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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미안하다 안해요?" 아들 농담에 말문 막힌 北 아버지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측 양길용(90) 할아버지와 북측의 동생 량길수(86) 할아버지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이 형제는 한국전쟁 당시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총부리를 겨눴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남측 양길용(90) 할아버지와 북측의 동생 량길수(86) 할아버지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이 형제는 한국전쟁 당시 각각 국군과 인민군으로 총부리를 겨눴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처음 만난 아들의 얼굴엔 주름살이 깊었다. 24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에서 처음으로 남측 아들 조정기(67)씨를 만난 북측 아버지 조덕용(88)씨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들 조정기씨도 아버지의 하얗게 센 머리를 보며 “살아계실 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라며 오열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일을 보러 북녘으로 갔을 때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전쟁 통에 연락이 끊겨 자신이 줄곧 유복자라고 생각해왔다. 이날 오후 3시15분 단체상봉을 앞두고 먼저 자리에 앉아 대기하던 조정기씨는 북측 가족 입장이 시작되자 까치발을 하고 아버지의 모습을 애타게 찾았다.    
 
조정기씨의 생모이자 북측 조덕용씨의 부인은 올해 유명을 달리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을 보러 집을 나갔다가 전쟁통에 연락이 끊긴 남편을 68년간 기다렸지만 끝내 해후하지 못했다. 조정기씨는 상봉 전 취재진에게 “돌아가신지 채 두 달이 안 돼서 북에서 우리를 찾는다고 연락이 왔다”며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다”고 했었다. 그렇게 상봉한 부자(父子)는 서로 바짝 다가앉아 눈물을 흘렸다. 
 
이날 상봉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자 남측 아들은 북측 아버지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북측 아버지 조덕용="손수건은 뭐하러 사왔어?"
남측 아들 조정기="나 눈물 닦으려고 사왔지. 아버지 근데, 괜찮아요. 보니까, 괜찮아요. 어머니 때문에 그렇지(아쉽지)." 
 
아들은 아버지에게 농담조로 "아버지, 나한테 (아버지 없이 자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안 해요?"라고 묻기도 했다. 북측 아버지는 미안함 때문인지 묵묵부답이다. 아들은 아버지 손을 꼭 잡고 그저 웃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우리측 최고령 상봉 대상자 강정옥(100) 할머니와 북측의 동생 강정화(85) 할머니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우리측 최고령 상봉 대상자 강정옥(100) 할머니와 북측의 동생 강정화(85) 할머니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번 2차 이산가족 상봉의 최고령자인 남측 강정옥(100) 할머니는 북녘 여동생 강정화(85)가 들어오기 전부터 손뼉을 치며 설레임을 감추지 못했다. 제주도에 살다 서울 방직공장으로 돈을 벌러 간 뒤 전쟁통에 헤어졌다. 남측의 막내여동생 강순여(82) 할머니도 북측 언니에게 곱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립스틱을 바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북측 강정화 할머니가 상봉장에 들어서자 남측 가족은 일제히 “저기다, 저기!”라고 외치며 눈물바다가 됐다. 강정옥 할머니는 “아이고 정화야, 정화야”라고 북측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안아줘야지, 고맙구나”라고 북측 여동생을 꼭 안고 볼을 부볐다. 북측 여동생은 “믿어지지가 않는구나”라며 언니 손을 꼭 잡았다. 남측 여동생 강순여 할머니가 “언니, 나 막내 순여!”라고 하자 북측 언니는 “아이고 순여!”라며 울먹였다.
 
총부리 겨눴던 형제도 상봉…태풍으로 인한 일정 차질 없어 
 
이날 상봉장의 최연소자는 남측의 8살난 지이산군으로, 북측 지옥순(76) 할머니의 조카손자다. 이산군은 남측 할머니 신유숙(70)의 무릎 위에 앉아 북측 지옥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형제 상봉 중에는 6·25 전쟁 당시 국군과 북측 의용군으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을 북측 양길수(86) 할아버지와 남측 형 양길용(90)도 있었다.  
 
