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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도 넘으면 작업 중단' 그걸 왜 못지키냐고 묻는다면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 이야기(15)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시민들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중앙포토]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시민들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중앙포토]

 
요즘의 더위에 지친 나를 표현하자면 마치 ‘데친 시금치’ 모양새다. 더위는 행동뿐 아니라 생각도 마비시키는가 보다. 만사가 다 귀찮다. 나는 웬만한 더위에는 땀도 없이 잘 견뎌서 때론 남편에게 “우리 사계절 여름인 곳에 가서 살아 보자”고 부추길 정도로 여름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얘기가 다르다. 너무 덥다. 살인적인 더위다. 전 국민이 매일 더위와 전쟁하고 있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에도 에어컨을 틀고 싶지만, 실외기로 인한 열기를 만드는 데 나까지 보태야 하나 하는 일말의 양심과 함께 얼마 후 날아올 고지서에 찍힐 숫자를 상상하고 리모컨을 들었다 다시 놓게 된다. 그러곤 머리를 질끈 묶고 책 한 권과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로 향한다.
 
그런데 1994년 여름 또한 올해만큼이나 무척 더웠다. 아니 나에게는 인생 최대의 고난이었던 여름이었다. 그때 나는 더구나 만삭의 몸이었다. 더위라면 자신 있던 나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아이가 9월생이니 그 더운 여름 내내 나와 내 배 속의 아이는 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 당시 나는 친정집에 가 있었는데 에어컨도 없었다. 더위에 지쳐 밥맛조차 뚝 떨어지고 저녁이 돼도 편안하게 잠잘 수 없었다. 선풍기에 의지해 간신히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견디지’ 싶었다. 더위와의 싸움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잘 먹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딸에게 엄마는 뭐라도 먹여보겠다며 이것저것 음식을 해대느라 진땀을 흘리셨다. 친정아버지는 햇볕에 달궈진 집을 식히기 위해 간간이 옥상에 올라가 물을 뿌리셨다. 시멘트 바닥에 물을 뿌리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해는 가뭄까지도 심해 수돗물을 제한적으로 공급받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그나마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여름 내내 그렇게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더위가 좀 가시자 아이가 9월 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잘 먹고 잠도 충분히 자야 하는 임산부가 더위에 너무 들볶였는지 아이는 2.5kg 정도로 정상 체중에 못 미쳐 태어났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종종 병치레했는데, 그래서인지 그 무더운 여름 배 속에서 엄마가 건강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 그럴까 하는 미안함이 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건강한 성인은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오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쪽방에 사는 노인들은 꼼짝없이 더위를 몸으로 맞으며 견뎌내야 한다. [사진 pixabay]

건강한 성인은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오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쪽방에 사는 노인들은 꼼짝없이 더위를 몸으로 맞으며 견뎌내야 한다. [사진 pixabay]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고통스러운 환경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특히 노약자에게는 더 많은 고통의 결과를 낳게 된다.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온열 질환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대부분의 연령대는 65세 이상 노년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노인들은 폭염 등 열악한 환경에서는 생존권까지 침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은 더위를 피해 도서관이나 카페, 백화점이라도 찾아가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쪽방에 사는 노인들은 꼼짝없이 이 더위를 몸으로 맞고 있다.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선 기록적인 폭염이 있었다. 그 더위로 700여명의 시민이 숨졌는데, 조사해 보니 사회적 약자와 홀몸 노인이 겪는 ‘사회적 고립’이 폭염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다. 
 
이후 시카고는 폭염에 대해 촘촘히 대책을 마련했다. 34곳에 에어컨이 나오는 ‘쿨링 센터’를 설치했고, 몸이 불편해 그곳까지 갈 수 없는 사람을 위해 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경찰과 공무원이 일일이 방문해 쿨링 센터로 안내했다고 한다. 그 후 1999년엔 더 심한 폭염이 왔는데, 이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110명으로 줄었다.
 
한국도 각 지자체에서 홀몸 노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아직 제대로 홍보돼 있지 않다. 무더위 쉼터가 5만2000곳이나 있다 하는데 취약자가 접근할 수 없는 장소인 경우이거나 쉼터로서의 시설 미비, 열대야에 대한 심야 운영 등 문제점이 나타난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은 쉼터가 어디에 있는지, 또 어떻게 이용하면 되는지 잘 알지 못한다.
 
폭염 속에서도 현장 근로자들은 더위를 견디며 일을 해야 한다. [중앙포토]

폭염 속에서도 현장 근로자들은 더위를 견디며 일을 해야 한다. [중앙포토]

 
또 올해 폭염으로 치료를 받거나 사망에까지 이른 온혈 질환이 발생한 집단은 판매종사자·무직자·노숙자 순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온열 질환이 발생한 장소는 햇볕에 노출돼 일하는 작업장이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실외에 오래 머무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가이드에 따르면 야외 근로자는 기온이 35도 이상 되면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긴급 작업을 제외하곤 일을 중단해야 하고, 만약 기온이 38도 이상이면 시간에 상관없이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1시간 단위로 10~15분간 휴식을 제공해야 하고, 노동자가 일하는 장소에 쉴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런 규칙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현장에선 이런 권리가 그림의 떡이라고들 한다. “오늘 일을 마쳐야 일당을 받지요.” “빨리 끝내지 않으면 시끄럽다, 먼지 난다 등 민원이 말도 못해요. 그래서 쉬지도 못하고 일을 일찍 끝내야 하죠.” “이런 날씨에는 사실 일당이 더 많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현장의 노동자들은 할 말이 많지만 당장 생활고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도, 쉴 수도 없다.
 
대한민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로, 하루 평균 6명 정도가 일하다 죽는다. 이는 미국‧일본보다 3배, 영국보다는 15배나 많은 수치다. 이렇듯 기본적인 안전장치, 안전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오늘도 폭염 속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람보다 일이 우선’인 성과주의에 갇혀 희생되고 있다.
 
이 더위는 올 한 해로 끝나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또 이 지긋지긋한 더위에 견뎌야 하는 우리는 또 다른 여름을 준비해야 한다. 폭염 속의 야외 노동자에게 일정의 휴게 시간과 휴게 공간은 생존의 문제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생명이 우선인 일터가 돼야 한다. 노약자에게 “물을 많이 드세요. 외출을 삼가세요”라는 빈말보다는 체계적이고 꼼꼼한 대응으로 취약한 집단을 폭염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
 
손민원 성·인권 강사 qlo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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