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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뒹굴뒹굴하며 읽는 책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1)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편집자> 
 
기자 출신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더위를 이기는 건 달력, 더위를 견디는 건 책 읽기.”
지극히 사적인 독서일기를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무더위라도 시간이 흐르면 잦아들기 마련이고, 요즘 말로 가성비를 따지자면 더위를 잊는데 책 읽기만 한 것이 없다고 믿어서였다.
 
한데 자고 일어나니 상황이 일변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삽상한 바람,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듯한 매미 울음이 쏟아지는 것이 영락없는 끝물 더위를 알리는 모양새다. 해서 처음 시작하는 책을 바꾸기로 했다.
 
책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책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이런 구절을 만날 수 있는 『나를 부르는 숲』(홍은책 옮김, 동아일보사)이 바로 그 책이다. 지은이는 미국 태생으로 영국에서 기자 생활을 한 빌 브라이슨. 
 
맞다. 10년도 더 전인 2003년 베스트셀러이자 그해 각종 매체의 ‘올해의 책’에 단골로 올랐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덕환 옮김, 까치)를 쓴 사람이다. 그 책이 계기가 되었는지 이후 빌 브라이슨의 책은 20종 넘게 번역, 출간됐다. 가히 생존 저자 중 가장 많은 책이 번역된 사례지 싶다.
 
듣기 좋은 말로 출판을 문화산업이라 하지만 출판사 대표가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출판하는 것이 아닌 이상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퉈 낸다는 것은 그를 좋아하는 국내 독자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겠다. 이 책은 2002년에 나왔는데-올해 까치 출판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개역판이 나왔다-내가 알기론 국내에 소개된 그의 첫 책이다.
 
완주에 실패한 ‘아팔래치아 트레일’
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44살 먹은 남자 둘-지은이와 그 어린 시절 친구인 마약쟁이였던 막노동자-이 ‘아팔래치아 트레일’이란 3360㎞의 산길을 걷는 이야기다. 스포일러가 될 것을 살짝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완주에 성공하지 못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종주기(縱走記)는 아니고 좌충우돌 도전기다. 그러니 일종의 실패보고서다.
 
책『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 빌 브라이슨. [사진 flickr(The National Churches Trust)]

책『나를 부르는 숲』,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저자 빌 브라이슨. [사진 flickr(The National Churches Trust)]

 
그 으뜸 미덕은 웃음. 조금 과장하면 이 책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가는 쿡쿡 웃는 바람에 실없는 사람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산에서 흑곰을 만나면 시끄러운 소리를 내라거나 ‘곰을 향해 돌진하라’ 고 일러주는 안내 책자에 “그래요, 교수님. 당신부터 해봐요”라 토를 달고, 산장의 더러운 침구를 묘사하면서 “매트리스에 묻은 얼룩을 보니, 전에 이 침대를 쓴 사람은 오줌이 새어 나온 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방뇨의 기쁨에 젖어 사는 인물처럼 보였다. 베개에도 그런 기쁨이 담뿍 표현돼 있었다”고 하는 식이다.
 
주메뉴는 웃음, 반찬은 통찰
글로 사람을 웃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책 곳곳에서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읽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솜씨가 워낙 탁월해 유머작가라는 지은이 소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가 역사, 과학 등 여러 방면에서 재미와 의미를 겸비한 책을 여럿 냈다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다. 웃음이, 빌 브라이슨이 차린 식탁의 주메뉴라면 영양가 있는 ‘반찬’ 즉 제법 진지한 통찰도 곳곳에서 번득인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스스로를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하는 것, 그래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같은 구절이 그렇다.
 
물론 대부분의 도보 여행기는 성찰과 깨달음 혹은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장작불에 구운 치킨처럼 ‘기름기’ 쫙 뺀 트레일 도전기가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긴 하다. 하지만 어떠랴! 보통사람에겐 완주보다는 도전이 의미 있다. 게다가 위트와 풍자, 인문학적 지식이 잘 버무려진 빌 브라이슨의 책도 맛있는 것을. 뒹굴뒹굴하며 더위를 잊는 데는 이 책이 한결 유용한 것을.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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