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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퍼스펙티브] ‘아날로그의 반격’ 독립서점은 도심의 사려니숲이다

독립서점 현상 
오랜만에 책을 출간해 신간 홍보에 참여해보니 출판시장 변화들을 절감한다. 주요 일간지 북 섹션이나 광고의 영향력은 줄었고,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은 크게 늘었다. 인터넷 서점 강세로 온라인 판매 비중이 확대됐고, 동네 서점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2005년만 해도 3500개였던 서점 수가 10년 만에 2000여 곳으로 줄었다. 이런 와중에 최근 5년 사이 출판시장에서 벌어진 가장 큰 변화는 독립서점의 등장이다.
 

독립 출판물 주로 다루는 독립서점
여유롭고 편안한 환경에서 책 음미
저자와의 만남이나 독서모임 통해
취향 비슷한 사람끼리 공동체 형성

독립서점 부상은 ‘아날로그의 반격’
스마트폰·SNS에 빠진 현대인에게
아날로그에 대한 욕망 가지게 해

현대인에게 사색·성찰의 공간 필요
독립서점이 성찰의 공간 될 수 있어

동네에 있는 작은 규모 서점을 ‘동네 서점’이라 부른다. 그중 소규모로 출판하는 독립 출판물을 주로 다루는 소형 서점을 ‘독립서점’이라 부른다. 통상 동네 서점들은 여유 공간이 별로 없을 정도로 책장에 많은 책을 꽂아두고 판매한다. 베스트셀러나 참고서·문제집·월간지 등을 주로 취급한다.
 
하지만 독립서점들은 특정 주제의 책이나 독특한 취향에 맞춰 책을 선별·전시·판매한다. 책의 종수는 많지 않지만, 여유롭고 편안한 환경에서 방문자들이 책을 음미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저자와의 만남이나 강연회·독서모임 등 커뮤니티 활동을 꾸린다.
 
독립 출판물 품은 독립서점 약진
 
독립서점 현상

독립서점 현상

독립서점의 가장 큰 매력은 독립 출판물을 만나볼 수 있다는 데 있다. 유명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1인 출판 형태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콘텐츠를 적은 발행 부수로 출판하는 출판물을 ‘독립 출판물’이라 부른다.
 
일반 대중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내용이라도 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들은 자기 생각이 기록으로 남겨지고 소수에게나마 전해진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정신이 확대되면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가 되고 책을 내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점이 독립 출판을 증가시켰다.
 
독립 출판물을 중심으로 서점을 운영하다 보니, 독립서점은 출판시장 내 거대 자본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해 있다. 교보문고·영풍문고 같은 대형 체인 서점 등 문화 자본과 연결돼 있지 않다. 베스트셀러에 주력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책을 팔다 보니, 대형 출판사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동네 서점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운영하는 ‘퍼니플랜’이 발표한 ‘2017 독립서점 현황 조사’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전국 독립서점은 총 277곳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시에 위치한 독립서점이 128곳으로 전체의 49.8%를 차지한다. 다음은 경기도 30곳, 부산 15곳, 대구·제주가 각각 10곳으로 그 뒤를 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 대학로의 독립서점 ‘슈뢰딩거’는 고양이 관련 서점이다. 이곳에선 소설·에세이·동화·그림책 등 고양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을 판매한다. 일반 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해외 서적이나 고양이 관련 국내 작가들의 독립 출판물도 판매한다. 고양이 관련 상품도 함께 판다. 이곳에 오면 고양이에 관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냥덕’(고양이 마니아)에겐 천국이다.
 
서울 상수동의 ‘위트앤시니컬’은 시집 전문 서점이다. 대형 출판사의 시집 외에도 작은 출판사의 소규모 독립 출판물을 많이 전시한다. 추리소설 책방 ‘미스터리유니온’은 이화여대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원목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추리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공간에 빼곡히 추리소설 2000여권이 채워져 있다.
 
책을 읽는 것을 넘어 경험한다
 
독립서점이 대형 출판사의 베스트셀러에 주력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익 창출 측면에선 어려움이 있다는 뜻하기도 하다. 대개 서점들은 베스트셀러를 많이 들여놓은 후 집중적으로 진열해 빠르게 팔아 효율적 공간 사용과 판매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소수 취향 저격 서점으로 운영하는 독립서점은 수익 창출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서점 대표 혹은 독자 취향에 맞춰 책들을 선별·배치함으로써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적인 공간을 만들고 있다. 독립서점 대표들의 창업 이유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등에서다.
 
인터넷에서 10% 할인까지 받으며 책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독립서점을 방문할까? 그들은 설령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로 주문하더라도 동네 서점에서는 책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한다. 책을 그저 사 읽는 것을 넘어 독립서점에서는 책의 향기를 맡고, 나와 비슷한 취향의 독자 친구를 만나며, 그 공간 안에서 책을 음미하길 원한다.
 
