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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이전프로젝트]"갈만한 곳 없어"…연애도 힘든 세종시

'워라밸' 지키며 세종시 살기 힘들어
“가게가 빨리 바뀌는 게 내 잘못도 아니고! 실내에서 갈 곳이라곤 몇 군데 없는 게 내 탓이냐고!”
“왜 또 말이 그렇게 돼? 됐어. 나 서울 갈게”
 
오늘도 세종 씨의 연애사업은 순탄치가 않다. 얼마 전 세종 씨는 출퇴근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탓에 세종청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런 세종 씨를 보기 위해 남자 친구 국회 씨는 난생 처음 세종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이들의 세종시 데이트는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땀 흘리며 찾아간 맛집은 없어진 지 오래고, 잘만 가던 카페도 주말이라 열지 않은 상태. 가볼 만한 곳이라고 추천 받아 간 호수공원에는 푹푹 찌는 날씨 덕에 사람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세종시 사는 사람들은 어디 가서 놀며 스트레스를 풀라는 건지. 
 
가뜩이나 염치없는데 국회 씨는 "세종시에는 갈 곳이 없다"고 투정까지 부린다. 미안함은 서러움으로 바뀌었고, 세종 씨는 결국 화를 내버렸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린 국회 씨. 붙잡을 새도 없이 그는 서울로 가버렸다. 머리가 새하얘진 세종 씨는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전국에서 가장 젊은 세종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은 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 세종 씨처럼 서울과 과천에 있던 공무원들이 세종청사로 옮겨오면서 ‘젊음의 도시’를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그 덕에 2012년 출범 이후 6년 만인 2018년 5월, 인구 30만의 중견 도시로 성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주민등록인구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세종시의 평균 연령은 2017년 말 기준 36.7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도시였다. 특히 신도심(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 32.5세였다. 젊음의 중심으로 꼽히는 서울 신촌동(38.2세)보다 5세가량 낮았다. 
 
전국에서 가장 어린 도시의 모습은 어떨까? 
나름 ‘젊잘알(젊음을 잘 아는)’인 기자가 하루 세종 씨가 되어 ‘세종시에서 놀아보기’를 목표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세종시로 가려면 KTX나 고속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기자는 1시간도 채 안 걸린다는 말에 혹해 KTX를 선택했다. 세종시에 KTX 역이 없는 탓에 오송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더 가야 했지만,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젊음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도로 옆은 휑했고, 얼마 가지 않으리라 생각한 버스는 산 넘고 물을 건넜다. ‘이게 과연 젊음의 도시인가’ 하고 있을 때 지하 터널을 통과하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세종시였다. 이곳저곳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고, 아파트 공사 현장도 많았다. 넓은 땅에 들어선 아파트들을 보니 여느 신도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청사 근처에 도착한 기자는 세종시의 신식문물에 한 차례 놀랐다. 지하철도 아닌데 스크린도어가 있었고, 버스 정류장에는 무료 와이파이가 터지고 있었다. 세종시는 도시민의 접근이 많은 곳에 무료 인터넷을 제공하고 있다. 왜인지 모르게 쉽게 젊음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시에는 빈 곳도, 바뀌는 곳도 많아 
밥부터 먹자는 생각으로 맛집이 많다던 중심부로 향했다. 북적거리는 게 보통인 일요일 점심시간이었지만, 세종시는 달랐다. 많은 가게는 문을 열기 전이었고 거리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울 시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한 카페 체인점 역시 ‘주말 및 공휴일에는 낮 12시부터 엽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밥집이 많다던 건물도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체인점이 대다수였고, 그마저도 사라져 임대 문의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기도 했다.  
 
세종시에는 유난히 임대 문의를 찾아보기가 쉽다. 빈 가게가 많다는 뜻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세종시의 중대형 상가, 소규모 상가의 공실률은 각각 14.3%, 12%로 전국 평균 10.7%, 5.2%보다 높았다. 소규모 상가의 경우 전국 최고의 공실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과 비교하면 중대형 상가의 경우 2배, 소규모 상가의 경우 6배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감정원은 “세종시의 경우 공급 증가 및 공실 장기화 영향으로 전 분기 대비 집합상가 임대료 수준이 전 분기 대비 1.03% 하락했다”고 진단했다.  
 
       중대형 상가       소규모 상가    
  전체      10.7%    5.2%  
  세종       14.3%    12%  
  서울 강남      6.8%    2.2%  
 
