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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제주 예멘인, 무슬림형제단 포스팅도 … “한때 지지, 이젠 아냐”

최근 제주도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나세르(26·가명)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일상을 수많은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게시물 대부분은 예멘 남부 내륙지방에서 축구선수로 뛰던 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그의 포스팅엔 일부 위험한 장면도 들어 있었다. 기관단총을 메고 있거나 마약성 식물인 ‘카트’를 씹고 있는 장면, 이슬람 무장 세력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하는 포스팅 등이다. 일례로 2012년 11월 기관단총을 어깨에 둘러 멘 사진을 올렸다.  
 

난민 신청 50명 SNS 분석
총기, 식물성 마약, 무장단체 지지
18명이 페이스북에 사진 올려
총기 사진 올린 5명 “호신·과시용”
환각제 섭취 6명 “커피 수준” 주장

난민 옥석 가릴 수단 무력화
체류 중인 465명 면접 진행률 66%
범죄 경력 조회, 마약 검사도 한계
SNS가 위험 요인 포착할 유력 자료
‘출도 제한’ 임시방편에도 불안 여전

19일 수소문 끝에 제주 시내에서 만난 나세르에게 이 사진들을 보여주자 그는 “예멘에서 성인 남자라면 권총이나 개인 화기를 흔하게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이웃 집에서 결혼식이나 파티가 있어서 지인이 가지고 온 걸 기념용으로 찍었다”고 말했다.
 
민웅기 대표

민웅기 대표

중앙SUNDAY는 국제 리스크 컨설팅 업체 ‘리직스’(대표 민웅기)와 함께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인 50명의 페이스북을 분석한 결과 38명 중 18명(36.0%)의 페이지에서 총기를 휴대하거나 카트를 복용하는 본인 사진 또는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낸 게시물을 발견했다. 법무부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예멘인들의 인적 사항과 포스팅 배경을 확인 중에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18명 중 3명은 동명 이인이거나 난민 신청을 하지 않은 예멘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게시물의 성격별로 ▶총기를 휴대하고 있는 경우(5명) ▶마약류 카트를 섭취하고 있는 경우(6명) ▶특정 무장 세력을 지지한 경우(14명)로 나눠 살펴봤다. 나세르는 세 가지 게시물을 모두 올린 경우에 해당했다.
 
