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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혁신을 일군 아시아의 기업인(18)

인도를 대표하는 IT 기업 위프로의 아짐 프렘지 회장은 인도의 ‘IT 차르’로 불린다. 프렘지 회장은 위프로를 통해 글로벌 경제계를 호령하는 아시아 경영인이다.
 
인도를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인 위프로(Wipro Limited)의 아짐 하심 프렘지(73) 회장은 인도의 ‘IT(정보기술) 차르’로 불린다. 위프로는 세계 3위의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회사다. 기업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주는 IT 서비스 업체다. 인도를 대표하는 산업이기도 하다. 프렘지 회장은 이 회사를 통해 인도의 IT업계, 나아가 글로벌 경제계를 호령하는 아시아 경영인이다.
 
인도의 소프트웨어 산업 수준과 개발 인력의 능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린이들이 구구단 대신 18단을 외운다는 글로벌 수학 강국 인도의 능력이 보석처럼 빛나는 분야가 소프트웨어 개발이다. 인도는 수학의 역사에서 ‘0’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창안한 나라다. 그런 전통의 수학 강국답게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도 세계적인 강국이다.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두 번 선정
그러한 소프트웨어 개발과 산업의 중심에 프렘지 회장이 자리 잡고 있다. IT 산업에서 프렘지 회장이 가진 엄청난 영향력과 그가 일생에 걸쳐 이룬 업적 덕분이다. 프렘지 회장은 지난 40년간 IT 분야에서 일하며 사업을 키워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글로벌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는 2010년 프렘지 회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0명’에 포함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전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프레지 회장을 두 차례나 넣었다.
 
포브스 전 세계 부호 실시간 재산 보유 현황에 따르면 프렘지 회장의 재산은 2018년 7월 16일 현재 178억 달러로 나타났다. 그는 포브스 2018년 전 세계 부자 명단에서 58위를 차지했으며 테크 분야에선 15위다. 인도에선 재산 순위 2위의 대부호다. 2011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61위까지 올라갔다.
 
프렘지 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했지만 1966년 부친 무함마드 프렘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했다. 인도 경영인 가운데는 이런 사연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을 장남이나 가장 능력이 뛰어난 아들이 물려받은 뒤 이를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변화시켜 세계적 규모와 수준, 명성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가족 경영 성공 신화’다.
 
 
‘버마의 쌀 왕’이라는 부친 기업 물려받아
프렘지 회장이 부친의 부음을 받고 황급히 귀국해 물려받은 회사는 요리용 코코넛 기름 생산업체였다. 그의 선친 무함마드 하심 프렘지는 인도 뭄바이의 시아파 모슬렘 집안 출신이었다. 프렘지 회장도 뭄바이에서 태어났다. 무함마드는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였다. 인도 식민 통치 아래에서 버마(현 미얀마)에 건너가 쌀 교역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버마의 쌀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니 사업에서 얼마나 성공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함마드의 회사는 나중에 이름을 ‘서인도 야자정제유(Western India Palm Refined Oils Limited)’로 바꾸었다. 여전히 전통 기업 느낌이 강한 이 이름의 약자가 바로 위프로(WIPRO)다. 위프로라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의 이름은 바로 야자유를 짜서 정제하던 전통산업 업체의 머리글자에서 나왔다. 프렘지 회장이 물려받은 선친의 사업을 관리하고 유지만 했다면 오늘날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스탠퍼드를 다니다 황급히 귀국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업 확장은 결코 중단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아버지의 전통산업 기업을 오늘날 세계 굴지의 소프트웨어 외주회사로 키웠다.
 
