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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결국 추방된 95세 '나치 경비대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폴란드 강제 수용소에서 무장 경비로 근무한 야키프 팔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자택에서 미국 이민세관 집행국 관계들의 주도 아래 추방 조치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폴란드 강제 수용소에서 무장 경비로 근무한 야키프 팔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자택에서 미국 이민세관 집행국 관계들의 주도 아래 추방 조치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로 부역했던 95세 남성이 미국에서 추방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폴란드 강제 수용소에서 무장 경비로 근무한 야키프 팔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자택에서 미국 이민세관 집행국 관계들의 주도 아래 추방 조치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폴란드 강제 수용소에서 무장 경비로 근무한 야키프 팔리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퀸스의 자택에서 미국 이민세관 집행국 관계들의 주도 아래 추방 조치당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이민세관 집행국은 21일(현지시간) 뉴욕 퀸스에서 거주 중이던 폴란드계 야키프 팔리(95)를 독일로 추방 조치했다 밝혔다. 백악관에 따르면 팔리는 1943년  나치 친위대 훈련을 받고, 트라브니키 강제 수용소에서 무장 경비로 근무했다. 이 수용소에서는 1943년 11월 당시 6000여명의 유대인이 집단으로 학살됐다. 
유대인 학살 작전의 책임자인 하인리히 힘러가 트라브니키 강제수용소의 신임 경비대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야키프 팔리는 이 경비대원으로 일했다. [AP=연합뉴스]

유대인 학살 작전의 책임자인 하인리히 힘러가 트라브니키 강제수용소의 신임 경비대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야키프 팔리는 이 경비대원으로 일했다. [AP=연합뉴스]

 
백악관은 "팔리는 경비병으로서 유대인 수용자의 탈출을 막아 이들이 나치 정권에서 끔찍한 운명을 맞게 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2차 대전이 끝난 1949년에 신분을 숨기고 입국한 팔리는 미국 시민권을 얻어 제도공으로 일했지만, 2001년 미 법무부 특별조사국의 나치 전범 수사에 의해 정체가 드러났다. 팔리는 "목숨을 위협받아 어쩔 수 없이 경비로 일했다"고 주장했지만, 뉴욕 지방법원은 2003년 팔리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2004년 추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독일과 폴란드 모두 팔리의 수용을 거부해 무국적 신분으로 미국에 머물렀다. 
1949년 당시 미국 입국 비자속의 야키프 팔리의 사진. [UPI=연합뉴스]

1949년 당시 미국 입국 비자속의 야키프 팔리의 사진. [UPI=연합뉴스]

뉴욕 퀸즈 잭슨하이츠 가에 있는 야키프 팔리의 집. [AP=연합뉴스]

뉴욕 퀸즈 잭슨하이츠 가에 있는 야키프 팔리의 집. [AP=연합뉴스]

 2003년 11월 야키프 팔리가 자신의 집 앞에 서서 뉴욕타임스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2003년 11월 야키프 팔리가 자신의 집 앞에 서서 뉴욕타임스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팔리의 수용에 대해 독일과 수 주에 걸친 협상을 벌여 수용 약속을 받아냈다. 법원에 의해 추방 결정이 난 지 14년 만의 집행이다.
샌더스 대변인은 "유럽의 핵심 동맹국과의 협력이 한층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독일에 도착한 팔리는 알렌 지방의 한 양로원으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간)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뒤 세웠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찾아 헌화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독일의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이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뒤 세웠던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찾아 헌화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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