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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스포츠 화제] '팔삭둥이' 강백호는 어떻게 괴물신인이 됐나

1994년 LG 김재현의 21홈런 넘어 고졸신인 최다 홈런 떼놓은 당상…해외 진출 않고 국내에서만 뛴다면 이승엽 기록 추월할 가능성도
 
괴물신인 강백호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후 수원kt위즈파크 전광판을 배경으로 방망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괴물신인 강백호가 월간중앙과의 인터뷰 후 수원kt위즈파크 전광판을 배경으로 방망이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홈런타자로서 자질과 잠재력만 놓고 보면 역대 19세 신인 중에 최고 아닌가! 나의 신인 시절보다 훨씬 낫다. 난 프로에 들어와서 성장한 케이스고, 강백호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홈런타자로 꼽히는 이승엽(42·전 삼성)은 올 시즌 괴물 신인으로 나타난 kt 강백호(19)에 대해 묻자 이 같이 평가했다. 1994년 LG 김재현이 작성한 역대 고졸신인 최다 홈런 21개를 뛰어넘어 새로운 역사를 쓸 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과 강백호. 둘은 묘한 운명의 교차로에 선 인물이다. 이승엽이 54홈런을 때리며 국내리그 역사상 최초로 50홈런 시대를 열었던 1999년 여름, 강백호는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처럼, 불세출의 홈런왕 이승엽이 지난해를 끝으로 역사의 커튼 뒤로 물러나자 강백호가 올 시즌 새로운 역사의 커튼을 열어젖히며 국내리그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어디 이승엽뿐이랴.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부터 지켜봐 온 허구연 해설위원 역시 “홈런에 관한 한 역대 19세짜리 신인 중 최고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허 위원은 “김재현이 1994년 LG에 데뷔해 21홈런을 때려냈지만, 김재현과 강백호는 다른 스타일이다. 김재현은 배트 스피드로 홈런을 만들어냈고, 강백호는 전형적인 홈런타자로 갈 수 있는 유형이다. 앞으로 한 시즌 홈런 40~50개를 돌파할 가능성이 큰 선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현역 선수 중 최고 홈런타자로 꼽히는 박병호도 “19세인데 대단하다. 난 어릴 때 긴장을 많이 했다”며 “그런데 강백호는 얼굴에 긴장한 모습이 안 보인다. 스윙스피드도 빠르고 자신감 있게 배트를 돌리는 모습이 19세라고 믿어지지 않는다”며 경탄했다.
 
데뷔 첫 해부터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처럼 만화 같은 활약을 펼쳐 나가고 있는 수퍼루키 강백호. 월간중앙은 강백호가 ‘괴물’로 성장해 우리 앞에 나타나기까지의 숨은 스토리와 함께 역대 괴물신인 타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에 대한 기대와 조언을 들어봤다.
 
낭중지추! kt 코칭스태프의 내기
7월 14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강백호. 고교 시절 투타를 겸비했던 강백호는 ‘한국판 오타니’로 불렸다.

7월 14일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강백호. 고교 시절 투타를 겸비했던 강백호는 ‘한국판 오타니’로 불렸다.

“강백호 올 시즌 홈런 몇 개나 칠까?”
 
지난 3월 시범경기였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kt 코칭스태프는 출정식을 겸한 회식을 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강백호가 화제에 올랐다. 특정 선수 한 명을 두고 코칭스태프가 대화 주제를 삼을 만큼 강백호는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치는 동안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였다.
 
김진욱 kt 감독은 당시 코치들이 강백호의 홈런 개수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자 즉석에서 내기까지 한 일화를 들려줬다. “플러스, 마이너스 1개씩의 범위를 인정하기로 하고 한 사람씩 예상했는데 제일 적게 꼽은 사람이 10개였고, 가장 많이 꼽은 사람이 25개를 예상한 채종범 타격코치였다. 난 17개로 예상했다. 당시 채 코치에게 ‘타격코치라고 너무 많이 정한 거 아니냐. 내기할까?’라고 물었다. 그런데 ‘내가 유리하니까 내기는 안 할게’라고 했는데, 현재 페이스로는 채종범 코치가 예상한 게 거의 맞아가고 있다.”
 
