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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신봉자된 골프업계 일벌레, 사연 물어보니

기자
민국홍 사진 민국홍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12)
에코 골프의 신두철 대표. [사진 민국홍]

에코 골프의 신두철 대표. [사진 민국홍]

 
최근 급성장한 골프 시장에서 사업가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있다. 장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도 좋아 직원들을 자기 식구처럼 돌본다. 주인공은 1990년대 말 국내 골프 시장에서 캘러웨이 골프 클럽 돌풍을 일으켰던 에코 골프의 신두철(58) 대표다.
 
나는 2011년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스포티즌의 공동대표로 있던 시절 미국 골프클럽 제조회사인 클리블랜드의 한국총판을 운영하던 그를 만난 적이 있다. 스포티즌이 대행한 여자골프 대회의 서브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만났으나 그의 협찬을 얻는 데 실패했다. 당시 그는 비즈니스에 충실하고 손해 볼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정도의 냉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신 씨는 이후 골프화로 사업 아이템을 바꿔 성공 스토리를 써 나갔다. 그런 그가 요즘은 일보단 취미 등 개인 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SNS상에서 개인사를 엿보다가 근황이 궁금해 오프라인 만남을 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8월 어느 날 분당의 디자인센터에 있는 그의 회사로 직접 찾아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골프 사업에 어떻게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가.
“아주대 불문과를 나와 제약회사에서 영업하고 중소제조업체에서 관리와 회계를 배웠다. 사회초년병 시절인 1994년 고등학교 동기이자 절친인 신재호 현 한국 PXG클럽 대표에게 이끌려 골프용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얼마 안 돼 나를 끌어들인 그 친구는 떠나갔지만, 이상현 (현 캘러웨이 골프 한국지사장)이라는 마케팅 귀재를 만나 캘러웨이 골프클럽을 유통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크게 성공했다. 나는 관리와 재무를, 이상현은 마케팅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역경도 있었지만, 운이 따랐다. 당시 외국산 골프클럽의 밀수가 성행하고 있었는데, 당국의 단속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캘러웨이사의 GBB(Great Big Bertha) 와 BBB(Biggest Big Bertha)가 미국과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운영하던 회사가 97년 매출 500억 원대의 견실한 기업으로 크게 성장했다.
 
내가 당시 골프 업계의 관행을 따르지 않고 100% 자료거래를 하고 광고를 도입하는 등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한 게 회사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덴마크의 에코사와 합작하여 세운 에코 코리아.[사진 민국홍]

덴마크의 에코사와 합작하여 세운 에코 코리아.[사진 민국홍]

 
그럼 언제부터 골프 클럽에서 골프화로 주 종목을 바꾸었나.  
 “2005년 캘러웨이에서 나와 다시 신재호와 함께 클리블랜드 클럽의 한국총판을 운영하다 그 뒤 하이브리드 전문 클럽인 아담스 브랜드와 에코 골프화 사업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마케팅도 하면서 경영 능력도 인정받았다. 사실 비즈니스에 목숨을 건 일벌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에 4~5시간 자고 일했다. 회사를 나오면 거래처 관계자 등 회사 일에 관련된 사람들과 밤늦게 까지 못 먹는 술을 했다.
 
그런 와중에 경영이론 습득을 위해 건국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고 아주대 대학원에서 물류공학을 공부했다. 2013년 세계적인 신발 브랜드인 덴마크의 에코사와  합작으로 일반 신발까지 망라하는 에코 코리아를 세웠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야심에 불탄 기업가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선한 사마리안같다.  
 “4년 전에 물류창고에서 회의를 하다가 직원에게 텀블러를 던졌다. 나도 모르게 분노를 폭발시킨 것인데 너무 놀라 주위에 알아보니 우울증 초기 증세로 보인다고 하더라. 몇 개월 많이 생각했다. 나는 행복을 뒷전에 팽개친 채 일에만 몰두하면서 어리석게 살아왔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두철 씨는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회사를 내려놓고 단식과 취미생활, 운동 등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 [사진 민국홍]

신두철 씨는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후 회사를 내려놓고 단식과 취미생활, 운동 등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 [사진 민국홍]

 
그 뒤로 어떻게 변했는가.
“애착을 갖고 키우던 회사부터 내려놓았다. 매출을 400억원 대로 키운 에코 코리아의 대표직에서 깨끗이 물러났다. 다만 에코 골프화만을 취급기로 했다. 이는 그동안 여러 회사를 키워오면서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니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더라. 가정이 보였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이 생겼다.
 
2014년 조건진 KBS 아나운서의 권유로 경남 삼천포에서 함께 13일간 단식을 하면서 매일 20km를 걷는 대장정을 시작했고 매년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부모, 부부, 자식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전원주택을 지어 온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치 담그는 것부터 음식도 제법 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오후 2시면 무조건 회사에서 나와 서예 등 취미생활이나 운동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정신을 맑게 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매출 120억 원 적정 이익을 냈지만, 이제는 돈만 벌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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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