비리 혐의로 인해 점수가 깎였다고 한다. 이들이 떨어져 주는 덕분에 지난 6월엔 역량강화대학이었던 배재대·우송대·영산대가 자율개선으로 오르는 혜택을 봤다. 그런데 무엇을 잘해서 올랐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원래 역량강화에 있던 대학들은 왜 배재대·우송대·영산대처럼 자율개선에 올라가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모든 대학이 자기 점수를 스스로 공개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같은 총장 협의체가 그 점수를 취합하면 깜깜이 평가과정을 밝혀낼 수 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교협은 그럴 힘도 없고, 교육부의 잔심부름을 하는 곳으로 전락한데다 거기에 속한 총장들도 자기 살길 찾는데 바쁘다.
 
교육부 관계자는 “우리도 나중에 감사원 감사를 받을 걸 아는 상황에서 평가를 엄정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분명 맞을 것이다. 다만 대학들이 꾹 참고 있는 걸 보고 교육부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소송 내봐야 두고두고 교육부에 당한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다 안다. 21세기 한국의 대학은 정부 돈에 순치돼 있다. 돈 받기 위해 자존심을 내팽개칠 수 있는 비참한 존재가 됐다.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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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