올 시즌 중에 퓨처스 타격코치로 보직 변경된 채 코치는 강백호가 프로에서 만난 첫 번째 타격 스승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강백호는 수시로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전하고 고민을 상담하기도 한다. 당시 무슨 근거로 강백호의 25홈런을 예상했을까. 채 코치는 “사실 30홈런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면서 백호가 치는 모습을 봤는데 몸쪽 공이나 가운데 공을 잡아당겨 담장 너머로 새까맣게 날려 보냈다. 우리 팀 타자 중 가장 멀리 보냈다. 외국인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와 비슷한 비거리였다. 다만 바깥(왼손타자로서 왼쪽 방향)으로 밀어쳐서 홈런을 잘 만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승엽처럼 홈런 많이 치려면 센터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타격 시 몸이 공중으로 뜨는 약점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체를 밀고 나가면서 밀어서 홈런을 만들기 시작하더라. 속으로 ‘와, 이놈 봐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쿠카몽가에서 NC와 연습경기를 하는데 곧바로 바깥쪽으로 밀어서 딱 홈런을 치더라. 시간이 지나면서 확실히 우리 팀 주전선수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고, 그러면 25개는 무조건 넘긴다고 봤다.”
 
강백호는 스프링캠프 기간에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타격 전 타석 밖에다 네모 박스를 그리고, 이어 작은 동그라미를 찍는다. 채 코치는 “게스히팅(예상타격)을 하는 거다. 투수의 성향이나 그날 컨디션을 보고 직구가 오면 ‘여기’, 변화구가 오면 ‘여기’를 찍은 뒤 타구의 방향성을 만든다. 캠프 때 조언했더니 그 이후로 자신만의 루틴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경기 직전 강백호는 외야로 달려나가 스프링캠프 때 세상을 떠난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자신의 이니셜을 그리는 그만의 루틴도 함께 만들었다. 이것만은 꼭 지키겠다는 생각이다.
 
타고난 스타성! 이벤트에 강한 남자?
경기 전 동료들의 타격훈련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강백호. / 사진·양광삼

경기 전 동료들의 타격훈련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강백호. / 사진·양광삼

김진욱 감독은 “강백호는 스타성이 있다”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올 시즌 KIA와 만난 시즌 개막전에서 강백호는 고졸 신인 역사상 최초로 데뷔 첫 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고교 시절부터 시속 150㎞의 강속구를 보유해 투타의 갈림길에 선 강백호는 결국 타자로 전향했다. 그런데 올스타전에서 깜짝 이벤트로 투수로 등장해 두 타자(오지환·이용규)를 상대하며 모두 삼진을 잡아내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김 감독은 “보통 신인 투수들은 올스타전에 처음 출전하면 긴장한 나머지 볼넷을 주거나 안타를 맞을 때가 많은데, 강백호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남들 머릿속에 확 박힐 수 있는 퍼포먼스를 펼친다”고 말했다.
 
서울고 1학년 때인 2015년 11월에는 고척스카이돔 개장 1호 홈런을 때려내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아버지 강창열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첫 타석에서 우중간 2루타를 쳤다. 지금도 동영상으로 간직하고 있다”며 웃었다.
 
지난해 신인왕 이정후와 올해 유력한 신인왕 후보 강백호의 출현은 한국 야구에 축복처럼 내려진 오아시스다. 그러나 둘은 타격 스타일이 다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야구에서 홈런은 팬들을 열광시키는 요소다. 허 위원은 “강백호는 프로 입단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며 “해외 진출을 하지 않는다면 이승엽의 국내 리그 통산 홈런(467개)을 넘어 500홈런을 넘어설 수 있다. 팀이 좀 더 강해져서 강백호 앞뒤를 받쳐주는 타자가 있다면 더 많은 홈런을 때릴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백호의 가장 큰 강점을 두고 응용력과 머리(두뇌), 그리고 강한 멘털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김진욱 감독은 “상대팀 분석도 있고 고졸신인인 이 친구가 버텨낼까 생각도 했는데, 성향이 일단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라며 “한 번 당하면 두 번은 거의 안 당한다. 머리가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 코치든 선배든 누가 말하든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능력, 즉 습득력이 빠르다”고 말했다.
 
