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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여왕’ 정혜림, 삼세번 실패는 없다

허들 국가대표 정혜림이 2010년 광저우 대회,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어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3번 도전 끝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혜림(오른쪽)이 결승에서 중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와 13초20의 기록으로 골인하고 있다.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허들 국가대표 정혜림이 2010년 광저우 대회,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어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3번 도전 끝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혜림(오른쪽)이 결승에서 중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와 13초20의 기록으로 골인하고 있다.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지난 7일 충북 진천선수촌.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을 식히는 소나기가 내렸다. 장대 같은 빗속에 여자 육상 선수 한 명이 외롭게 트랙에 섰다. 흠뻑 젖은 트랙의 출발선에 웅크렸던 그는 마치 용수철이 튀어나가듯 스타트 블럭을 차고 나갔다. 힘차면서도 유연하게 허들을 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치타의 질주처럼 보였다. 굵은 빗줄기를 뚫고 달리는 그의 모습에서 강한 의지도 엿보였다. 그는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다.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자카르타에서 내 생애 최고의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허들 100m 결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 정혜림 선수가 허들을 넘고 있다.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허들 100m 결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 정혜림 선수가 허들을 넘고 있다.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꿈은 현실이 됐다.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100m 허들 결승에서 그는 10개의 바를 넘고 결승선을 통과하는데 13초20이 걸렸다. 레이스 중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 2위 에밀라 노바(인도네시아·13초33)를 0.13초 차로 누른 압도적인 레이스였다. 그는 수년간 그려왔던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태극기를 펼쳐보이면서 활짝 웃어보였다. 두 차례 아시안게임 무관의 설움을 딛고, 세 번 도전 끝에 정상에 선 ‘허들 공주’ 정혜림(31·광주광역시청)이 ‘아시아의 허들 여왕’으로 오르는 순간이었다. 2014년 인천 대회에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던 한국 육상은 정혜림 덕에 8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다.
 
정혜림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장거리 선수로 뛰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피드와 유연성을 눈여겨 본 코치의 권유로 허들로 전향했다. 곧바로 국내 육상 여자 허들 부문 기대주가 된 정혜림은 미모도 뛰어나 20대 초반부터 ‘허들 공주’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그에게 아시안게임은 아픈 기억이 많은 대회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예선 탈락, 2014년 인천 대회에서는 4위에 그쳤다. 특히 인천 대회에서는 레이스 도중 허들에 두 차례 걸리는 바람에 후반 속도가 처져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다. 경기 직후 절망감 속에 선수촌을 나갔고 한동안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레이스 막판에 무너진 게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피니시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됐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허들 공주’ 정혜림. 30대 초반 나이에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허들 공주’ 정혜림. 30대 초반 나이에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 획득을 노리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혜림은 “세계 1위라도 중간에 걸려서 넘어질 수 있는 게 허들이다. 그만큼 예측불허다. 허들 한 대만 잘 넘어서 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잘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깔끔한 스타트 못지않게 자신이 원하던 ‘멋진 피니시’를 위해 정혜림은 4년 동안 기술을 갈고 닦았다. 힘을 키우기 위해 근력 운동을 꾸준하게 한 건 기본이었다. 2016년 광주광역시청으로 팀을 옮겨 남자 허들 1인자였던 박태경(38) 코치를 만나면서 레이스 후반 가속을 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허들을 넘으면서 생기는 체공 시간이 중요한데 그 리듬감을 찾으려고 하루에 수 십 번씩 달렸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자신보다 기록이 좋은 일본 선수들과 실전 훈련을 하면서 경험도 쌓았다. 그 덕에 기록이 좋아졌다. 2016년 6월 고성통일 전국실업대회에선 역대 한국 선수 이 종목 2위 기록(13초04)을 세웠고, 지난해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선 13초16으로 우승했다. 그는 “서른이 돼서야 허들에 새롭게 눈을 떴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허들 100m 결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 정혜림 선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여자 허들 100m 결승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한국 정혜림 선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자카르타=김성룡 기자

 
“종합 대회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게 단점”이라고 정혜림은 생각한다. 그래서 심리적인 부담감부터 털어내려고 했다. 그는 “다른 생각보단 그저 레이스에서 내가 해야 할 것만 하자는 마음만 갖고 출발선에 선다. 경험이 쌓이면서 부담이나 압박감은 확 줄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4년간 연마한 기술 그대로 정혜림은 예선부터 순탄하게 허들을 한 대씩 넘었다. 25일 예선에서 13초17을 기록해 2위 에밀라 노바(13초40)에 0.23초나 더 앞섰다. 그리고 결승에선 레이스 중반부터 치고 나섰고, 피니시도 깔끔하게 했다.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던 그의 레이스는 화려한 ‘허들 여왕 대관식’으로 멋지게 장식됐다. 정혜림의 남은 목표는 한국 첫 이 종목 12초대 진입이다.  
 
자카르타=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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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