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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퍼스펙티브] 북한 비핵화 없는 한반도 평화는 헛된 꿈

한반도 평화체제
미국 핵 과학자 단체는 올해 1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를 지난해보다 30초 앞당겨 11시 58분으로 설정했다. 역대 가장 위험한 상황이었다. 북핵 능력 고도화에 따른 핵전쟁 위험 증가가 주요 이유였다. 이런 점에서 올 초 시작된 북핵 교섭은 국제 정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남북, 북·미, 북·중 간 총 6차례의 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숨 가쁜 외교전에도 비핵화는 아직 원론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과거 비핵화 과정에서 악마는 이행에 있었는데, 이행의 기본 토대조차 합의하지 못한 점은 한반도 핵시계의 위험 수준을 보여준다. 우리가 당면한 3차 핵위기는 북한이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핵 개발 단계였던 1·2차 핵위기와는 본질에서 다르다. 지난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미국 군사 옵션 가능성으로 한반도의 군사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도 이를 반영한다.
 
비핵화 교섭 장기화 우려 커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북한은 미국의 대북 ‘최대 압박’ 전략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자 올 초 평화 공세로 전환, 남북관계 개선, 북·미 정상회담, 북·중 관계 회복을 통해 강화된 입장에서 대미 핵 교섭에 임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미국은 당초 원했던 단기간 내 포괄적 폐기를 상징했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로 교섭 목표를 하향하고 시한 설정도 없다는 식으로 뒷걸음쳤다. 반면 북·중이 원했던 쌍중단(핵·미사일 활동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이 사실상 받아들여지고, ‘단계별 동시 행동’을 통해 단골 협상 수단인 ‘잘게 쪼개기’, ‘벼랑 끝’ 전술이 먹혀들 소지를 높였다. 대북 압박의 결실은커녕 교섭 장기화의 우려만 커진 것이 냉정한 평가다.
 
이 과정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연동되게 되었다. 제네바합의·9·19 공동선언에서 평화체제 구축은 비핵화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에서 다루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4·27 판문점 공동선언과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에서는 양자가 병행하도록 바뀌었다. 오히려 합의 순서상으로는 비핵화보다 평화체제 구축이 앞서고 있다.
 
이는 지난 7개월간 미국 내 정치적 제약, 미·중 관계 악화, 중국의 대북 후원 복원, 평화 공세에 의한 북한 이미지 개선, 한국의 대북 관계 조기 개선 희망 등이 복합 작용하여 북핵 교섭의 역학 관계가 북한에 유리하게 변화된 데 기인한다. 이제 평화체제 구축은 대북 교섭의 중요한 지렛대가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로서는 비핵화를 놓치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완성해야 한다.
 
종전선언과 비핵화 조치 연계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 한반도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며 이번 주로 예정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을 전격 취소시켰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평화체제 구축은 현재 기술적으로 전쟁 상태인 정전체제를 끝내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확보하는 작업으로 크게 종전, 평화협정, 군비통제·군축을 통한 상호 위협 감소가 구성요소다. 종전과 평화협정은 시기가 다를 경우 잠정 기간 평화보장체제의 부재로 인한 법적 공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종전은 평화협정에서 함께 다루는 것이 합당하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 말까지 추진하려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성격이더라도 사실상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종전선언을 비핵화 교섭 수단으로 추진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 한·미 이견을 해소하고 평화협정 발효까지 정전체제의 효력 유지를 분명히 하고, 선언 후 북한과 한국 내 정치 공세를 차단해야 한다. 한편 군비통제·군축은 별도의 합의 또는 평화협정 내에 이를 다룰 기구를 설치하는 선에서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요소는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체결이라 할 수 있다.
 
평화협정을 설계하는 데는 평화협정의 체결 주체와 형식이 중요하다. 한국전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내전이지만 유엔군과 중국의 참전으로 국제전으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정전협정의 체결 주체는 유엔사령부·한국·북한·중국이다. 한국군 대표가 서명하지 않았으므로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북한 주장은 대미 직접 교섭을 위한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당시 작전지휘권을 이전받은 유엔군 사령관이 한국을 대신하여 서명하였을 뿐이다.
 
한국은 평화협정 주도해야
 
국제법상 정전협정은 교전 당사국 사령관들 간에 체결하며, 연합군은 참전국을 대표한 연합군사령관이 서명한다. 또 한국이 정전협정에 따라 열린 1954년 제네바회의 및 이후 상당 기간 군사정전위에 참석한 데 대해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사실도 추후 관행으로 한국의 당사자 자격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평화협정의 주체도 원칙적으로는 한국과 참전 16개국, 북한·중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교가 이루어진 한·중, 미국·프랑스 제외 참전 14개국과 북한, 참전 16개국과 중국은 교전 상태가 이미 종식되었으므로, 평화협정은 한·미와 북한 간에 체결하여야 한다.
 
