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호설암 비판한 마윈, 그도 결국 정경유착 전철 밟나

이 시대 중국 최고의 상인으로 꼽히는 알리바바 마윈(马云) 회장, 그가 롤 모델이라고 평가한 역사 속 상인이 있다. 바로 청나라 최고의 거상이라 불리는 호설암(胡雪岩 후쉐옌)이다. 마 회장은 일찍이 호설암을 두고 "본받을 만한 모범적인 상인임과 동시에 결코 따라서는 안될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대상"이라고 평가했다. 한 사람을 두고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린 것이다.
[사진 이매진 차이나]

[사진 이매진 차이나]

 
긍정적인 평가는 이해가 간다. 호설암이야 말로 '시대를 읽는 탁월함'과 '기회를 포착하는 영민함'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또 신용과 신의에 따른 경영을 누구보다 강조한 상인이었다.  
 
가난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했던 부친을 기리기 위해 항저우(杭州)에 '호경여당(胡庆余堂 후칭위탕)이라는 약국을 설립했던 그는 '계기(戒欺 거짓, 속임수를 경계한다)'라는 경영 신조를 상호보다 더 크게 내걸었다고 한다. 그 시절 호경여당은 베이징 동인당(同仁堂)에 비견될 정도로 남방 최고의 약방으로 흥했다.
[사진 poco.cn]

[사진 poco.cn]

 
※ 호설암(胡雪岩 1823-1885)은 후이상(徽商 안후이 상인)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안후이성 지시현에서 태어난 호설암은 유년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다. 일찌감치 장쑤-저장 일대로 나와 생계를 모색했는데, 회계 장부 기록 일을 성실히 해 전장(钱庄 옛날 금융업 점포) 사장의 신뢰를 받았다. 결국 사장은 사후 모든 재산을 후쉐옌에게 물려줬고, 호설암은 이렇게 금융업에 진출했다.
호설암 [사진 펑황왕]

호설암 [사진 펑황왕]

 
그런 호설암을 마윈이 비판했다. 왜?
 
마윈이 비판한 것은 호설암이 부를 쌓은 방식이었다. 2014년 세계 인터넷 총회(世界互联网大会)에서 마 회장은 "후쉐옌이 갔던 길은 방향이 잘못됐다. 돈과 권력은 결탁해서는 안 된다. 정경유착의 말로에는 파멸만 있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즉, 마윈은 관과 상의 결탁(官商勾结, 우리 표현으로는 '정경유착')을 비판한 것이다.  
 
호설암의 축재 과정을 보자.
 
한창 호설암이 사업을 펼칠 무렵 태평천국운동(太平天国运动)이 일어났다. 1861년 태평군(太平军)이 항저우(杭州)성을 포위하자, 호설암은 저장 지역 지방 관료를 도와 군사 식량을 조달했다. 이 일은 민저(闽浙) 총독 좌종당(左宗棠)의 눈에 드는 계기가 된다.
 

**태평천국운동:  청 말기 홍수전이 창시한 그리스도교 비밀 결사를 토대로 1851년에서 1864년까지 청조 타도와 새 왕조 건설을 목적으로 일어난 농민 운동

 
덕분에 호설암은 좌종당의 지원을 받아 푸저우(福州) 선정국(船政局)을 설립할 수 있었다. 좌종당이 호설암을 후원한 이유는 청 정부의 자금 부족으로 상단의 군수품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후쉐옌은 좌종당이 감숙 섬서 총독을 맡았던 기간 동안에도 그를 도와 군수물자와 식량을 조달했다.  
 
1870~1980년대 청 정부는 안으로는 양무운동(洋务运动)으로 인해, 밖으로는 외국에 배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거액의 자금을 필요로 했다. 심각한 재정적자에 빠진 청 정부에게 외국 은행 조차도 대출을 해주지 않으려 했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호설암의 도움이 필요했다. 실제로 호설암이 외국 은행으로부터 1595만량의 은돈(白银)을 조달해 청 정부의 군료(군인 급료 및 지급품) 문제를 해결해 준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양무운동:19세기 후반 중국 청나라에서 일어난 근대화 운동,서양의 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루려 했다.

[사진 이매진 차이나]

[사진 이매진 차이나]

 
호설암이 필요했던 좌종당과 좌종당이 필요했던 호설암, 두 사람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상생의 길을 걷는다. 호설암은 상인 신분으로 2품 벼슬까지 오른다. 당대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린 셈이다.
 
그러나 마윈의 말처럼 정경유착으로 부를 쌓았던 호설암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좌종당의 몰락은 호설암에게도 큰 타격이 됐다. 좌종당을 누르고 권력을 잡은 이홍장은 호설암의 관직을 삭탈했고, 재산까지 전부 잃은 호설암은 1년 뒤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마윈, 호설암의 전철 밟나?
 
호설암과 마윈은 여러 면에서 상당히 닮았다. 자수성가형 상인인 것부터, 각종 공익형 사업을 통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점까지 비슷하다. 호설암은 당대 약방을 운영하며 전란으로 다치고 병든 백성들의 치료를 도왔고, 교육자 출신 마윈은 교육사업과 자선사업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마윈 회장 역시 '관상상인'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요즘 중국 IT업계에서는 "마윈이 호설암의 전철을 밟으려 한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알리바바는 민영기업이지만, 조직 내부에 공산당 산하 조직을 두고 있다. 민영기업이라도 정부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중국적 한계다. 마윈도 정부를 활용한다. 그가 요즘 자주 공산당을 찬양하는 것도 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 등 자국 혁신 기업들의 성장을 적극 지원한다. 마 회장을 포함한 중국의 IT 기업 수장들은 정부의 지원에 반색하면서도 동시에 그로 인한 정부의 경영 간섭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의 지원없이 사업을 추진하기 힘든 중국의 특성상 결국 정부의 방향을 따르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3년 전 마윈 스스로가 말했듯 '관상상인 호설암'이 그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마윈은 과연 호설암과 같은 관상(官商)의 길을 걸을 것인가? 중국 IT업계를 읽는 새로운 화두다.
 
 
차이나랩 홍성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