이런 추세는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미국만 해도 인터넷 서점 아마존 등장 이후 보더스가 파산하고 반스앤노블스가 위기를 맞고 있지만, 독립서점 수는 40% 가까이 늘었다. 일본에서도 책이 아니라 취향을 판매하는 서점들이 우리보다 20년 전에 등장했고, 독립서점 수도 우리보다 10배나 많다.
 
독립서점의 등장을 책에 대한 애정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독서 인구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줄었다. 성인 독서율은 2007년 76.7%에서 10년만인 2017년에는 59.9%로 떨어졌다. 책을 전혀 읽는 않는 사람이 이제 10명 중 4명이나 된다.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도 2007년 12.1권에서 2017년 8.3권으로 떨어졌다.
 
독서 인구는 늘지 않고 있고 책 판매량도 크게 줄었지만, 활자를 덜 읽는 건 아니다. 다만 출판시장에 스마트폰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인류가 만들어내는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개인이 받아들이는 정보량도 크게 늘었지만,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책의 역할은 점점 줄고 있다는 얘기다.
 
독립서점이 뜨는 현상에 대한 그럴듯한 해석은 ‘아날로그의 반격’이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색스에 따르면 아날로그의 반격 현상은 복고의 귀환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의 반동이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소셜미디어에서 눈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의 결핍은 그것에 대한 욕망을 만들어낸다. 그에 따르면 전자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도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전자책만으로는 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없다. 아날로그 경험을 통해 ‘진짜 세계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는 노력이 아날로그의 반격을 만들어낸 동력이라고 색스는 설명한다.
 
아날로그의 반격
 
물질문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탈물질주의 정신은 취향을 중시하는 교양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장기적 경제 불황 시대에 결혼이나 내 집 마련 같은 큰돈이 필요한 행복을 추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맛집이나 독립서점이 주는 ‘소확행’은 누구나 누리고 추구할 수 있는 욕망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저자와의 대화나 독서모임을 제공하는 커뮤니티 활동은 독립서점의 가장 강력한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독립서점은 향후 출판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놓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독립서점은 더 늘어날 전망이며, 독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저격하는 개성적인 독립서점들의 등장은 출판시장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에는 틀림없다.
 
하이브리드 비즈니스 모델 필요
 
그러나 정보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책 역할이 줄어듦에 따라 출판시장은 장기적으로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생애 첫 동화책이 전자책이고, 학교에서 교과서를 전자책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되면 아날로그의 반격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독립서점은 소수 마니아를 위한 취향 공동체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독립서점이 대세를 이루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자체가 가지는 마이너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소수 취향이다 보니 비즈니스 모델이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독립서점은 적자다. 오히려 학교 앞에서 참고서나 문제집을 파는, 학용품까지 같이 파는 문방구 겸 동네 서점이 오히려 안정적이다.
 
독립서점의 성장을 위협하는 것은 무지막대한 임대료다. 가로수길과 홍대 입구, 서촌과 북촌이 경험했던 것처럼 독립서점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딜레마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독서 모임이나 저자와의 대화만으로는 서비스가 부족하다. 다른 업종과의 하이브리드형 비즈니스 모델이 요구된다.
 
홍보비가 부족하다 보니 찾아오는 방문자들이 극소수다. 오상진·김소영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당인리책발전소나 노홍철이 운영하는 철든책방, 최인아의 책방처럼 스타의 유명세를 활용하는 독립서점만이 적자를 면하는 상황이다.
 
영감 위한 밀실과 광장으로 진화하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에 따르면 사람들은 책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점을 찾지 않는다. 서점에 가지 않고도 책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점이라는 장소는 반드시 와야만 하는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도 인터넷 서점이 제공하지 못하는, 거대 자본이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말이다. 독립서점이 책을 넘어 ‘독자 공동체’로 진화해 가려 하는 시도도 여기에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서점이 이제 지혜와 영감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정보는 인터넷으로부터 얼마든지 얻을 수 있지만, 성찰을 통해 그것을 지혜와 통찰로 연결하는 장소는 별로 없다. ‘핸드폰은 잠시 꺼두어도 좋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사색과 성찰의 공간이 필요한 시대다. 이제 제주도 사려니숲길이 아니라 도심에 자리한 독립서점이 그런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보와 지식이 영감과 통찰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깊이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 사색할 수 있는 밀실과 대화를 통해 빛나는 성찰을 나누는 광장이 둘 다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의 균형이 필요한 시대, 독립서점은 이제 우리에게 밀실과 광장의 공간으로 진화해주길 기대한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개성이 풍성한 출판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만이 책의 미래다. 그래서 독립서점은 소중하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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