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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동안 전기차에서 숙식하는데 시베리아 표범이…

[J가 만난 사람] 전기차 타고 실크로드 횡단한 마레크 카민스키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마레크 카민스키 극지탐험가. 문희철 기자.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한 마레크 카민스키 극지탐험가. 문희철 기자.

 
해외여행은 어쩔 수 없이 ‘흔적(trace)’을 남긴다. 비행기·렌터카는 배기가스를 내뿜고, 호텔에서 하룻밤만 묶어도 쓰레기가 나온다. 길거리 음식을 맛보려면 나무젓가락이나 종이컵은 필수다.
 
하지만 환경에 해로운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고도 해외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몸소 증명하겠다고 나선 인물이 있다. 세계 최초로 아무런 외부 지원을 받지 않고 한 해에 남극·북극을 동시 정복했던 극지방탐험가 마레크 카민스키(54)다. 지난 5월 24일 시작한 자칭 ‘흔적 없는 여행(No Trace Expedit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해외를 여행 중이다. 5개국 1만2000㎞를 달려 방한했던 지난달 25일 경기도 하남 만남의광장에서 그를 만났다.
 
마레크 카민스키 탐험가는 ‘흔적 없는 여행(No Trace Expedition)’을 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마레크 카민스키 탐험가는 ‘흔적 없는 여행(No Trace Expedition)’을 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흔적 없는 여행’은 불교를 공부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마레크 카민스키는 “불교의 수행방법인 참선(參禪)을 배우면서 ‘흔적’이라는 단어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연에 남기는 흔적은 주로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탐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면서 맨 처음 한 게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차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내연기관이 아니라 오직 전기차만 타고 이동하면 오염물질을 최대한 배출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현대자동차·테슬라모터스 등에 ‘흔적 없는 여행’을 제안서를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다. 결국 닛산자동차가 전기차 리프(leaf)를 무상제공했다.  
 
90일째 접어든 여행 기간 전기차 덕분에 그는 해외여행에서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의식주(衣食住)의 대부분을 차에서 해결했기 때문이다.
 
195㎝ 거구인 그는 자동차 보조석을 눕힌 뒤 널빤지를 깔아 침대로 삼아 잠을 잤다. 문희철 기자.

195㎝ 거구인 그는 자동차 보조석을 눕힌 뒤 널빤지를 깔아 침대로 삼아 잠을 잤다. 문희철 기자.

 
일단 3000유로(약 380만원)를 들여 직접 개조한 자동차는 훌륭한 숙소였다. 차량 뒷문을 열고 커튼을 펼치면 사막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그늘막 역할을 했고, 보조석 시트를 눕히고 널빤지를 깔면 침대로 변신했다. 트렁크 바닥 예비타이어가 들어있던 공간은 갖가지 식기와 조리도구가 가득한 주방이었다. 10벌도 안 되는 티셔츠와 바지는 모두 땀을 스스로 배출하는 소재로 제작했다. 개울에서 씻어 후드에 말리면 굳이 세탁할 필요도 없었다.
 
195㎝ 거구인 그는 “리프가 소형차지만 널빤지를 깔면 최대 220㎝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소음·불빛으로 가득한 호텔보다 광야에 홀로 멈춰선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게 더 편했다”며 “여기(인터뷰를 진행한 만남의 광장 휴게소)도 운전석보다 불편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만2000㎞를 주행하면서 닛산 리프는 휠커버 하나가 빠진 것을 제외하면 어떤 기계적 결함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희철 기자.

1만2000㎞를 주행하면서 닛산 리프는 휠커버 하나가 빠진 것을 제외하면 어떤 기계적 결함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문희철 기자.

 
독일 중서부 라인란트 지방에 위치한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달리면 차량은 약 2000㎞를 주행한 것과 유사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종종 내구성을 테스트하려고 이 서킷을 주행하는 이유다. 한데 그는 고비사막을 넘고 바이칼 해협을 따라 이보다 5배나 긴 거리를 달려왔다. 그는 “이렇게 먼 거리를 달리는 동안 차가 퍼지기는커녕 타이어 펑크조차 안 났다”며 “(리프의) 내구성 하나는 보장한다”고 말했다. (물론 개조 과정에서 그가 차량 하부에 덧대기를 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마레크 카민스키 탐험가는 전기차 충전소가 없는 장소에가면 마을에서 전기를 끌어와 장시간 완속충전을 하곤 했다. [사진 마레크 카민스키]

마레크 카민스키 탐험가는 전기차 충전소가 없는 장소에가면 마을에서 전기를 끌어와 장시간 완속충전을 하곤 했다. [사진 마레크 카민스키]

 
물론 전기차라서 불편한 부분도 감수해야 했다. 그는 “아무래도 전기모터를 수시로 충전하는 일이 번거로웠다”고 말했다. 국가마다 충전 방식이 다르고 때론 1회 충전 시 최대주행거리(240km·미국 환경보호청 기준) 이내에 충전소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전기차량 충전시설이 없는 몽골에서는 주유소에서, 러시아에서는 편의점에서 플러그를 꽂고 충전하기도 했다”며 “이제는 냄새로도 충전소를 찾을 지경”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리투아니아, 러시아, 몽골, 중국 등을 거쳐 방한한 마레크 카민스키 탐험가의 닛산 리프 전기차가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충전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리투아니아, 러시아, 몽골, 중국 등을 거쳐 방한한 마레크 카민스키 탐험가의 닛산 리프 전기차가 하남 만남의 광장에서 충전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그런데도 그가 전기차 여행을 추천하는 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이유 말고도 많다. 우선 전기차는 소음이 없다. 그는 “도요타자동차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랜드크루저를 타고 1만km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장거리 시간 주행하면 디젤 진동·소음이 종종 머리를 아프게 했다”며 “반면 닛산 리프는 운전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여우나 표범 무리를 만나고, 몽골 벌판에서는 사슴이나 독수리와 함께 잠을 청했다. [사진 마레크 카민스키]

그는 시베리아 벌판에서 여우나 표범 무리를 만나고, 몽골 벌판에서는 사슴이나 독수리와 함께 잠을 청했다. [사진 마레크 카민스키]

 
또 자연환경을 탐험하는데도 전기차가 유리하다. 전기차는 진동과 소음이 없어 야생동물을 관찰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베리아 벌판에서는 최대한 천천히 운전했더니 여우나 표범 무리가 도망가지 않았다. 몽골 벌판에서 주차해두고 잠을 청하는데 사슴이나 독수리가 창문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기차를 장기간 운전한 사람으로서 한국과 다른 국가의 도로 상황을 평가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충전시설이나 도로가 최고로 훌륭한 국가”라며 “특히 자다가 시베리아 호랑이를 마주칠 일이 없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먹고 잘 때를 제외하면 100여일 가까이 자동차 안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그에게 행복은 무엇인지가 가장 궁금했다. 마레크 카민스키는 “누구나 꿈을 꾸지만 대부분 포기하며 산다. 나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장시간 운전이 행복한 이유도 다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꿈을 현실로 이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마레크 카민스키 씨가 충전 중인 닛산의 전기차 리프. [사진 마레크 카민스키]

마레크 카민스키 씨가 충전 중인 닛산의 전기차 리프. [사진 마레크 카민스키]

 
그는 일본(홋카이도·하코다테)과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 1000㎞를 더 달리고 폴란드로 되돌아갈 계획이다. 1만3000㎞도 부족했던지 귀국길도 리프를 직접 운전하면서 되돌아갈 예정이다. “타이어 바퀴 자국 정도를 빼면 세상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부산으로 향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하남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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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