강백호의 키는 1m80㎝, 몸무게는 98㎏이다. 파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힘이 센 것도 아니다. 이지풍 kt 트레이너 역시 “고졸 신인선수가 힘이 세면 얼마나 세겠나. 프로에서 수년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박경수나 황재균 등과 비교하면 파워에서 떨어진다”면서 “스트레칭 할 때 보면 팀내에서 가장 유연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이 강할까. 이지풍 코치는 의외로 “멘털이 굉장히 강하다. 대화를 나눠보니 멘털이 다르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2004년부터 프로야구 트레이닝 파트를 책임졌으니 올해로 15년째. 해마다 신인 10명이 들어온다고 치면 지금까지 150명의 신인을 지켜본 이 코치다.
 
그는 “현대 시절 강정호 신인 때도 보고 황재균 신인 때도 봤다. 유한준 신인 때도 봤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어? 얘 봐라?’ 한 선수는 강백호가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몸이 더 좋아지고 힘은 더 세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 또한 그만큼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백호한테는 ‘투수 볼 어때?’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어. 웃긴 놈이야. 그냥 다 칠 만하대.”
 
kt 베테랑 이진영(38)이 더그아웃에서 투덜거린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타자는 앞 타순에서 이미 타격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온 타자에게 “볼 어때?”라고 묻기 마련. ‘공끝이 좋다’든지, ‘어떤 구종(球種)이 까다롭다’든지 그런 얘기가 나와야 참고를 하고 대비할 수 있지만, 강백호는 매번 “칠 만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강백호는 이에 대해 “뒤에 있는 타자한테 굳이 ‘투수 볼 좋다’고 해서 긴장시킬 필요가 없지 않느냐”라며 웃는다.
 
강백호는 “인간이 던지는 볼인데 못 칠 볼은 없다”는 채종범 코치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볼 죽인다”라고 말하는 순간, 타자가 이미 투수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배웠다.
 
시즌 도중 1군으로 올라온 이숭용 타격코치는 왼손 강타자 출신으로 강백호에게 또 다른 살아 있는 경험담과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숭용 코치는 강백호에 대해 “과거 김재현 신인 때 보고 깜짝 놀랐는데 강백호를 보고는 더 놀라고 있다. 심정수나 박병호의 신인 시절도 봤지만 같은 나이로 놓고 보면 이들보다 앞선다”면서 “고졸신인이 레그킥과 힙턴을 통해 홈런을 만들어내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다른 팀에서 다른 볼배합과 볼카운트 싸움으로 들어온다. 경험을 통해 터득해야 할 부분이다. 보통 한 시즌을 치르면 고비가 3~5차례 오는데, 처음에 겁 없이 야구할 때보다 야구를 알아가면서 고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6월 7일 KIA전에서는 프로의 색다른 맛을 봤다. 상대 에이스 양현종이 6회 직구만 8개를 내리 던져 강백호를 삼진으로 잡았기 때문이었다. 강백호는 당시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한다. “신기했다. 압도적이라는 새로운 느낌 받았다. 그래서 ‘왜 못 쳤을까’ 생각을 하느라 잠을 못 잤다. 비디오를 찾아보는데, 내가 잘 치는 장면만 본다. 안 좋은 건 잘 안 본다. 양현종 선배님한테 직구로만 삼진 당한 날도 내가 잘 치는 모습을 보면서 원인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기가 더 작동하는 것은 수비 실수를 할 때다. 특히 시즌 초반 낯선 외야수로 돌면서 실수를 하자 잠을 자지 않고 동영상을 봤다. 강백호는 “내가 수비 못한 장면은 보지 않고 우리 팀 멜 로하스 주니어나 KIA 로저 버나디나, 삼성 박해민 선배님 등 수비 잘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본다. 수비 잘하는 선수들 첫발은 어떻게 스타트하는지, 어떻게 잡는지를 보면 재미있다”고 말했다.
 
최동원·선동열 뛰어넘는 아버지의 열성
강백호는 전형적인 파워히터다. 전문가들은 한 시즌 홈런 40~50개는 거뜬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사진:사진·양광삼

강백호는 전형적인 파워히터다. 전문가들은 한 시즌 홈런 40~50개는 거뜬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사진:사진·양광삼

프로야구 역사상 부친의 열성을 놓고 말하자면 고(故) 최동원과 선동열의 부친이 회자되곤 한다.
 
