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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의 퍼스펙티브] 미·중 무역전쟁 대처할 한국 생존 전략 안 보인다

무역전쟁 쓰나미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을 누르고 당선되자 중국은 쾌재를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 때 국무장관으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국 간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 중국의 아시아 지역 패권 국가 부상을 저지해 온 클린턴이 당선되는 것을 중국은 두려워했다. 반면 부동산 개발업자로 시작해 사업자로서 경력을 쌓아온 트럼프와는 협상과 타협이 가능하리라는 것이 중국의 계산이었다. 트럼프가 대선 유세에서 중국을 불공정하고 속임수를 쓰는 불량국가로 몰아붙이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편평하게 하기 위해 중국산 수입품에 45% 관세를 부과하고 통화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약에 대해선 그저 선거용이라고 중국은 판단했다.

미·중, 기존 규범·제도 무시하고
힘으로 몰아붙이는 ‘뉴 노멀’ 진입
미 보호주의, 중 중화주의 강풍에
글로벌 통상국가 한국 생존 위기

중국의 미 주도 세계 질서 도전에
미국선 초당적 대중 강경론 합의
중국 ‘중국 제조 2025’ 놓고선
미·중의 기술 주도권 경쟁 본격화

한국, 미시적 무역전쟁 대응으로
뉴 노멀 쓰나미 헤쳐나갈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해

 
2017년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기가 무섭게 TPP에서 미국을 탈퇴시켜 버렸다. 대신 그가 공약했던 대중국 45% 관세는 없었고, 통화조작국 지정도 없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트럼프는 중국 간첩이 분명하다”는 충격적 제목의 칼럼을 쓸 정도였다.
 
미·중 무역 갈등, 전쟁으로 폭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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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년 후 상황은 급변했다. 2018년 3월 트럼프는 중국의 경제 침략에 대항할 것을 지시했다. 지난 7월 500억 달러의 중국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도 즉시 500억 달러어치의 미국 수입품에 25% 관세 부과로 맞섰다. 중국이 맞대응하면 더 강력한 관세 폭탄을 투하하겠다고 공언했던 트럼프는 2000억 달러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10% 추가 관세를 지시했다. 이번 여름 휴양지 베이다이허에 모인 중국 지도자들은 “우리가 트럼프를 잘못 판단했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 경제 규모 1·2위 국가가 이 정도의 관세 조치를 동시에 주고받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5000억 달러 규모, 미국의 대중 수출이 1300억 달러 규모인 점을 생각한다면, 중국 대미 수출의 10%, 미국 대중 수출의 39%를 목표로 관세 핵폭탄을 서로 투하하는 것은 ‘무역전쟁’(trade war) 이외에는 달리 적절한 표현이 없다. 트럼프의 공언대로 추가 관세 조치가 이루어진다면 중국의 미국 수출품의 절반이 보복관세의 대상이 된다.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중 무역전쟁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무역 의존도가 80%를 넘는 (한때는 100% 초과) 무역 대국 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 최대 투자국인 미국과의 통상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최근 국책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예측들은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의 수출과 경제 성장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중간재 가운데, 중국에서 조립되어 미국으로 수출되는 비중이 한국의 전체 중국 수출의 5% 수준으로 낮다는 것이 그 논거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 정부의 대응도 차분하다 못해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이 하는 분위기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승자가 누가 되더라도 한국에 나쁘지 않다는 묘한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미국이 중국을 누르면 중국의 맹추격으로 위기에 내몰린 한국에 숨 쉴 공간이 생기고, 중국이 승리한다면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 내 한국의 기회가 더 많아질 것으로 낙관한다. 괜히 섣불리 편들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주의보까지 내려진 듯하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미·중 무역전쟁의 어떤 결말도 한국에 나쁜 영향을 준다.
 
미·중 무역전쟁은 시작에 불과
 
미·중 무역전쟁이 어떤 경로로 진행될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지 예측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는 예측 가능하다. 첫째,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둘째, 미·중이 타협하더라도 그것은 휴전일 뿐 종전이 아니다.
 
트럼프에게는 하루 10억 달러에 달하는 대중 무역수지 적자를 감소시켜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해결사’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의 재선도 여기에 달려 있다. 트럼프의 재임 기간에 대중 무역수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수출입 물량 제한밖에 없다. 이 경우 중국은 미국산 수입을 늘리기 위해 한국산 수입을 줄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트럼프가 무역수지 적자 해소 약속을 중국으로부터 받아내고 승리를 선언해도 미국 여론은 싸늘할 것이라는 점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개혁 개방의 실질적 후퇴, 정치 억압의 강화 속에 중국이 미국 주도 세계 질서에 도발과 도전을 공식화하자, 미국 파워 엘리트들은 그간 중국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 비현실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중국 강경론에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미국 내 외국인 투자 심사를 한층 강화하는 입법안을 통과시켰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인수합병만 선별적으로 심사하던 제도는 기술 관련 신규 투자까지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중 무역전쟁에 부정적이던 미국 기업들도 “중국제조 2025”로 대표되는 중국의 산업정책은 불법·탈법·불공정하다는 강경 기류로 전환했다.
 
