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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한국의 미투 운동을 보는 미국인의 시각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한국에서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추행·성희롱·성폭행 등의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문화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 순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일을 먼저 경험한 미국에서 취할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무엇일까?
 
피의자의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를 전제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유죄 입증은 현재의 사회 통념이 아닌 법률에 따라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전제다. 그런데 한국의 성폭력 관련 법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어 보인다. 폭력이나 신체적 위협을 범죄 성립 요건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에선 피해자가 원치 않는 일을 당했느냐가 관건이다. 또 성폭행의 범위를 성관계로 국한하지 않는다. 성적 접촉 전반을 포괄한다. 한국이 이 문제에서 진일보하려면 단지 법원의 법리 해석이 너무 좁았다, 아니다에 초점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성범죄에 적용하는 법의 기준 자체가 너무 높지 않느냐고 따져야 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가해자 남성의 진술을 피해자 여성의 진술보다 중시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성폭력은 공개된 장소나 목격자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피해자가 그런 일을 겪은 뒤에 고발하기가 쉽지 않다. 조직 안에서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 역시 힘들다. 이것은 가해자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성폭력의 패턴이나 피해자가 지인에게 전한 말 등 간접적인 증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의미다.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가해자 남성이 제시하는 증거가 진실을 은폐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안희정 전 지사에 대한 법원 판결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는 ‘위력’의 개념을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것과 성관계 합의 여부를 판정할 때 피해자의 인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본다. 합의라는 개념은 여성이 권력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위치에 있을 때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합의한 행위라고 믿어도 될까? 신체적인 위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형태의 위력이나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더욱 진지하게 던져 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워치 8/24

글로벌워치 8/24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가 들통났을 때 미국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당시 많은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을 변호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행동이 부적절하다 해도 탄핵은 물론 사임을 할 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탄핵은 불발에 그쳤다. 그런데 만약 이 문제가 요즘 불거졌다면 상당히 다른 국면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다. 권력의 영향이 ‘합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익명성을 보장하는 ‘블라인드 앱’에는 직장에서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이 무수히 올라온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로 수사 기관은 고사하고 직장 내 해당 부서를 찾는 경우조차 극소수다.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믿어주지 않거나 본인 탓으로 귀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피해자를 두고 온갖 악의적인 소문이 생산되는 과정 때문일 것이다.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의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은 여성들이 문제 해결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한다.
 
미투 운동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투 운동은 궁극적으로 용기에 대한 것으로, 여성은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사건을 들고 나서야 한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기보다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기에 급급한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론화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절한 성적 행동의 경계선을 이해시킨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성폭력 문제는 법과 도덕에 어려운 문제들을 던진다. 그래서 자칫 소모적 논쟁으로 흐를 수도 있다. 이 문제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성범죄는 선진 산업사회 전반의 문제이다. 영국 주간지‘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은 직장 여성이 느끼는 유리천장지수(직장 내 여성차별 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여성의 노동 환경을 개선해야 그들이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성폭력은 법·도덕 차원의 사안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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