 
예멘 총기 보유 100명당 53명, 세계 2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분석 대상 50명 가운데 총기를 든 자신의 모습을 올린 사람은 5명이었다. 총기와 함께 아랍 전통 칼인 ‘잠비아’를 허리에 차고 있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나세르와 함께 제주에 온 아흐메드(26·가명)는 “예멘에선 총기를 남성성의 상징처럼 여기고 결혼식이나 중요한 행사 때 보여주기 위해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스위스의 국제 무기 관련 조사기구 ‘스몰 암스 서베이’의 올해 6월 조사에 따르면 예멘은 개인 화기 보유율이 인구 100명당 52.8명으로 미국(120.5명)에 이어 세계 2위다. 총기 보유는 미국에선 합법이지만 예멘에선 불법이다. 사진만으로는 총기를 보유하게 된 이유가 용병 활동 때문인지, 무장 투쟁에 가담해서인지, 호신용이나 과시용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제주에서 만난 예멘인들은 호신용 또는 과시용이라고 주장한다. 나세르 역시 “사람을 죽여 돈 버는 걸 원했다면 전쟁터에서 (용병으로) 수백 달러에서 1000달러까지도 벌 수 있다. 한국까지 온 건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식물성 마약 카트는 예멘에서 총기보다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잎을 껌처럼 씹거나 차로 우려 마시는데 일정한 흥분 상태 또는 낮은 수준의 환각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고 한다. 국내에선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됐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예멘 성인 남성의 90%가 매일 3~4시간을 카트를 섭취하는 데 소비한다. 제주 체류 예멘인들의 페이스북에서도 비스듬히 누워 카트를 섭취하는 사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알사탕을 문 것처럼 볼이 불룩한 사진은 카트를 씹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흐메드는 “예멘 사람 대부분이 카트를 하는 건 맞지만 중독성이 커피 수준이라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등 예멘인 유입이 많은 아시아 국가에선 카트 불법 재배 및 밀수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한국도 카트 청정지대는 아니다. 2015년 인천지검이 국내를 경유해 미국으로 카트를 밀반입하려던 에티오피아인 A를 검거했고 카트 3169㎏을 압수했다. 2017년엔 난민 신청이 거부된 예멘인이 카트를 소지한 채 성추행을 시도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사담 후세인은 영웅” … 후티 반군 추종 글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나세르는 2013년 4월 무슬림형제단의 상징물도 포스팅했다. 노랑 바탕에 손가락 네 개를 편 모양이다. 모두 4명의 예멘인이 같은 취지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집트에서 ‘아랍의 봄’을 이끌기도 한 무슬림형제단은 무함마드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최근 각종 폭탄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이로의 ‘라비아 알아다위야(이슬람 성인 이름) 광장’에서 유혈 시위를 일으켰는데 이 광장 이름이 ‘네 번째’를 의미하는 아랍어 발음 ‘라비아’와 유사해 손가락 네 개를 편 모습은 무슬림형제단의 상징이 됐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들을 테러 집단으로 분류한다. 나세르는 “한때는 형제단의 강령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무슬림 형제들을 살해하는 단체라는 걸 알게 돼 지금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포스팅은 분석 대상자 50명 중 8명이 올렸다. 그는 미국에 의해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의 배후로 지목돼 2006년 12월 처형됐다. 나세르가 2014년 2월 올린 후세인 추모 사진에는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승리하거나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우리 후손들도 너희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항해 투쟁할 것이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주 시내에서 만난 한 예멘인은 “사담 후세인은 미국에 대항해 아랍인의 권리를 대변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발발한 예멘 내전의 주역인 후티(Houthi) 반군을 추종하는 게시물을 올린 이도 있었다. 무함마드는 제주 입국 이후인 지난 6월 후티 반군으로 활동하다 사망한 압둘라 후세인 알무흐리크의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 주변엔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 미국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등의 글귀가 적혀 있다. 제주 체류 예멘인 중에도 후티 반군에 대해선 반감을 느끼는 이가 많다. 지난 4월 예멘을 떠난 아미르(27·가명)는 “후티는 12세 이상 남성이면 마구잡이로 징집해 전선에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밖에 남부 예멘의 사회주의 독립세력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올린 이도 있었다.
 
 
모카 커피 유래한 ‘행운의 땅’ 예멘 … ‘아랍의 봄’ 뒤 내전 겪어 난민 300만  
정치·종교 분열로 중동 최빈국 돼
3년간 9245명 사망, 5만 명 부상
 
아라비아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예멘은 고대 철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행운의 아라비아’라고 기록한 곳이다. 비옥한 토양과 온화한 기후를 토대로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해 오다가 7세기 이후 이슬람 문화권이 됐다. 오스만 튀르크의 영향하에 있던 15세기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커피·향신료 교역의 중심지였다. ‘카페 모카’는 예멘 남서쪽 모카 항(港)에서 유래한 말이다.
 
분열의 역사는 20세기 오스만 제국과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나며 시작됐다. 독립 과정에서 북예멘에는 자본주의 국가(1962년)가, 남예멘엔 사회주의 국가(1967년)가 들어섰다. 숱한 동족상잔을 거쳐 1990년 통일됐다. 알리 압둘라 살레가 초대 대통령이 됐지만 오랜 내전으로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의 최빈국이 됐다.
 
지금의 난민 사태를 초래한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이어졌다. 장기 집권하며 경제 파탄을 극복하지 못한 살레 대통령은 그해 6월 물러났다. 이어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살레 지지 세력이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Houthi)와 손잡고 그를 축출했다. 후티 반군은 2015년 1월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그해 3월 시아파 확장을 우려한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면서 내전은 커졌다. 시아파가 중심인 이란은 후티를 지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군이 약화된 틈을 타 알카에다·이슬람국가(IS) 등 무장단체들도 주요 도시 장악에 나서면서 내전은 복잡하게 흐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예멘에선 2015년 3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9245명이 사망했고 5만2807명이 부상을 당했다. 병원을 거친 숫자가 그렇다. 지난 9일엔 사우디 군의 폭격으로 학교버스에 타고 있던 어린이 4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내전 발발 이후 예멘을 떠난 이들은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주도에서 만난 유세프(28·가명)는 “예멘 내전은 서방 세계에선 잊힌 전쟁이지만 우리에겐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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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팀=임장혁·박민제·이유정 기자 deeper@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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