중국 시스템이 더 개방적·개혁적 방향으로 선회하지 않는 이상 어떤 협상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자국의 핵심이익에는 타협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술 자립을 목표로 하는 ‘중국제조 2025’는 정당한 산업정책이며, 미국의 지나친 간섭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숫자는 조정할 수 있지만, 시스템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어떤 결말도, 확전도 한국에 위기
 
지난해 말 공개된 미국의 안보전략보고서는 중국을 미국의 가치와 이익에 맞서는 경쟁 패권 국가패권 국가로 규정했다. 미국의 안보 분야 책임자들은 “중국이 비전형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미국의 우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트럼프가 중국의 타협안을 수용한다 해도 중국의 기술 굴기는 계속될 것이고, 기술 주도권 경쟁은 지속할 것이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을 경제 측면에 국한하려 하지만, 미·중 패권 경쟁은 이어질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러한 긴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
 
미·중 무역전쟁은 트럼프 때문이라는 것이 중국 측 주장이지만, 트럼프의 선전포고 원인은 중국이 제공했다. 미국이 애써 가꾸어 온 다자자유무역체제 안에서 중국과의 갈등 해소를 포기하고, 전면적 양자 관계로 돌파하기로 작정한 것은 세계 무역 질서가 질서에서 혼돈으로, 규범에서 힘의 논리로, 자유무역에서 관리무역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기존의 규범과 제도를 무시하고 힘으로 상대국을 몰아붙이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로 이미 들어섰다. 뉴 노멀의 태동은 중국을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미국을 안보 동맹이자 최대 시장으로 둔 한국의 생존 방식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전환기적 사건이다.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경제적인 동기에서 의기투합했던 한·중 무역관계는 중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관계에서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려는 경쟁 관계로 변화했다. 동맹을 넘어 혈맹이기 때문에 통상관계에 불협화음이 있어도 동맹은 튼튼하다는 한·미 관계는 이제 과거 기억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대중 영합적인 보호주의 강풍이 불고, 중국에서는 ‘중화 민족주의’ 역풍이 거세다. 보호주의와 민족주의 강풍이 언제쯤 사그라지지 쉽게 가늠할 수조차 없다. 미·중 무역전쟁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끝난다면 그것은 보호주의 또는 민족주의의 승리를 뜻한다. 글로벌 통상국가 대한민국에겐 어느 쪽도 불안한 결과다.
 
한국, 뉴 노멀 대응 전략 없어
 
트럼프를 시대의 이단아로 이해한다면 뉴 노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40년간 미국 중간가계의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미국의 기술과 금융시스템이 주도했던 세계화의 과실은 최상위 계층이 독점했다. 양극화 분노의 화산대는 트럼프란 용암을 배출했다. 트럼프 2기로 이어지더라도 제2의 트럼프가 나오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미국의 정치 지형이다. 미·중 패권 경쟁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갇혀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예견한 하버드대 앨리슨 교수는 “트럼프 재선에 돈을 걸겠다”고 필자에게 이야기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속할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요란하지만 많은 한국 기업은 지금도 중국이 기회라고 중국행 비행기를 타고 있다. “시장을 나누어 줄 테니 기술을 넘겨라”는 중국 방식을 그들은 수용한 듯하다. 한국 산업 전체가 송두리째 침몰할 수 있는 위기 가능성보다는 눈앞의 이익이 더 급하다. 산업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뻔히 보이는 중국 리스크를 제대로 경고하고 있는가. 나중에 중국 리스크가 현실화될 때 중국에 제대로 따질 배짱도 없으면서.
 
한국이 통상 대국으로 질주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던 다자 무역체제, FTA로 맺은 통상 네트위크는 트럼프의 배신과 시진핑의 위선에 흔들리고 있다. 보호주의와 경제 민족주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음에도 한국의 방어벽은 너무나 낮고 취약하다. 싱크탱크들의 예측 보고서에는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무역전쟁의 파급 효과를 제대로 따져볼 수 있는 복합방정식을 풀 수도 없었다.
 
한국 정부는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을 분절적·파편적·미시적 시각에서만 대응하고 있다. ‘경제 안보=국가 안보’로 접근하는 미·중의 무역전쟁 속에서 북핵을 해결하고 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무역 대국 한국은 경제 따로, 안보 따로다. 집권 1년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 신남방’이란 고답적 대응책 외엔 뉴 노멀 파고를 어떻게 헤쳐갈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통상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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