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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경고, "연애결혼은 미친짓"

오페라 '세비야 이발사' 중 한 장면. 여주인공 로지나는 여러 모습으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과 사랑에 빠진다. [사진 음악미학연구회]

오페라 '세비야 이발사' 중 한 장면. 여주인공 로지나는 여러 모습으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과 사랑에 빠진다. [사진 음악미학연구회]

“저는 경남 진주에서 새벽 6시에 나와 여기 왔습니다. 음악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만 오페라를 정말 좋아해서요.”

 
 24일 오후 서울 마포의 세아타워 오디토리움. 객석에서 한 남성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무대에는 오페라를 비롯한 여러 형식의 음악 연구자들이 있었다. 남성이 이어간 질문은 프랑스 작곡가 라모(1683~1764)에 대한 것이었다. “라모가 왜 자신의 오페라에 ‘음악 비극’이란 정의를 붙였는지 궁금합니다.”
 
이날 열린 행사는 ‘오페라, 낯선 사랑을 통역하다’를 주제로 열린 학술 포럼이었다. 음악학ㆍ미학ㆍ철학ㆍ독문학 등 학자들의 모임인 음악미학연구회가 주최한 자리다. 학술 행사였지만 청중의 질문에서 볼 수 있듯 전문가가 아닌 이들의 관심도 끌 수 있는 내용이 이어졌다.

 
24일 서울 마포의 세아타워에서 열린 음악미학연구회 학술포럼. 학자들과 청중이 오페라 속 사랑이라는 주제로 논의했다. [사진 세아이운형문화재단]

24일 서울 마포의 세아타워에서 열린 음악미학연구회 학술포럼. 학자들과 청중이 오페라 속 사랑이라는 주제로 논의했다. [사진 세아이운형문화재단]

 
 발표자들은 그들이 연구해온 '오페라 속 사랑'을 이해하기 쉽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오페라 평론가이자 공연예술학 박사인 이용숙은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를 놓고 “새로운 시대의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라 해석했다. 
 
 이 오페라의 원작이 나온 18세기는 정략결혼이 당연하던 때였다. 하지만 주인공인 알마비바 백작은 세비야의 이발사인 피가로의 재치있는 도움으로 시민계급의 아름다운 여성 로지나와 결혼에 성공한다. 이용숙은 “로지나를 유혹하는 백작의 노래는 오만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고, 로지나는 백작의 정체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결혼을 수락한다”며 “정략 결혼은 이성적이지만 연애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우스운 해프닝으로 가득한 희극 오페라로 단순하게 연출하는 경향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중 한 장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사랑을 그렸다. [사진 음악미학연구회]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중 한 장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사랑을 그렸다. [사진 음악미학연구회]

  
 독일 뮌스터대학 음악학을 전공한 우혜언 박사는 쇼스타코비치의 1932년작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주제로 발표했다. “쇼스타코비치는 결혼관과 여성관은 본인의 시대에 비해 앞서 나갔다”며 연애와 결혼에서 여성의 결정을 존중하는 작곡가의 신념이 담긴 글을 소개했다. 
 
 쇼스타코비치의 두 번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나약한 남편과 탐욕스런 시아버지, 기회주의자 애인의 희생자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혜언은 쇼스타코비치가 오페라에서 남자 등장인물을 조롱한 데 이어, 여성 주인공의 비중을 높이고 그에게 독백부터 화려한 아리아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긴 점에 주목했다. 이 해석은 20세기 이후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졌다.
 
첸더의 '조셉 추장' 중 한 장면. [사진 음악미학연구회]

첸더의 '조셉 추장' 중 한 장면. [사진 음악미학연구회]

 
 '사랑'은 누구에게나 친근한 주제이지만 이번 포럼에서 연구 대상으로 언급된 오페라 작품들은  만만치 않았다. 2005년 독일에서 초연된 후 지금껏 한 번도 재연되지 않은 난해한 작품 ‘조셉 추장’, 1733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됐던 낯선 작품 ‘이폴리트와 아리시’ 등이었다.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한 강지영 박사는 한스 첸더의 오페라 ‘조셉 추장’을 주제로 남녀의 애정뿐 아니라 인종 사이의 포용 또한 더 큰 의미의 사랑에 포함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생존 작곡가인 첸더는 19세기 말 인디언 추장인 조셉의 연설문을 주제로 브레히트의 시, 괴테의 소설, 성경의 시편 등을 인용해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내용의 현대적 오페라를 만들었다. 강지영은 “낯선 문화를 중재하고 인류애를 강조하는 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연출가인 아힘 프라이어가 2011년 연출해 한국에서 공연한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에 대해 연구한 배묘정 박사는 독일과 한국, 두 문화의 접점을 탐구했다. 그는 “우리의 전통으로 만든 새로운 오페라는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에서 청중이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했다. 1
 
8세기 작품 ‘이폴리트와 아리시’를 발표한 유선옥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의붓아들을 사랑하는 새어머니의 스토리라는 점에서 요즘으로 치면 ‘막장’ 스토리인데, 라모는 이 작품에서 혁신적이고 낯선 음악 기법으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해 당시 논쟁의 중심에 섰다”고 소개했다.

 
낯선 문화에 대한 포용이라는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주제에 포함된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 [사진 중앙포토]

낯선 문화에 대한 포용이라는 의미에서 사랑이라는 주제에 포함된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 [사진 중앙포토]

 
 이날 포럼을 연 음악미학연구회는 2010년 음악미학 학자들의 공부 모임으로 시작했다. 연구회의 대표인 오희숙 서울대 작곡과 교수는 “음악미학은 전문적인 분야이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소개했다. “바그너의 작품으로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이해할 수 있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로 천재 미학을, 비탈리 샤콘느를 들으며 감정 미학을 설명할 수 있는 분야가 음악 미학”이라는 것이다. 오 교수는 이어 “앞으로도 오페라를 주제로 앞으로 3~4년 동안 대중과 접점을 찾는 학술 포럼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미학연구회는 오페라를 오랫동안 후원했던 고(故)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을 기린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의 후원을 2014년부터 받아 1년에 한권씩 연구 서적을 내고 있다. 포럼은 지난해 시작해 이번이 두 번째며 매년 여름 열 예정이다. 다음 포럼에선 헨델 '리날도' 베르디 '돈카를로' 등의 오페라를 다룬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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