최동원의 부친 고 최윤식씨는 아들이 야구선수의 길로 들어서자 부산의 집 마당에 마운드를 만들고 그물을 쳐 놓았다. 스트라이크 존을 세워주고 연습투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 야간경기에 익숙하도록 마운드와 스트라이크존 위에 100W 전구 3개씩을 켜기도 했다. 부산에 특수 TV 안테나를 설치해 저녁 8시부터 일본 프로야구를 선명한 화면으로 보여주면서 야구 공부를 하도록 하기도 했다.
 
선동열의 부친 고 선판규씨 역시 집에 조명시설을 갖춘 투구 연습장을 만들었고, 전국을 돌며 몸에 좋다는 보약이란 보약은 다 구해서 아들에게 먹였다. 아들의 러닝훈련을 독려하기 위해 자신은 자전거를 타고 무등산 굽이길을 달리기도 했다. 이런 부성애가 불세출의 투수들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러나 강백호의 부친 강창열씨도 최동원과 선동열의 부친 못지않았다. 강씨는 초등학교 때 야구선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사회인야구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며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쓰는 야구 마니아다.
 
벽 죄다 허물고 아파트 안에서 캐치볼도
서울고 시절 청소년국가대표로 발탁돼 태극마크를 단 강백호.

서울고 시절 청소년국가대표로 발탁돼 태극마크를 단 강백호.

강씨에 따르면 강백호는 팔삭둥이로 태어났다. “아내가 백호를 가진 지 7개월째부터 뱃속에서 나오려고 하다 양수가 터지면서 임신 8개월째에 세상에 태어났어요. 오장육부가 완성되지 않은 데다 황달기도 있어서 한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죠. 그런데 신기한 건 몸무게가 정상적으로 태어난 웬만한 애들보다 무거운 3.4㎏였다는 점이에요.”
 
그 이후엔 한 번도 건강 문제로 속 썩인 적 없이 튼튼하게 자랐다. 강씨 부부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들을 돌볼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하루에 9군데 학원을 보낼 때도 있었다. 태권도·수영·컴퓨터·플루트…. 아들은 전교에서 1~2등을 할 만큼 공부도 잘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와 사회인야구를 함께하던 성남중 박성범 감독이 강백호의 야구 재능을 알아보고는 “야구 시키자”고 강씨를 설득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친구인 도신초등학교 최수병 감독에게 연락을 취했다. 강백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선수의 길에 들어선 계기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아들의 뒷바라지가 시작됐다. 김포 집에서 대림동 도신초등학교까지는 출근길에 등교 시간만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차가 막히기 전에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아들을 깨워 출발해야 했다. 너무나 고된 생활이 계속 이어지자 3학년 2학기 때 인천으로 전학을 갔다. 이 무렵 강씨는 사업이 부도나면서 치킨집을 하게 됐다.
 
“치킨집 옆에 그물을 쳐놓았어요. 아들은 그때부터 성인용 나무배트를 휘둘렀죠. 밤 12시까지 방망이를 돌렸어요. 공을 때리는 법, 타이밍 맞추는 법을 익혔죠. 타이어에 공을 매달아 10초에 10개씩 때리는 훈련을 계속 반복했어요.” 강백호는 그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야구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 힘든 줄도 몰랐어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버지는 다시 회상에 잠긴다. “기둥에다 고무줄이 달린 공을 묶어 놓고 1분에 30개 이상 치게 하기도 했어요. 공을 치면 고무줄에 매달린 공이 기둥을 타고 감기다가 다시 풀리면서 돌죠. 그러면 또 때리고…. 항상 같은 포인트에서 때리게 했죠. 친구들은 몇 개 못 쳐서 나가떨어지는데, 백호는 숙달이 되면서 1분에 30~40개는 자연스럽게 치는 수준이 됐어요. 그만큼 노력을 했죠.”
 
