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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이별 위해 만나다니 … ‘작별상봉’이란 잔인한 말

이산가족 창의적 해법 찾자 
영원한 헤어짐을 위해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70년 가까이 생이별했다가 찰나의 기쁨을 맛본 뒤에 말이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며 부둥켜안아도 소용없다. 이념과 체제의 서슬 퍼런 눈초리가 핏줄과 천륜을 허하지 않는다. 인간 사회가 이렇게 비인도적이고 무자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금강산에서 그제부터 열리고 있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얘기다. 세상에서 더 이상 잔인할 수 없는 언어의 조합이라 할 ‘작별상봉’에 비친 이산가족 문제를 짚어본다. 
 
이산가족 상봉 분위기는 만남의 장소인 금강산 기류만큼이나 급변한다. 2박3일의 짧은 일정 속에서 처음엔 격한 재회의 기쁨을 누리다가 결국 헤어짐을 예견하는 안타까움과 회한으로 급전직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틀째 밤은 상봉장 안팎과 이산가족의 얼굴에 무거운 침묵과 암울한 그림자가 가득 드리운다. ‘차라리 만나지 말 걸 그랬다’는 절규는 상봉 트라우마의 아픈 분출이다.
 
사흘간의 만남 일정이라지만 실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건 11시간에 불과하다. 헤어진 70년이 61만3200시간에 해당하니 상봉의 장면은 그야말로 눈 감았다 뜨는 짧은 순간이다. 금강산으로 들어가 오후 단체상봉과 환영만찬을 하고, 이튿날 개별상봉과 객실에서의 도시락 점심 식사 등을 마치고 나면 마지막 날 ‘작별상봉’ 일정이 성큼 다가와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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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상봉장은 눈물이다. 2시간 동안의 만남에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상봉장에 나오지 못한 가족·친지에 전할 안부가 오간다. 편지하라며 주소를 주고받거나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지만 부질없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금강산호텔 앞 광장에 한쪽 가족들이 줄지어 늘어서고, 버스를 타고 떠나는 상대측 가족을 배웅한다. 북측 가족의 배웅은 더 가슴 아프다. 북한 안내원의 통제 때문에 버스 근처에 얼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발치에서 하염없이 손만 흔들어야 하는 표정은 더 슬프다.
 
이번 이산상봉은 2000년 8·15 상봉 이후 21번째다. 당초 남북한이 서울·평양에서 동시에 상봉행사를 치르던 1~3차 이산가족 만남 때는 작별상봉이란 표현이 없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서울 방문에 부담을 느낀 북측 요구에 따라 금강산으로 상봉 장소를 옮기면서 작별상봉이란 말이 쓰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상봉은 지난 2015년 10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이산의 한을 안고 유명을 달리한 고령 이산가족을 생각하면 상봉 횟수나 규모가 더디기 그지없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7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3만2484명이다. 이 가운데 7만5425명이 숨졌고, 5만7059명이 상봉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년에 한 번 상봉하는 지금 추세라면 570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500년 넘게 걸린다는 말이다.
 
절박한 이산가족의 심정과 달리 정부 대처는 미덥지 못하다. 통일부는 어제 국회 외교통일위에 “차기 적십자 회담 등을 통해 전면적인 생사확인과 고향 방문, 상봉 정례화 등을 북측과 본격 협의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북측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전향적 조치를 취하도록 견인할 방도는 빠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북 당국대화나 적십자회담 때마다 ‘상봉 정례화’ 등을 합의문에 담았지만 늘 불발에 그쳤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일 때마다 북한이 시혜성으로 들고나오는 간헐적 상봉 외에 우리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상봉 규모 확대 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상봉 행사가 시작된 지난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기적인 상봉 행사는 물론 전면적 생사확인과 화상 상봉·상시상봉·서신교환·고향 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의 상시 운영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지시하달만으로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란 정책 목표에 다가가기 어렵다. 좀 더 결연한 자세와 전략적 접근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거두겠다는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마침 남북한은 9월 중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상태다. 평양 회담에선 지난 4월 판문점 정상회담 때 합의한 사안의 이행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 한다. 지난 13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우리 측은 북한 지역 철도·도로 현대화와 대북 산림 지원 등을 제안했다. 가을로 예정된 북측 예술단의 남한 공연 문제도 거론됐다. 북핵 폐기 등과 함께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모두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에 비할 바 아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와의 상봉을 오매불망 그리던 고령 이산가족이 매년 3600여 명 넘게 유명을 달리하고 있다. 지난 한 달에만 316명이 눈을 감았다. 넉 달 전 판문점에서 평양냉면으로 의기투합하고, ‘우리 민족끼리’ 기치에 공감대를 이뤄온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라면 못 풀 현안이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이 공언해온 ‘사람이 먼저’라는 정신에도 부합한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대북제재의 예외’ 카드를 써먹어도 좋다. 북한산 석탄 수입에 제재 구멍이 뚫렸다고 눈총을 보내온 국민도 이산상봉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눈감아줄 수 있다. 6·25 당시 북한 땅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송환받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도 인도적 사안이란 공통점에 고개를 끄덕일 공산이 크다.
 
당장 돈을 건네기 부담스럽다면 ‘부채 탕감’ 방식의 접근도 가능하다. 상봉 한 건에 1만 달러(우리 돈 1170만원)를 주고서라도 이산가족 문제에 호응토록 북한 당국을 이끌어 내자는 아이디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김정은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달러 뿐”이라고 단언한다. 이산상봉 담당 기관의 불만을 덜어주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이산가족 행사 한 달 전부터 북측 상봉자들을 집결시켜 매일 목욕시키고 잘 먹여 ‘때벗이’를 하고, 양복(여성은 한복) 차림에 구두·가방·선물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떠맡은 기관들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란 것이다.
 
마침 우리 관계당국의 장부에는 북한이 갚지 않은 9억3060만 달러(1조405억원)의 채무가 올라있다. 쌀 240만 톤과 철도·도로 자재와 장비 등을 차관으로 빌려 가 떼일 처지에 있는 금액이다. 대부분 노무현·김대중 정부 시절 공여된 물량이다. 이산상봉을 기다리는 5만7000명(1만 달러씩 줄 때 5억7000만 달러) 모두를 상봉케 하고도 넉넉한 액수다. 더 이상의 작별상봉을 없앨 방도 중 하나다. 동독 내 민주화 인사와 정치범을 자유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 서독 정부가 돈을 건넸던 ‘프라이카우프(Freikauf, ‘자유를 사다’는 의미)’ 정신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도 유효하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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