사실 무함마드의 아들 아짐은 프렘지 가문의 희망이었다. 그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1960년대 초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전공은 공학이었다. 인도에는 가장 성적이 뛰어난 남학생은 공대로 진학하는 전통이 있다. 근현대 과학기술이 뒤져 서양세력의 식민지가 됐다고 생각해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이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번영을 이끄는 길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그래서 독립 이후 최우등 남학생은 공대, 여학생은 의대로 진학하는 것이 사회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인도 대통령을 지낸 압둘 칼람은 “나는 식민지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랄 때부터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두면서 강력한 인도를 꿈꿔왔다”고 말했다. 공학을 전공한 그는 인도의 전투기와 미사일, 핵 개발에 관여했다. 인도의 초대 총리인 네루다 간디는 1947년 독립 직후 인도공과대학(IIT)을 설립했으며, IIT는 지금 인도 전역에 15개 캠퍼스를 둔 이 나라 최고의 대학으로 성장했다. IIT에 낙방하고 미국의 MIT에 붙었다는 학생이 수두룩하다는 말이 돌 정도로 IIT는 인도에서 입학하기 어려운 대학으로 유명하다. 졸업은 더욱 어렵다. 그러니 아짐 프렘지 회장이 공학 전공으로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유학했다는 이야기는 그가 뛰어난 학생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스탠퍼드 생활은 길지 않았다. 귀국해 선친의 사업을 물려받은 21살의 프렘지 회장은 우선 사업 다각화에 착수했다. 제빵용 유지 생산을 시도한 것이 작은 시작이었다. 그런 다음 인도가 다양한 종교를 가진 국민으로 이뤄졌다는 데 착안했다. 인도를 흔히 힌두교의 나라로 여기지만 이는 거대 국가 인도를 단순하게 생각한 오해다. 물론 인도는 힌두교도(80.46%)가 다수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모슬렘(13.43%)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인도의 모슬렘 인구는 1억6000만~1억7000만 명으로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기독교(2.34%), 시크교(1.87%), 불교(0.77%), 자이나교(0.41%) 등 주요 종교와 함께 정령숭배(0.72%)를 비롯한 수많은 소수 종교가 존재한다. 다양한 종교 신자가 있는 만큼 다양한 종교적 금기가 존재하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 용품도 각각이었다.
 
 
전통산업에서 하이테크로 전환해 성공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인 콜카타에 있는 위프로의 KDC 캠퍼스 빌딩 모습. / 사진:위키미디어

인도 서벵골주의 주도인 콜카타에 있는 위프로의 KDC 캠퍼스 빌딩 모습. / 사진:위키미디어

종교적 금기는 제품 개발과 교역에서 중요한 변수다. 인도의 소수 종교인 모슬렘 집안에서 태어나 주변의 다양한 종교 신자들과 접하고 미국 유학으로 넓은 세계를 목격했던 아짐 프렘지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상품 개발에 연결했다. 식용유 업체는 종교별 금기를 고려한 세면도구 제작업체로 확대됐다. 사업이 날로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확장도 그의 사업 인생에선 서막에 불과했다. 그는 1980년대에 들어 인생의 대전환기를 맞았다. 그는 당시 떠오른 신산업인 IT산업의 중요성에 일찍이 눈떴다. 그는 이에 앞서 1970년대 말 사업에서 소규모 전환을 시도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전통산업으로 시작한 그의 사업이 하이테크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좌파 정권 때문이었다. 1977년 자급자족을 강조한 사회주의 정당 바라티야 자나타당(인민당으로 번역)이 집권하면서 IBM과 코카콜라, 인텔 등 다국적 기업을 추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기업은 인도에서 영업도, 생산도 하지 못하게 됐다. 1980년까지 계속된 이 시대착오적인 좌파 정권의 외국 기업 배척은 인도 사회에 충격을 가져왔다. 특히 미국의 사무기기 업체로 컴퓨터 개발에 앞장섰던 IBM의 추방은 인도에 큰 공백을 가져왔다. 이는 동시에 인도 기업에 기회이기도 했다. 미국 회사가 떠나도 인도 경제계에서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 사무기기는 여전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프렘지 회장은 회사 이름을 위프로로 바꾸고 미국의 기술업체인 센티넬 컴퓨터(Sentinel Computer Corporation)와 손잡고 미니컴퓨터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프렘지 회장은 1980년 대 들어 기술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사업의 핵심을 비누에서 소프트웨어로 완전히 바꾸었다.
 
업종만 바꾸었다고 그가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그는 소비자 서비스 개념이 부족했던 1980년대 인도에서 서비스 우선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다. 판매 사원 1명당 애프터서비스(AS) 직원 3명을 붙였다. 소비자의 불만이 경쟁사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남이 걷지 않았던 길을 걸은 덕분에 사업은 성공 가도를 걸었다.
 