더불어 있던 가게들도 계속해서 바뀌는 게 실정이다. 기자 역시 ‘간장게장 맛집’을 검색해 찾아갔더니, 이미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던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세종시 공인중개사들도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세종시 신도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세종시 월세가 비싸다 보니 웬만한 가게들이 버틸 힘이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이다 뭐다 하면서 가게 유지비가 점점 오르고 투자자들은 수익을 위해 월세를 올리니 진퇴양난인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조치원읍에 사는 유민희(24) 씨는 “세종시 안에서 놀 곳이 없어서 인근 대전으로 다녀오는 편”이라며 “가게가 많이 바뀌는 탓에 기껏 찾아왔던 맛집이 사라졌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시민 D 씨 역시 “집에 찾아온 손님이 족발 세트를 3만 3000원 주고 사 왔다고 말했는데, 그 정도면 세종시에선 5만원 정도”라며 “세종시는 월세도 비싸고 물가도 비싼 도시”라고 말했다. D 씨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세종시에서 소비하지 않고, 다른 도시에서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세종시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한 해장국 집에서 밥을 먹고 세종시에서 가장 유명한 ‘세종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주차장 앞에는 VR 체험관도 있었다. 세종시에서 밀고 있는 ‘스마트 시티 체험존’ 중 하나다. 건축 중인 건물을 미리 둘러보고 나만의 조경을 꾸밀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색하게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임시 건물은 해를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에어컨을 틀어도 덥게만 느껴졌다. 이마저도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해, 평일에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곳을 지키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호수공원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기자는 다시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섭씨 34도. 넓디넓은 호수공원에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그늘막이 쳐진 곳에는 앉아있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이내 자리를 떴다. 기자가 어렵게 말을 걸어봤지만, 그마저도 세종시가 아닌 다른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VR 체험관 아르바이트생에게 들었던 것처럼 사람이 조금 있다는 수변으로 가자, 텐트를 치고 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2013년부터 세종시로 이사 왔다는 중년의 A 씨에게 기자가 "세종시가 살기 좋냐?"고 묻자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A 씨는 “시골에서 올라와서 사는 거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더 북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놀만 한 거리가 충분한 편이냐?"는 질문에 A 씨는 “영화관이나 공원 이런 게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다른 도시를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자리를 옮겨 청주시에서 왔다는 20대 B 씨에게 ‘세종시에서 할만한 것’에 관해 물었다. 그러자 B 씨는 “세종시에는 건물들이 준공 중인 경우가 많아서 놀 거리가 없긴 하다”고 대답했다.
  
이마트나 홈플러스가 입점한 이후로 세종시에서 갈만한 곳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대한민국 10대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애석할 정도다. 세종시에 영화관은 단 한 곳뿐이다. 영화는 주로 전체 관람가나 한국 영화일 때 상영 횟수가 많다. 누적 관객 585만명의 '미션임파서블: 폴 아웃'이 CGV 강남점에서 6회차를 상영할 때, 같은 날 CGV 세종점에서는 심야에 딱 한 회차만 상영됐다. 최근 인기 있는 코인노래방이나 VR 체험 카페, 방탈출 카페도 보통 하나씩밖에 없다. 젊은이들의 거리에 하나씩 있는 클럽도 찾아볼 수 없다. 공연을 볼 수 있는 공간인 ‘세종아트센터’도 2019년에나 완공 예정인지라 문화생활 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C 씨는 “편의시설, 문화시설이 부족해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을 찾기가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주말에 세종을 떠난다 
너무 더운 날씨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공원은 기자에게 무리였다. 빠르게 실내에서 놀만 한 곳을 찾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에는 가족 손님들로 이미 만원 상태였다. 갈 수 있는 곳은 대통령 기록관이나 조금 먼 곳에 있는 박물관뿐이었다. 세종 씨 남자 친구인 국회 씨가 투정을 부릴 만도 했다. 기자 역시 더는 걸으면 사달이 나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기다렸지만, 콜택시도 배차되지 않았다. 세종시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더니. 그렇게 20분가량이 지났을 때, 겨우 콜택시를 탈 수 있었다. 
 
기자는 카페로 향하면서 택시 기사 E 씨와 대화를 나누게 됐다. E 씨는 세종시에 불만이 많았다. E 씨는 “여기가 음주·가무를 할 수 있는 곳도 없고, 가게도 빈 곳이 많다”며 “유동인구도 도담동 이외에는 잘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E 씨는 30만 인구가 사는 세종시에 사람이 없는 이유를 ‘공무원의 이동’으로 꼽았다.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고, 거주한다 하더라도 주말이면 서울이나 본가로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시가 주거지가 아닌, 일만 하고 떠나는 곳이 돼버린 것 같다고 했다. 세종시가 발전하려면 사람들이 서울로 갈 일도, 수단도 없어져야 할 것 같다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많은 세종시 공무원들에게는 서울이 근거지다. 가족이 세종시로 이사하지 않은 공무원이 적지 않다. 자녀 교육, 기존 인간관계 단절로 생기는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운영하는 세종행 셔틀버스는 만차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려 평일에는 세종, 주말에는 서울에 나뉘어 거주하는 사람들도 많다.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F 씨도 그렇다. 주말부부인 F 씨는 평일에는 세종, 주말에는 서울집에서 산다. 하지만 세종시 집에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로의 출장이 많기 때문이다. F 씨는 주로 국회 등 서울에 있는 기관에 직접 가서 회의하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F 씨는 “많을 경우 한 주에 5일 서울 출장을 간다”며 “그 덕에 세종시 집에서도 잘 있지 못한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기자가 하루 동안 돌아본 우리나라에서 가장 젊다는 세종시는 ‘젊음의 도시’라는 표현보다는 청사의 도시, 여백의 도시에 가까웠다. 잠시 구경 온 기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세종시는 어떤 의미일까? 여유를 즐길 만한 시간도 없고, 즐길만한 곳도 적은 이곳이 말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여유를 즐길 시간과 장소 제공이 필요해 보인다. 세종시가 ‘숫자만 젊은 도시’가 아닌 ‘진짜 젊은 도시’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오지혜(연세대 사회학과 4)·정철희(연세대 노어노문학과 4) 국회이전프로젝트 대학생 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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