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금 상태가 지속되면 급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북측에 비핵화 진전 없이는
제재가 풀릴 수 없음을 알리고
제재 해제 및 종전선언을
선차적 비핵화와 맞교환해야
반면에 북한은 제재 때문에 고통스럽다. 최근 김정은의 ‘강도적 제재’라는 언급은 고통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다. 비록 중국이 제재 뒷문을 열었다 해도 연명에 도움이 된 정도이지 성장은 꿈꿀 수 없다. 핵심 제재인 광물 금수가 풀리지 않는다면 경제는 계속 내리막일 것이다. 제재 전 북한 광물 수출은 전체 수출의 50%를 차지했다. 광물 수출의 이윤율은 80%에 달해 광물이 막히면 제재 전 외화 수입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다. 그 결과 내년엔 북한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보일 수도 있다. 또 광물은 제재 대상 중 밀수가 가장 어렵다. 부피가 커 운반 수단이 제한돼 있고, 그 이동을 위성 등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의 선언문으로 볼 땐 ‘Kim Jong won(김정은이 이겼다)’이지만 구조로 보면 ‘Trump’s triumph(트럼프의 승리)’다.
우리 정부는 이 상황을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로 비핵화에 획기적 진전 없이는 제재가 풀릴 수 없고, 실질적인 남북 경협도 불가능함을 확실히 해야 한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제재 해제의 호기로 삼으려 할 공산이 크다. 외세 눈치 보지 말고 우리 민족끼리 결정하자며 한·미 제재 공조를 균열시키려 할 것이다. 이 전술에 남한이 끌려들어가 비핵화 전에 제재가 실제 완화된다면 비핵화 가능성은 더욱 멀어진다.

중앙시평 8/22
둘째로 선차적(front loading) 비핵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해 만들어야 한다. 최근 북한은 종전선언과 제재 해제를 비핵화 진전의 조건으로 꺼내들었다. 이는 김정은의 생존 코드인 핵·경제 병진노선에 대응된다. 즉 체제 안위를 위해 핵을 가진 것이라면 종전선언으로 이 필요를 일부 충족할 수 있다. 또 제재 해제로 경제가 나아지면 김정은에 대한 북한 주민의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이 요구에는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담겼을 수 있다.
우리는 제재 해제 및 종전선언을 선차적 비핵화와 동시 교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주한미군 주둔은 종전선언과 별도의 문제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선차적 비핵화의 목표는 핵시설뿐 아니라 보유 핵무기·미사일·핵물질의 신고와 폐기 약속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정도가 아니고서는 미 행정부, 특히 의회가 이미 법제화된 독자 제재를 해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법이 있는 이상 대북 경협에 선뜻 나설 우리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상회담이 성공하려면 북한을 뒤에서는 강한 제재로 밀고 앞에서는 비핵화 이후에 대한 구체적 합의로 끌어당겨야 한다. 이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효과적인 협상안을 만들어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의 경험이 보여주듯 이념에 갇히고 좁은 인재 풀에 의존한 정책을 펴면 다시 실패한다. 앞으로 몇 달이 선차적 비핵화의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대통령과 정부는 얼마나 잘 준비돼 있나. 역사가 여기서 갈릴 수도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