실제 당사자 문제는 협정 형식과 직결된다. 한반도 문제의 한국화, 북한의 한국 배제 방지 및 통일 과정의 대외 관리 차원에서 ‘2+2/+α’ 형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협정체제를 본 협정과 부속의정서 I·II로 나누어 본협정은 남북한, 부속의정서 I은 직접 보장자로서 미·중, 부속의정서 II는 간접 보장자로서 일·러/유엔·EU·ASEAN까지 참여하는 방식이다.
 
부속의정서 II는 주변국의 영향력을 중화시키는 장점과 국제화로 외부 개입 부담이 늘어나는 단점을 교량하여서 일·러로 제한하거나 아예 없앨 수 있다. 남북 간 협정은 우리 헌법과 조화 문제가 있지만, 남북 관계를 국가 관계가 아닌 특수한 잠정 관계로 규정하여 피할 수 있고, 이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상당 부분 합의가 되어 있어 교섭이 쉬운 장점이 있다.  
 
진정한 평화는 군사 능력 뒷받침돼야
 
평화협정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①우호 관계, ②무력 사용·침략의 금지, ③분쟁의 평화적 해결, ④내정 불간섭, ⑤기존 육상·해상 경계의 존중, ⑥대량파괴 무기 금지, ⑦군비 통제·군축 기구, ⑧기존 조약의 효력 존중, ⑨남북 화해·협력과 관리 체제, ⑩최종 조항 등을 담아야 할 것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유엔사 해체 문제가 대두할 것이다. 유엔사는 유엔군이 헌장 43조의 특별협정에 의한 유엔 자체의 군대가 아니라 안보리 결의 84호상 집단 자위권 행사를 허가받은 미국 주도 16개 참전국 군대이므로 안보리 보조기관으로 보기 어렵다. 따라서 해체는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지 않으며 한미 협의와 참전국 동의로 결정하고 이를 안보리에 통고하는 방식으로 충분하다. 다만 유엔사 존재는 1951년 애치슨-요시다 교환 공문과 1954년 주일유엔군 지위협정에 따라 부여된 주일미군 7개 기지의 사용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해체할 경우 사전에 미·일 간에 이를 대체할 합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평화는 평화협정이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외부 군사 위협에 대응할 군사적 억지·방어 능력이 필수다. 역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 전 독일·소련이 주변국들과 체결한 불가침조약·중립화조약이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고, 가깝게는 베트남전을 종결한 1973년 파리평화협정도 1975년 북베트남의 무력 통일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능력이 뒷받침하지 않는 합의는 아무런 보장이 될 수 없다. 한반도 평화협정도 철저한 비핵화와 확고한 안보 태세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할 이유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한 한국은 생존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긴밀한 한·미 사전 조율 필수
 
한반도 안보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동북아 안보와 밀접히 관련된다. 한반도 평화의 구성 요소가 다양하고 동북아와 연관된 만큼 이를 포괄하는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와 비슷한 ‘한반도평화안보회의’를 동북아 국가들이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비확산·안보·정치외교·경제 4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하여 북핵 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 개혁개방 지원, 역내 신뢰 구축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도록 한다. 전체 회의에는 모든 당사국, 분과위원회는 사안별 직접 관련 당사자만이 참가하도록 함으로써 포용성과 효율성의 조화, 참여와 부담의 분산 등 이점이 있고 동북아 전략 환경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으며, 북·미 협상이 자리를 잡으면 이런 구상도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어도 동북아 세력 전환으로 주변국의 군사력이 강화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대 주변국 안보 수요는 늘어날 공산이 크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유지에 힘써야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나타나듯이 중장기적으로 주한미군의 감축·철군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 차원에서 우리 가치·체제·문화를 외부 간섭으로부터 지키기에 충분한 자체 군사력을 확보할 고슴도치 형 안보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사실상 핵무장 국가화를 막아야 할 우리로서는 시간 싸움에서 절대 유리하지 않다. 우리로선 비핵화를 주장하는 미국과 선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을 잘 결합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드는 일을 주도해야 한다. 평화체제 구축 문제도 교섭이 시작될 때 선 제안이 중요한 만큼, 한·미 간의 긴밀한 사전 조율을 통한 준비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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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