강백호 역시 야구를 좋아하면서 힘든 훈련에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번은 목동구장에 데려가 고교야구를 보게 했어요. 그런데 1회부터 9회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놀고 있더라고요. 처음엔 휴대폰으로 장난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 가서 저도 놀랐죠. 경기 내용과 선수 장단점을 다 적어 놓았더라니까요.”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정연주(55)씨 역시 아들을 야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상대 투수가 왼손잡이면 경기 전날에 왼손잡이인 엄마에게 솜으로 만든 공을 거실에서 던져 달라고 했어요. 엄마는 미대를 나와서 운동과는 관련이 없었는데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투수가 되는 거죠. 5m 정도 앞에서 솜 공을 던지면 왼손투수의 공 각도와 타이밍을 잡는 훈련을 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과 야구 훈련을 하기 위해 아파트 리모델링을 한 것이었다. 강씨는 강백호가 중학교에 올라가지 복도가 긴 48평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는 거실과 방 벽을 모두 허무는 확장공사를 했다. 현관부터 안방 벽까지 약 15m. 아들과 매일 집에서 캐치볼을 한 것이었다. 키보다 큰 전신 거울도 집에 설치해 언제든 스윙하는 자세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때로 스윙이 맘에 들지 않으면 강백호는 어머니에게 “사진 찍어달라”, “동영상 찍어달라”고 요구한 뒤 타격폼을 점검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괜히 괴물 신인이 탄생한 것은 아닌 듯하다. 천부적인 자질에 노력, 거기에 부모의 열성이 더해지면서 ‘괴물 신인’이 우리에게 다가온 듯하다. 현재의 레그킥도 초등학교 2학년 야구 시작할 때부터 익힌 것이라는 걸 보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kt 간판타자 유한준(37)은 강백호의 타격에 대해 “이 친구는 프로에 들어올 때부터 타격에서 자기 것을 갖고 왔다. 캠프부터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시즌 치르면서 확실히 느꼈다”면서 “선배들한테도 잘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들한테도 와서 물어보고, 수비 같은 걸 많이 물어본다. 게임을 많이 나가봐야 아는 거니까. 나도 한 번씩 강백호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쳤니? 어떤 마음으로 쳤니?’라고. 선배들도 타격에 대해서는 이제 강백호를 다 인정한다”며 웃었다.
 
그러나 강백호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의 모바일 메신저에는 ‘고잉 하이어… 방향성’이라고 적혀 있다. 그는 이에 대해 “고등학교 때부터 좌우명”이라고 소개하면서 “만족은 없다. 항상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시즌 몇 차례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었다. 베테랑들도 한 시즌을 치르면 적어도 3~5차례 겪는 일이다. 강백호는 “매 경기 뛰다 보니 항상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첫해 성적에 대한 목표는 구체적으로 안 잡고 들어왔어요. 올해는 그냥 내 자신이 갖고 있는 걸 가지고 부딪쳐보기로 했습니다. 올해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내년에 부족한 점이나 채워나갈 점 등을 어느 정도 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그것을 찾는 시즌입니다. 앞으로 홈런타자를 향해 한 단계씩 올라가고 싶어요.”
 
[박스기사] 역대 괴물신인이 말하는 괴물 루키 강백호
양준혁: 1993년 신인왕. 타율 0.341(1위), 23홈런(2위), 90타점(2위), 장타율 0.598(1위), 출루율0.436(1위)
 
“지난해 이정후, 올해 강백호라는 좋은 재목이 나타나 기쁘다. 특히 강백호는 거포라서 매력이 있다. 박병호처럼 성장할 대형 타자다. 타구에 힘 전달을 잘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 시즌 홈런 30개는 쉽게 칠 것이다. 타격 시 몸이 벌떡벌떡 일어서는 것만 잡아주면 40~50개까지도 가능하다.”
 
김재현: 1994년 신인. 고졸신인 역대 최다 21홈런. 고졸신인 최초 20-20 클럽. 타율 0.289, 21홈런(3위), 80타점(2위)
 
“타석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감이 있다. 머리가 상당히 스마트한 친구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와는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 강백호가 더 힘이 강하다. 팀이 잘하면 강백호의 성장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다. 계속 하위권에 있으면 상대 에이스를 더 많이 상대해야만 한다. 아무튼 좋은 후배가 들어와 내 기록을 깬다면 기쁜 일이다.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다.”
 
박재홍: 1996년 신인왕. 역대 최초 30-30 클럽. 타율 0.295(9위), 30홈런(1위), 108타점(1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이 정도 몸에 테크닉까지 갖춘 게 대단한 거다. 성장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현역 시절 잘 못한 부분, 팬 서비스나 언론 관계를 잘하면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선수가 될 것이다. 스윙 자체가 부드럽다. 오히려 팀 내 다른 동료들이나 심지어 선배들도 보고 배울 부분이 많다. 특히 타이밍을 잡는 중심이동이 좋다. 공부는 나이가 많고 적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 글:이재국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중심’ 전문패널 keystone71@naver.com / 사진: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eon.mi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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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