그는 1990년대에 재도약을 했다. 소프트웨어 아웃소싱으로 업종을 다시 한번 전환했다. PC를 중심으로 IT 산업이 발달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프렘지 회장이 소프트웨어 산업에 뛰어든 배경이다. 하드웨어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보다 인도가 비교우위를 가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승부를 건 것이다. 소프트웨어도 버깅이 많아 고객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 부문이다. 그는 여기서도 강력한 AS망을 바탕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앞세워 경쟁사를 물리쳤다. 위프로는 IT 분야 소프트웨어 아웃소싱 업무에서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했다. 매출이 연평균 40% 이상 성장했을 정도다. 현재는 디지털 전략, 비즈니스 컨설팅 등 폭넓은 I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올해 매출은 84억 달러로 예상된다. 시가총액은 116억 달러로 세계 3위의 IT 서비스 업체로 자리 잡았다. 프렘지의 경영 철학인 ‘고객만족’을 앞세운 것이 주효했다.
 
위프로는 인도의 두뇌들이 몰려 있는 ‘인도의 실리콘밸리’에서도 가장 혁신을 주도해온 중심 기업으로 통한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외주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렘지 회장의 사전에 ‘안주’라는 단어는 없다. 프렘지 회장의 위프로는 실리콘밸리에 연구센터를 두고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개발해왔다. 끊임없이 신생 스타트업 업체와 협력하면서 새로운 영역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해왔다. 창업한 지 꽤 되는 위프로가 여전히 인도에서 젊고 활기차며, 창의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기업으로 통하는 이유다.
 
 
‘고객만족’ 앞세워 위프로 성장시켜
2014년 10월 프렘지 회장(왼쪽)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모디 총리 공식 계정

2014년 10월 프렘지 회장(왼쪽)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모디 총리 공식 계정

위프로가 인도 서남부 카르나타카(Karnataka)주의 주도인 벵갈루루(Bengaluru)에 자리 잡은 IT기업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르나타카주는 인도 서남부 해안에서 내륙의 데칸고원에 이르는 거대한 주로, 인구가 6110만 명에 이른다. 이 지역에는 고대 인더스 문명을 이뤘다가 아리안족에 쫓겨 데칸고원으로 이주한 드라비다족의 후손이 주로 거주한다. 드라비다계 언어인 칸나다어는 인도의 공식 언어 22개 가운데 하나이며 카르나타카주의 공식 언어다. 카르나타카주의 주민은 칸나다어(64.8%) 사용자가 가장 많으며 힌디어(9.7%), 텔루구어(8.3%), 마라티어(4.0%), 타밀어(3.8%), 투루어(3.4%) 등을 사용한다. 다문화 다종교 사회 인도답게 힌두교도(83%), 이슬람교도(11%), 기독교도(4%), 자이나교도(0.8%)가 공존한다. 이에 따라 지식인 사회나 관청, 기업, 연구소, 대학 등에선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적이다. 카르나타카주의 주도는 데칸고원에 자리 잡은 벵갈루루다. 이 도시는 현지에서 사용하는 칸나다어로는 벵갈루루이지만 영국식 방갈로르(Bangalore)나 미국식 뱅걸로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사회에 더욱 잘 알려졌다. 인구가 1240만 명에 이르는 ‘메가 도시’다.
 
벵갈루루라는 도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도의 실리콘밸리’다. 벵갈루루는 인도 전체 IT기업의 80%에 해당하는 2100여 개 관련 업체가 몰려 있으니 이런 별명이 붙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인도 전체 전자제품 수출의 33%를 맡고 있기도 하다. 인도 최대의 IT산업 집약 도시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이 도시가 2020년 무렵에는 실리콘밸리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IT 클러스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이 도시의 IT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현재 약 500만 개에 이르며 2020년에는 종사자가 8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 경제의 성장 엔진이기도 하다.
 
