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최장집 칼럼] ‘집행부 입헌주의’와 사법 개혁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국가 권력이 대통령으로 집중되는 현상은 대통령중심제의 커다란 약점이라 할 수 있다. 평소 필자는 이러한 대통령중심제가 전제정치 또는 독재로 흐르지 않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관장하는 집행부 권력에 대응해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법부의 존재가 결정적인 관건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법부가 집행부 권력의 시녀 되고
대통령 지휘의 관료기구에 그치면
이 체제를 민주주의라 할 수 없어
청와대 팽창은 대통령 권력의 지표
이는 행정부 권력에 사법 독립성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힘이 된다

이에 비춰볼 때 지난 정부 시기 양승태 대법원장하에서 사법부의 수장들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집행부 수장들과 법원 판결 내용을 거래했다는 뉴스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를 강화해 판사들의 승진·보직을 포함하는 인사를 주관했고, 판사들의 이념 성향까지 조사하며 사법 관료기구로서의 자기이익 보존과 그 자신의 권력을 확장했다. 세계 사법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법부 수장의 권력 독점이자 규범 일탈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행태는 사법부의 자율성과 판결의 공정성을 높이기보다 집행부와 사법부 간 유착과 공조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촛불시위 당시 기무사의 계엄령 준비보다 한국 민주주의에 훨씬 더 위협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해외의 여러 주요 정치학자들은 세계 정치의 환경과 조건이 크게 변한 21세기에는 군대를 동원한 쿠데타는 근본적으로 줄어들었고 성공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법부가 집행부 권력의 시녀가 되고, 행정부서인 법무부와 큰 차이 없이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관료기구에 지나지 않게 되며, 그리하여 3권 분립이 헌법 조문에나 나오는 듣기 좋은 말일 뿐이게 된다면 이 체제를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이런 환경하에서는 권력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법에 의한 지배’는 가능해도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의 지배’는 불가능하다.
 
최장집 칼럼 8/20

최장집 칼럼 8/20

민주화 이후 김영삼·노무현 정부 시기 사법 개혁은 중심적인 개혁 의제의 하나로 떠오른 바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지배적인 엘리트 집단을 개혁하는 문제에 대해 당시 정부들의 정치력과 의지는 너무나 부족했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관심도 점차 약화돼 갔다. 그렇게 해서 사법 개혁의 부재는 사법부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 권력 간의 유착과 상호의존, 그리고 그 심화를 가져왔다. 판사들은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학습하기보다 권위주의 시기의 가치, 규범, 행동 패턴을 상당 정도로 온존시켜 왔다. 1950년대 후반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권위주의화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 권력에 대해 비록 그 결과는 실패했지만 법의 지배를 위해 결연히 맞선 바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유신체제의 등장은 사법부가 정치적 독립성과 자율성을 상실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사법부의 자율성이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일대의 헌법학 교수 브루스 애커먼은 ‘집행부 입헌주의(executive constitutionalism)’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집행부 수장인 대통령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어떻게 입법부와 사법부 권력을 압도하고,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자 한다. 지금 미국은 더 이상 권력분립과 그들 간의 견제와 균형이 만들어내는 ‘민주주의적 입헌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정치발전소의 박상훈 박사가 펴낸 『청와대 정부』도 한국판 ‘집행부 입헌주의’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비서 조직인 청와대의 제도적 팽창만큼 대통령 권력의 확대와 강화를 잘 보여주는 지표는 없다. 그것은 과거 군부 권위주의로부터 박근혜 정부를 거쳐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특히 최근 정부들에 이르러 훨씬 더 가파르게 팽창해 왔다. 이 조건은 대통령의 의지나 정책 방향과 상관없이 행정부 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독립성을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약화시키는 힘이 아닐 수 없다.
 
전면적인 헌법 개정 시도를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사법 개혁을 주요 개혁 의제로 상정하지 않는 것은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18대 국회 당시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헌법 개정안 가운데 하나로 광범한 사법제도 개혁을 제안한 것은 의미 깊고 그 대안들 또한 고려할 만하다. 18세기 말 미국 헌법 제정 당시 전체 헌법 논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질문의 하나는 반(反)연방주의자들이 제기한 “인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사법부는 누가 통제할 것인가?”였다. 이제 우리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정치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