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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미그 전투기 탄생 비화…영국 롤스로이스 엔진 탑재한 이유

Focus 인사이드 
 
히틀러가 독소전쟁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소련을 깔보았기 때문이었다. 군사적으로 우세하다고 믿었고 그의 예상대로 초반에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전술ㆍ작전 같은 소프트웨어가 앞섰기 때문이었지 소련 무기가 나빠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일선에서는 소련 T-34, KV 전차 같은 소련제 무기에 당혹스러워 했다. 혹한이 시작되자 얼어붙어 작동이 멈추는 독일제 무기와 달리 진가를 발휘했다.

"어설픈 전략물자 관리 비수로 돌아와"
독일군에 속수무책 격추당한 소련제
패전 독일 점령해 전투기 기술 확보
英, 전략물자 롤스로이스 엔진 내줘


 
소련 최초 제트전투기 중 하나인 Su-9.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전투기인 Me 262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으나 엔진 성능이 부족해 단지 1기만 시험 제작됐다. [사진 wikipedia]

소련 최초 제트전투기 중 하나인 Su-9.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제트전투기인 Me 262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으나 엔진 성능이 부족해 단지 1기만 시험 제작됐다. [사진 wikipedia]

 
하지만, 히틀러 예상대로 독일이 우세를 보였던 분야도 있었다. 전쟁이 종결되는 그 순간까지도 질적으로 앞섰던 전투기였다. 흔히 적 전투기를 5기 이상 격추한 조종사를 에이스라고 하는데, 역사상 1위부터 133위까지의 에이스가 모두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 소속이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소련군을 상대로 전과를 올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만큼 소련제 전투기의 성능이 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일의 주력 전투기인 메사슈미트 Bf109.  [사진제공=분데스아치브]

독일의 주력 전투기인 메사슈미트 Bf109. [사진제공=분데스아치브]

 
물론 소련도 좋은 전투기를 개발하기 위해 애썼으나 기술력 부족으로 애로가 많았다. 그러던 제2차 대전 말기에 등장한 제트전투기는 소련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여타 경쟁국도 초기 단계라서 노력 여하에 따라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승전국이 되며 노획한 독일의 제트전투기와 관련 기술들은 좋은 발판이 되었다. 그렇게 1946년, 소련 최초 전투기인 MiG-9과 Su-9(1946 실험기) 등이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한계를 드러냈다. 여타 부분은 그럭저럭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가장 중요한 제트엔진이었다. 소련은 독일 엔진을 카피했지만 예상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구나 독일제는 당시 이 분야를 선도하던 영국제 엔진에 비해 성능이 뒤졌다. 당연히 영국은 제트엔진을 고도의 전략 물자로 취급했다. 때문에 아직 냉전이 본격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소련이 영국제 고성능 엔진을 획득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롤스로이스 넨 엔진. 놀랍게도 영국 정부는 당대 최고 전략 자산을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소련에 제공했다. [사진 wikipedia]

롤스로이스 넨 엔진. 놀랍게도 영국 정부는 당대 최고 전략 자산을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고 소련에 제공했다. [사진 wikipedia]

 
스탈린은 영국과 접촉해 보라고 지시는 했지만 “어느 바보가 자신의 비밀을 팔겠나”라며 지레 포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정권을 잡았던 노동당 정부는 군부와 안보 관계자의 격렬한 반대를 물리치고 소련과 우호 관계를 증진한다는 명목으로 이제 막 양산 단계에 들어간 최신 롤스로이스 넨(Rolls-Royce Nene) 엔진 공급을 결정했다. 스탈린도 놀랐던,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었다.
 
넨 엔진을 복제해 소련이 개발한 클리모프 VK-1 엔진. [사진 wikipedia]

넨 엔진을 복제해 소련이 개발한 클리모프 VK-1 엔진. [사진 wikipedia]

 
영국 상공장관 크립스(Stafford Cripps)는 단지 군용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요구만 했다. 소련은 당연히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대가를 지불한 뒤 1947년까지 총 55개의 해당 엔진을 도입했다. 그러나 당시에 소련 약속을 믿었던 이는 크립스를 비롯한 몇몇 위정자만 있었다. 소련 제트전투기 개발자들에게 기존 엔진보다 2배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신뢰성은 더욱 좋은 넨 엔진은 한마디로 구세주였다.
 
1953년 북한 공군 소속 노금석이 몰고 온 미그-15. 당시 미국이 완성된 기체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포상금을 걸었을 만큼 대단한 전투기였다. 그런데 영국이 넨 엔진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등장은 상당히 늦었을 것이다. [사진 wikipedia]

1953년 북한 공군 소속 노금석이 몰고 온 미그-15. 당시 미국이 완성된 기체를 확보하기 위해 상당한 포상금을 걸었을 만큼 대단한 전투기였다. 그런데 영국이 넨 엔진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등장은 상당히 늦었을 것이다. [사진 wikipedia]

 
그리고 3년 후인 1950년 11월 1일, 갑자기 나타난 적기가 압록강 상공을 초계 중이던 UN군 F-51 편대를 공격했다. 미국 F-86과 더불어 제1세대 전투기 대표 주자였던 미그-15 데뷔 장면이었다. 미그-15 심장은 클리모프(Klimov) VK-1 엔진인데, 이는 넨 엔진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었다. 그렇게 영국 지원으로 새로운 심장을 얻은 소련제 전투기는 한국전쟁 내내 UN군을 곤혹 치르게 했다.
 
호주 공군 영국제 글로스터 미티어(Gloster Meteor) 전투기에 미그-15와 공대공 전투를 삼가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정도였다. 넨 엔진을 면허 생산한 J42 엔진을 장착한 미 해군 F9F 전투기와 미그-15가 공중전을 벌이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이후 소련은 연이어 후속 전투기를 개발해 서방을 위협했다. 결코 믿을 수 없는 상대에게 베푼 어설픈 선의가 이처럼 매서운 칼이 되어 돌아왔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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