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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과학자 중시 … 평양 새 명물 고급식당엔 전용룸까지

양각도호텔에서 바라본 평양 시내의 모습. 김정은 위원장이 과학인을 우대하는 정책과 국산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평양시내 곳곳에선 고층 빌딩과 아파트의 신개축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정민 기자]

양각도호텔에서 바라본 평양 시내의 모습. 김정은 위원장이 과학인을 우대하는 정책과 국산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평양시내 곳곳에선 고층 빌딩과 아파트의 신개축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정민 기자]

평양 가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버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농촌의 모습은 어릴 적 봤던 우리 농토와 너무 닮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기자가 평양을 방문한 건 지난 10~17일. 제4회 아리스포츠컵 축구대회 취재단의 일원으로다. 첫 평양 방문이었다.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북측이 내준 대형 버스로 갈아타고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3시간여 달리자 우뚝 솟은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낙랑구역(구역은 우리의 구에 해당) 통일거리 입구에 건설된 30m 높이의 거대한 석탑은 6·15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이듬해인 2001년 지어졌다. 폭이 61.5m에 달하는 아치형 석탑엔 남한과 북한의 여성이 한반도 지도를 마주 들고 있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확 뚫린 대로변 양편에 우뚝 선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채색된 아파트와 초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단번에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세히 보니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들엔 주홍, 분홍, 코발트, 비취, 그린 같은 형광색상의 페인트를 입혀 새 단장을 했고, 최근 건설된 신형 아파트와 60~70층짜리 초고층 빌딩들은 유선형이나 타원형 건축기법을 써 세련미를 더했다.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후 형성된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평양 시내의 명물로 떠오르면서 스카이라인을 바꿔놓고 있었다.
 
대동강수산물식당 2층에 있는 과학자 전용룸. 과학자들에겐 음식값도 깎아주고 예약도 우선적으로 받아준다. [이정민 기자]

대동강수산물식당 2층에 있는 과학자 전용룸. 과학자들에겐 음식값도 깎아주고 예약도 우선적으로 받아준다. [이정민 기자]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 만난 30대 여성 안미경 씨는 “세대주(남편)가 김일성대 교원(교수)여서 지난해 여명거리의 살림집(아파트)을 무상 배분받았다. 배분받은 날 온 식구들이 같이 울었다”고 소개했다. 딸을 포함, 세 식구가 살고 있는데 방 4개와 화장실 2개가 있는 아파트를 배정받았단다.
 
2015년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의 아파트도 김책공대 교수와 연구원 등 과학자들에게 무상 분양됐다. 미래과학자거리는 북한의 과학자 중시 정책의 상징이다. 레지던스 은하 타워, 미래과학자거리 트윈 타워 등이 잇따라 완공돼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고, 단지 내에 상점들이 입주해 있어 편리하게 돼 있다. ‘북한판 판교’라 불리는 이유다.
 
유례없는 고강도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의 수도에서 이처럼 대규모 건설 붐이 일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측 안내원에게 “대규모 건설사업을 하려면 자재 등을 수입해야 할 텐데 제재의 영향을 받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재와 기술이 100% 국산화돼서 제재와는 관련이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또 다른 안내원은 “지금 제재가 있다고 하지만 인민들이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고난의 행군 때는 평양에도 배급이 끊기고, 전기 공급이 제대로 안 돼서 열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때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 재래식 무기론 안 된다, 핵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미국도 우리가 핵을 갖고 있으니까 인정하고 대접해주고 있지 않은가.”
 
안내원이 안내하는 곳만 제한적으로 볼 수 있을 뿐 일반 주민들과는 접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볼 수는 없었지만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형성된 자신감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표면적으로는 대북 제재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듯한 모양새지만 최근 외환보유고가 줄어드는 등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그 효과도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옥류관에 이은 평양의 신흥 명물이라는 대동강수산물식당에서도 달라진 평양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달 문을 연 이 식당은 1층에 철갑상어, 연어, 대게, 털게 등이 담긴 대형 수조가 여럿 있고 2, 3층은 1500석 규모의 식당을 갖추고 있다. 수산물과 식재료를 파는 2층의 마트에서는 일본과 유럽 등지에서 수입해온 간장, 식초, 마요네즈, 참기름, 캐비어 같은 고급 식재료가 판매되고 있었다. 가격표를 보니 일제 참기름이 1077원, 이탈리아산 비인코 식초는 700원이다. 북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이 4000원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가다.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미래과학자거리. [이정민 기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미래과학자거리. [이정민 기자]

북한이 자체 기술로 양식에 성공했다고 선전하고 있는 철갑상어회는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인데 1㎏에 14.5달러라고 표시돼 있었다. 외국인 전용 상점이 아닌데도 메뉴판에 달러로 가격이 표시돼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평양 전역에서 달러와 유로,중국 위안화가 통용된다) “북한이 최근 개인들의 거래와 시장경제 활동을 허용하면서 대규모 재력가(돈주)도 생기고, 월급 이외에 생기는 수입이 상당하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북측 안내원은 "과학자들에겐 음식값도 깎아주고 전용 식사칸까지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북한 제품의 포장기술과 디자인. 훈제 햄이나 소시지, 수산물들이 진공 포장돼 있었고 과즙을 함유한 다양한 탄산단물(탄산 주스) 캔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10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동료 기자는 “포장기술과 디자인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며 놀라워했다. “국산화 노력의 결실”이라고 북측 안내원은 설명한다.
 
경제 제재 속에서도 국산화에 어느 정도 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과학중시, 과학인 우대 정책에 기인한다는 게 북측 인사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북측 안내원 김 모 씨는 “과학자들에겐 고급 살림집을 우선적으로 무상 제공하고 과학자 전용 상점이 있어서 생필품도 싸게 살 수 있다”며 “그러니 다른 걱정 없이 과학 기술 연구에만 열중할 수 있다”고 했다.
 
핵, 경제 병진 정책을 표방한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핵 무력을 완성,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4·27 남북,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를 약속한 북한은 지금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비핵화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가 공언한 대로 핵을 내려놓고 과감한 경제 개혁 개방으로 나설지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평양=이정민 기자 lee.j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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