이날 상봉은 역대급이라던 태풍 솔릭도 피해갔다. 상봉을 하루 앞둔 23일 강원도 속초에 집결한 남측 이산가족들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북으로 향하며 행여나 태풍으로 상봉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 컸다. 그러나 태풍은 24일 정오쯤 강원도 강릉 동쪽 해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북 가족들의 단체 상봉을 약 세 시간 앞둔 시간이었다.
 
가족 그리며 쓴 시(詩), 자수 작품…애틋한 사연 얽힌 선물들
 
상봉장에는 남측이 준비한 생수와 믹스커피ㆍ탄산음료 및 홍삼 음료수, 맛밤ㆍ소세지ㆍ과자 등 간식과 담배도 한 갑씩 놓였다. 상봉장엔 ‘반갑습니다’ 등 북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점이 있는 것까지 똑같네” “이제 형님 봤으니 원이 없다” "아버지가 살아 오신 것 같다"는 가족들의 울먹임 섞인 목소리가 회장을 가득 채웠다.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는 북측 관계자들인 ‘보장성원’들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북측 가족들이 체제 선전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남북 가족들은 서로를 위해 각별한 선물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남측 남동생 황보우영(69)씨는 북측 누나 이근숙(84)씨가 남측에 남겨뒀던 자수 작품을 가져왔다. 누나 이근숙이 돈을 벌기 위해 북측 방직 공장에 가기 전 집에서 흰 천에 보라ㆍ분홍 실로 놓았던 자수다. 남측의 어머니는 재혼 뒤에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근숙을 그리워하며 이 자수를 놓고 매일 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부(異父) 남매들은 자수와 엄마 사진을 놓고 손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북측의 양차옥(82) 할머니는 남측 가족을 그리워하며 썼던 시 '우리집에 코스모스'를 남측 동생들에게 읊어줬다. '해해마다 칠십년/잊지 않고 피는 꽃 (중략) 빨간 꽃은 피었는데/우리 엄마 어데가고/너만 홀로 피었느냐'는 내용이었다. 양차옥씨는 아버지가 "너는 (작문을 잘하니) 기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던 칭찬을 잊지 않고 실제로 김일성대 문학과를 나와 과학기술통신사에서 40년간 기자생활을 했다고 한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일인 24일 2회차 상봉 대상자들이 탑승한 버스가 강원 고성군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금강산으로 줄지어 향하고 있다.             [뉴스1]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일인 24일 2회차 상봉 대상자들이 탑승한 버스가 강원 고성군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금강산으로 줄지어 향하고 있다. [뉴스1]

 
24~26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진행되는 2차 상봉은 북측의 가족이 상봉을 신청해 이뤄진다. 1차는 반대로 남측의 가족이 상봉을 신청해 진행됐다. 이번 2차 상봉을 위해 남측의 81개 가족, 326명이 방북했다. 
 
24일 환영만찬에서 남측 단장을 맡은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오랜 세월 쌓아두었던 슬픈 기억을 벗어버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만끽하시길 바란다"며 "오늘 행사를 계기로 한반도에 인도주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만찬사에 나선 북측 단장인 박용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금강산의 1만2000 봉우리가 하나가 되어 명산의 아름다움을 떨치듯 여러분들 마음이 하나로 뭉쳐질 때 북남(남북) 관계 발전에서 경이적 성과가 이룩될 것"이라며 "여기에 친혈육들이 함께 모여 살 통일의 지름길이 있다"고 화답했다.  
 
24일 각 2시간씩 이뤄진 첫 단체상봉과 환영만찬 뒤 가족들은 25일엔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다. 각 가족별로 개별상봉을 하고 객실에서 함께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회포를 푼다. 마지막 날인 26일엔 작별상봉과 함께 공동중식을 진행한 뒤 헤어진다. 6ㆍ25 전쟁이 끝난지 65년 후 처음 만난 남북 이산가족이 사흘간 얼굴을 맞대는 시간은 모두 12시간에 불과하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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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