이렇게 IT업체가 몰린 가장 큰 원인은 이 도시에 IT 전문 인력,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IT산업이나 우주항공산업, 정밀기계 산업에는 연구와 개발, 생산 시설이나 인력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인력도 상당히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모두 기업 내부에서 맡으면 고용과 비용 부담이 지나치게 커진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첨단산업 분야는 소프트웨어의 상당수를 외주에 의존한다. 대기업은 제품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필요한 프로그램 제작을 전문 소프트웨어 업체에 아웃소싱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위프로를 위시해 인도 기업 중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고 현재 100억 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는 IT기업 인포시스(Infosys)가 이 도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다. IBM, 인텔(Intel), HP, 인텔·오라클, 시스코를 비롯한 글로벌 IT 공룡들도 줄줄이 연구센터나 자회사, 지사를 이 도시에서 운영 중이다. 현재 세계 3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반도체와 집적회로로 유명한 미국 IT기업 TI(Texas Instruments)가 일찍이 1985년에 이 도시에 칩 설계 센터를 세운 것이 효시다. 그 뒤 글로벌 IT기업이 이 도시에 연구소와 관련 업체를 세웠으며, 구글도 이 도시에서 연구 활동을 한다.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인도 연구소를 이 도시에 두고 있다. 심지어 중국의 샤오미도 벵갈루루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인도의 국영 통신기기 제작사인 ITI(Indian Telephone Industries Limited)도 이 도시를 본거지로 삼으면서 벵갈루루의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인도정보기술공대(IIIT)도 이 도시에 자리 잡아 엔지니어 공급을 담당하면서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벵갈루루는 인도 최대의 우주항공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는 ‘인도 항공우주산업의 수도(Aviation Monopoly Capital)’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며, 인도 우주항공산업 생산기지의 65%가 몰려 있다. 사실 인도는 핵 보유국일 뿐 아니라 우주 로켓을 쏘아올리고 옛 소련이나 러시아와 초음속 제트기를 공동 개발·생산하는 우주항공산업 강국이다. 벵갈루루는 IT와 더불어 인도를 대표하는 첨단 기술인 우주항공 관련 기술의 집약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는 우주항공 분야 연구를 담당하는 인도우주연구원(ISRO)이 자리 잡은 것은 물론 제트전투기와 헬기, 무인기 등의 개발과 제작을 맡고 있는 힌두스탄항공(HAL)도 활동하고 있다. HAL은 러시아 수호이사와 손잡고 주력 전투기인 수호이 27의 인도 버전인 수호이-30MKI를 개발, 생산하고 있으며, 5세대 전투기인 HAL-FGFA와 미래형 중형 스텔스전투기인 HAL-AMCA도 개발 중이다. 여객기, 수송기 등 다양한 항공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는 산업용 기계와 정밀 시계를 생산하는 기계업체인 힌두스탄머신툴스(HMT)도 둥지를 틀었다. 인도의 IT산업 클러스터, 우주항공 클러스터와 기계 클러스터까지 고루 갖추고 인도 미래 발전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이들 업체 역시 소프트웨어의 거대 수요자다. 프렘지 회장은 이처럼 전략적인 지역에 자리를 잡고 인근 IT업체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지역뿐 아니라 글로벌 영역에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제공자가 됐다. 그는 비즈니스에서 ‘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가 이 회사를 운영해온 지난 40여 년은 그야말로 사업 다각화와 혁신의 세월이었다. 프렘지 회장은 현재 이 회사의 지분 73%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20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프렘지 투자(Premji Inves)를 개인이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3년 22억 달러를 기부해 인도 교육에 초점을 맞춘 ‘아짐 프렘지 재단’을 설립하고 IT를 이용해 인도 전역에 160만 개 이상 있는 초등학교의 교육수준을 높이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선에도 열심인 셈이다. 부자의 덕목이다. 두 아들을 둔 프렘지 회장은 능력에 맞춰 후계자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프렘지의 아들인 리샤드는 1억 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을 운용하면서 스타트업과 위프로의 네트워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리샤드는 위프로의 미래 전략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신의 손으로 키운 거대 기업을 사자의 아들이 아닌, 사자의 후계자 자격이 있는 인물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 프렘지 회장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 채인택은…중앙일보 피플위크앤 에디터와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제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역사와 과학기술, 혁신적인 인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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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