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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훈의 축구.공.감] ‘반둥 참사’가 낳은 세 가지 불상사

말레이시아에 패한 직후 손흥민이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말레이시아에 패한 직후 손흥민이 고개를 숙인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뼈 아픈 패배였다. 그라운드에서 뛴 선수들이 가장 마음 아프고 답답하겠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래도 힘내라’며 박수를 쳐주긴 어려운 졸전이었다.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금메달에 도전하는 한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17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 E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1-2로 졌다. 전반에만 두 골을 내주며 끌려다니더니 후반에도 이렇다 할 상황의 반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허둥댔다. 후반 막판 황의조(감바 오사카)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김학범 감독은 경기 후 “로테이션을 너무 일찍 가동한 내 잘못”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축구팬들이 ‘반둥 참사’라 부르는 이 경기 패배의 후유증은 심각할 전망이다. 세 가지 면에서 대표팀에 ‘빨간 불’이 켜졌다. 교통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금메달 획득’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 1-2로 패배한 직후 우리 선수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말레이시아에 1-2로 패배한 직후 우리 선수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큰 손실은 자신감 하락이다. 말레이시아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71위의 약체다. 이번 대회에 나선 23세 이하 대표팀이 최근 들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지만, A대표팀 공격수와 수비수가 즐비한 한국에 견줄 정도는 아니다.  
 
▶우리보다 약한 팀에게 ▶먼저 골을 내주고  ▶이를 끝까지 뒤집지 못한 경험에서 나오는 심리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김학범호가 다음에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혹여 선제 실점한다면 말레이시아전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뒷문’에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넘버원’ 조현우(대구)가 나섰을 때와 ‘넘버투’ 송범근(전북)이 나섰을 때, 방어력의 차이가 너무 극명했다. 남은 일정 중 혹여 조현우가 부상 또는 컨디션 난조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할 때, 나타날 여론의 동향이 선수단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번 패배로 나타난 선수단 내부의 갈등 조짐이 더 큰 폐해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대회에 나선 우리 선수들은 ‘완벽한 경기력으로 우승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바레인을 6-0으로 이긴 직후 선수들끼리 경기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는데, 다소 이른 감이 있다.  
 
말레이시아전을 마친 뒤에도 이런 저런 잡음이 나왔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잘츠부르크) 등 주축 선수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감정이 격해진 듯한데, 지금은 각자의 생각을 표현할 때가 아니라 서로를 격려할 때다. 말레이시아에 진 게 최악이 아니라, 이 결과 때문에 선수들끼리 ‘네 탓’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게 최악이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는 게 김학범 감독과 주장 손흥민의 역할이다.
 
기뻐하는 말레이시아 선수들 사이로 우리 선수들의 굳은 얼굴이 보인다. [연합뉴스'

기뻐하는 말레이시아 선수들 사이로 우리 선수들의 굳은 얼굴이 보인다. [연합뉴스'

 
향후 일정도 ‘불상사’ 수준으로 꼬여버렸다. 김학범 감독의 금메달 시나리오 첫 단추는 E조 1위로 16강에 오르는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전 패배로 그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대회는 승점이 같을 경우 다득점이 아닌 승자승을 우선 적용한다. 한국이 마지막 상대인 키르기스스탄에 이기고, 말레이시아가 최종전에서 바레인에 지면 두 팀 모두 2승1패가 되지만, 조 1위는 한국을 이긴 말레이시아에게 돌아간다.
 
이번 대회 토너먼트표에서 E조 1위와 2위가 타고 올라갈 사다리는 완전히 다르다. 1위는 16강에서 D조 2위와 만난다. 일본 또는 베트남이 유력한데, 두 팀 모두 껄끄러운 상대지만 이번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하는 팀은 아니다. 1위가 되면 8강부터 결승까지 남은 일정을 모두 파칸사리스타디움 한 곳에서 치른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 2위로 16강에 올라가면 F조 1위와 만난다. 현재로선 이란 또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이란은 미얀마, 사우디는 북한과 각각 최종전을 남겨두고 있어 이란이 상대적으로 조 1위에 근접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6강의 벽을 넘더라도 8강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해야한다. 우리나라와 함께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는 팀이다.
 
독일이나 브라질도 월드컵 본선을 치르는 동안 매번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진 못한다. 그 나라들이 경쟁자들에 비해 자주 우승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목표에 집중하면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능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출전을 앞두고 공격수 이승우(헬라스 베로나)가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자’는 각오를 밝혔는데, 지금 김학범호의 상황에 딱 맞는 조언이 될 것 같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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