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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괴물'

 

“소득불평등의 모든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 있다. 한국에서 불평등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된 고용불평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다.”
“돈의 행방은 바로 사내 유보, 즉 그 돈들은 모두 기업이 보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업을 부자로 만든다는 건 궁극적으로 목적을 상실한 성장이다. 그리고 부가가치 중 임금으로 분배되는 비중이 지속해서 줄어들었다. 재벌그룹에 속하는 기업들은 모든 이익의 60퍼센트를 가져가는데 고용 비율은 4퍼센트다. 이런 구조 때문에 기업이 저축의 주체가 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오늘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문구들로 레터를 시작합니다. 이 책은 뜨겁습니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대학생으로 살아본 사람들은 장 실장이 제기한 문제의 뜨거움과 분노에 쉽게 동화될 만큼 자극적입니다. 장 실장은 책 서문에 이렇게도 적었습니다.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자가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분배를 시장경제의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이미 가진 자의 부와 권력에 예속되고 복종하는 노예다".
 
청와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론의 가장 굳건한 ‘수호자’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의 사령탑”일지는 몰라도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구루(Guru)는 누가 뭐래도 장 실장입니다. 그런 만큼 소득주도성장론을 포기시키는 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언론들이 소득주도성장이 지닌 문제점이나 비현실성에 대해 융단 폭격을 가해도 청와대 사람들의 답변은 한결같습니다. 24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정책 기조의 변경은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철옹성입니다. 하지만 장 실장의 주장이 무오류는 아닙니다. 책 속에는 무시한 게 너무 많습니다. 경제 현실을 대립적으로만 분석하다보니 기업이 자본을 축적하는 현상을 무조건 ‘악(惡)’으로 치부합니다. 무엇보다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는 문제의 해법으로 대기업 중심의 갈등구조를 깨야 한다는 얘기만 있지, 산업정책의 현실을 다룬 부분은 없습니다. 명쾌하고 시원한 원인 분석을 따라가다보면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지’에서 갸웃거리게 됩니다.
 
문제는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지금의 논쟁이 부실한 경제 지표를 동반하고 있다는 겁니다.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건 진보학자든, 보수학자든 쉽습니다. 비판은 때론 도그마이어도 되고, 단선적이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판하는 입장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입장이 되면 달라져야 합니다. 기업들의 얘기도 들어봐야 하고, 자영업자들의 얘기도 들어봐야 하고, 어디서 선이 꼬였는지도 세밀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정책을 만들 때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 경제 현장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아우성인 건 소득주도성장을 주창한 장 실장이나 그걸 옹호하는 청와대 사람들이 문제풀이를 객관적이고 현장 중심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불신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가 열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토론하는 청와대 회의 장면을 상상해봤습니다. 청와대에서 주요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토론하는 핵심회의체는 수석ㆍ보좌관 회의입니다. 3실장, 8수석, 2보좌관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을 머리 속에서 그려 봅니다. 임종석 비서실장(전대협 3기 의장), 김수현 사회수석(빈민활동가), 조국 민정수석(국보법 위반혐의 구속), 정태호 일자리수석(서울대 삼민투 사건으로 구속), 한병도 정무수석(전대협 3기 전북지역 조국통일위원장). 그리고 장하성 실장….  면면들만 봐도 알 수 있을만큼 80년대를 아스팔트 위에서 뜨겁게 살아온 인물들입니다.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자가 이러한 정의롭지 못한 분배를 시장경제의 당연한 귀결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이미 가진 자의 부와 권력에 예속되고 복종하는 노예”라고 장 실장이 주장합니다. “실장님, 그래도 대기업들의 긍정적인 역할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일단 기업들의 기부터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규제개혁으로 기업들의 손발을 자유롭게 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 회의 참석자 중 경제관료 출신은 윤종원 경제수석 정도입니다. 서슬퍼런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소득주도성장론자들에 비해 청와대 내 의사결정 구조에서 ‘기업주도성장론’을 얘기하거나, ‘혁신성장’을 얘기할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장 실장과 각을 세우는 듯했지만 일시적이고 미봉적입니다. 시장의 아우성은 줄을 잇고 있지만 김 부총리조차 “직을 걸고” 일하는지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를 중시하는 스타일인 만큼 이런 회의체의 결론에서 정책 변경을 하자거나, 경제팀을 새로 꾸리자는 얘기가 나올리 만무합니다. 청와대와 시장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칫하면 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도그마의 최대 피해자는 장 실장이 그토록 강조한 "불평등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 중앙SUNDAY가 인터뷰 한 진념 KDI초빙교수도 같은 지적을 했습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기획예산처장관과 경제부총리를 지냈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이 경직됐다는 말인가.
 "경제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이 정부의 정책만이 분배의 정의를 이루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원칙만 내세워선 어렵다. 고용문제만 해도 안정성과 유연성의 조화를 이뤄져야 하는데 현 정부에서 고용의 유연성 문제는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지 않은가. 노동 존중의 사회가 아니라 노동조합 존중의 사회가 되버리고 말았다. 경제는 실용이다. 항상 이념적 좌표에 고정되지 않고 균형적 감각을 키워나가는 게 중요하다. 실물 경제를 다루기 위해선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상과 조화시켜 나가야 한다. 경제정책을 이상 실현의 실험대상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악의 저편』이란 책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들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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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